“안주하는 게 싫었다” 몬테카를로발레단 이적 앞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윤혜진
“안주하는 게 싫었다” 몬테카를로발레단 이적 앞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윤혜진
  • 정지혜
    정지혜
  • 승인 2012.06.0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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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대한민국발레축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공식 활동 마무리

 

윤혜진은 2001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녀는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서의 삶을 살았다. ‘호두까기 인형’의 마리,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와 오딜, ‘지젤’까지 다양한 무대의 주역으로 활약해 왔다. 그녀의 진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윤혜진은 최근 '신데렐라‘(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 ’로미오와 줄리엣‘(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개성 있는 연기와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최근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이하 마이요)가 이끄는 몬테카를로발레단으로의 이적을 발표했다. 국내 팬들은 ‘윤혜진만의 아우라가 있는 캐릭터’로 사랑받던 그녀의 이적 소식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특히, 제2회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공연되는 국립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녀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서 마지막 무대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무용수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앞둔 윤혜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천재 안무가 ‘마이요’의 몬테카를로발레단에 입단하기까지

서른둘. 무용수로서의 막바지를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윤혜진에게 몬테카를로발레단의 입단은 새로운 시작이자 도전이었다. “무용수 인생 막바지에 세계적인 천재 안무가와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웃음) 사실 제가 입단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게 정말 영광스럽고 감사해요”

그녀는 올해 3월, ‘신데렐라’ 투어 공연 차 일본에 와 있는 마이요를 직접 찾아가 오디션을 봤다. 이 오디션은 지난해 마이요의 작품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인연을 맺은 무용수 ‘베르니스 코피에테르’와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마이요의 작품을 하면서 몬테카를로발레단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 나이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더 이상의 시도도 하지 않았고요. 그러다 지난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안무 지도차 한국으로 온 베르니스를 만나게 됐어요. 베르니스가 마이요의 아내이자 뮤즈거든요. 그쪽 안무가 선생님들도 제 춤을 좋아해 주셨고, 어쩐지 좋은 기운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혜진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마무리하는 파티에서 그녀는 몬테카를로발레단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고, 베르니스 역시 호감을 전했다. 하지만 결론은 ‘마이요가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베르니스는 ‘3월에 일본에서 공연이 있으니 오디션을 보라’고 권했다. 윤혜진에게 오디션 당시에 대해 묻자 그때를 회상하듯 긴장감이 잠시 얼굴을 스쳤다.

“오디션을 갔는데 ‘신데렐라’ 공연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요. 오랜만에 본 세트도 반갑고, 음악도 다 아니까 즐거웠어요. 무대에서 몬테카를로발레단과 함께 클래스를 했는데, 10분쯤 하고 있으니까 마이요와 베르니스, 조안무가들이 들어와 객석에 앉더라고요. 떨렸어요.(웃음) 스스로 ‘나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있었던 사람이야, 내 캐릭터를 확실히 보여주겠어’라는 생각을 했죠. 주눅 든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했어요. 근데 클래스가 끝났는데도, 저한테 아무 말이 없더라고요.(웃음)”

클래스를 끝낸 윤혜진에게 돌아온 것은 ‘내일 또 나올거냐’는 물음이었다. 한국에서 가깝게 지내던 조안무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는 떨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언제 또 이 무용수들과 함께 춤출 수 있겠냐는 생각에 이튿날 다시 클래스에 참석했다. “다음 날 클래스에 갔는데 마이요가 아예 참석을 안 했어요.(웃음) 그때 정말 떨어 졌구나 했죠.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마이요가 첫날 마음에 들어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튿날오지도 않았던 거라고.(웃음)”

한국에서 호평받은 그녀의 무대 연기는 마이요에게도 통했다. 마이요는 오디션 후 윤혜진을 직접 만나 ‘연기와 표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발레단에 세웠을 때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가 중요한 데 잘 어울렸다’ 등의 말을 전했다. 다른 무용수들과 미팅을 잘 하지 않기로 알려진 마이요와의 만남이었기에 그녀는 긍정적인 결과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3월 28일. 윤혜진에게 한 통의 메일이 왔다. 몬테카를로발레단과 계약하자는 메일이었다. “좋아서 소리 질렀어요.(웃음) 엊그제는 브라질과 칠레 공연이 잡혔으니까 준비하라는 메일이 왔어요. 신는 토슈즈 종류, 사이즈를 물어보더라고요. 비자, 여권 등 서류도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인데, 얼마 전부터는 현실적인 문제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이제야 실감이 나는 것 같아요”

천재안무가‘마이요’와 발전하는 무용수‘윤혜진’

윤혜진에게 ‘마이요’는 특별하다. 그녀가 모던 발레를 할 수 있게 해 준 작품이 마츠 에크 안무작의 ‘카르멘’이었다면, 윤혜진에게 캐릭터를 부여한 것은 마이요의 ‘신데렐라’였다. 그녀는 ‘신데렐라’의 계모, ‘로미오와 줄리엣’의 캐퓰릿 부인으로 열연하며 국내 몇 안 되는 캐릭터 무용수로 인정받았다.

“제가 마이요 작품을 하면 좀 편해요. 물론 연습은 당연히 힘들죠. 처음 입단해서 ‘백조의 호수’, ‘지젤’ 등의 작품을 했어요. 그때는 주역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하면서도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연륜이 쌓이니까 ‘주인공만이 좋은 것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캐릭터가 있는 솔리스트 역을 잘해냈을 때 듣는 환호에 대한 희열이 정말 크더라고요. 이런저런 역할을 했지만 저는 캐릭터가 있는 역할을 할 때가 뿌듯하고 좋은 것 같아요. 재밌고요.(웃음)”

그녀에게 마이요의 작품은 ‘제 몸에 꼭 맞는 옷’이다. 털털하고 꾸밈없는 그녀의 성격과도 잘 맞다. “마이요의 작품은 연기력이 필요해요. 무엇보다 연기할 수 있게 안무가 돼 있어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리얼’하게요. 그런 점들이 저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윤혜진이 처음 본 ‘마이요’의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2002년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준비하면서다. 심플한 의상과 세트, 그리고 격정적인 안무는 ‘말도 안 된다’고 느낄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마이요 작품의 매력에 대해 “꾸미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저는 무용수지만 마이요 작품을 할 때는 제가 배우라고 느껴요. 마이요는 리허설을 할 때도 관객이 영화처럼 느낄 수 있게 하라는 디렉션을 해요. 무용수끼리는 늘 눈을 맞춰야 하고,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고요. 객석을 의식하거나 예쁜 척하거나 정면을 보면 혼나요.(웃음) 때릴 때도 ‘척’하지 말고 정말 때리라고 하더라고요”고 말했다.

가보고 싶었던 발레단으로 이적하게 된 그녀가 가장 출연해 보고 싶은 작품은 무엇일까. “제가 했던 작품도 좋겠지만, 안 해 봤던 ‘라 벨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마이요가 ‘백조의 호수’ 안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여기서 로트발트 역이 여자로 등장한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 국립발레단 부지도위원인 신무섭 선생님께도 제가 로트발트 역 할 테니 ‘백조의 호수’ 안무하시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제가 정말 잘할 자신 있다고요. 마이요가 한다고 했을 때 ‘같은 생각을 했구나’ 하고 좋아했어요.(웃음) 이건 정말 꿈인데, 언제가 로트발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자리를 내려놓는다는 것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는 윤혜진이 10년 동안 지켜온 자리다. 그녀의 노력으로 이뤄낸 자리고, 그녀의 노력이 낳은 결실이다. 국내 ‘최고 무용수’라는 표식과 다름없는 ‘수석무용수’의 이름을 내려놓는 것이 어렵진 않았을까.

“사람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이만큼 이뤄놓은 건데 놔야 하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놔야겠더라고요. 안주하는 게 싫었어요. 수석무용수는 무용수로서 최고의 자리잖아요. 그렇다 보니 비슷한 작품을 많이 하게 되고, 나태해지고요. 마이요 작품은 배울 게 많아서 좋았어요. 처음 계모 역을 했을 때는 비슷하게 하지도 못했어요.(웃음) 부끄러웠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그들이 이끌어 내줬고, 저도 캐릭터를 만들어냈어요. 그 과정이 정말 행복했어요. 그래서 주역도 좋고, 수석무용수도 좋지만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녀에게 국립발레단 활동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는지 묻자 “십 년이에요. 십 년, 길잖아요”라는 회한이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이곳에서 어릴 때부터 국립발레단 가장 대선배가 될 때까지 있었어요. 추억은 너무나 많죠. (이)영철 오빠와 ‘스파르타쿠스’에서 리프트를 하다 떨어진 게 가장 많이 기억에 남아요. 공연 전에 한 번 맞춰보자 했었는데, 그  날따라 ‘한두 번 해보냐’는 말로 넘어가더라고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웃음) 아니나 다를까 그날 무대에서 오빠가 저를 떨어뜨렸어요. 시간이 꽤 지났는데 그건 잘 안 잊혀 져요. 잘한 건 잘했으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못한 기억은 오래 가는 것 같아요(웃음)”

윤혜진이 국립발레단 생활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그녀는 “춤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단원들과도 후배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고요”라고 말했다. 국립발레단의 어린 단원들이 윤혜진을 부르는 말은 ‘엄마’다. 그만큼 그녀는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몬테카를로발레단으로 떠나면서 가장 윤혜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도 후배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여자 후배, 남자 후배 모두 잘 지내요. 그런데 이런 후배들과 떨어질 생각을 하니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윤혜진은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적을 아쉬워하는 국내 팬들에게 “제가 강한 캐릭터를 하면서 좋아해 주시는 팬분들이 많이 늘었어요. SNS로 정말 아쉬워하는 글도 많이 주시고요. 몬테카를로발레단에 가더라도 게스트 프린시펄로 한국과 모나코 오가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웃음)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유럽 투어 많이 다니니까 공연 보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고품격 경제지=파이낸스 투데이> FnToday=Seoul,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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