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23) 노재봉 전 총리가 생전에 남긴 그 한마디 말
[조우석 칼럼] (23) 노재봉 전 총리가 생전에 남긴 그 한마디 말
  • 조우석 칼럼니스트
    조우석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4.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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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지금 체제전쟁 중이다”

-생전 고인이 김영호 장관 등 제자 그룹 모임에서 했던 명언

-대한민국 학자 중 현실 변화 가장 진솔하게 포착

-총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도 바로 그 일환으로 봐야
노재봉 전 국무총리 / 연합뉴스 제공
노재봉 전 국무총리 / 연합뉴스 제공

노재봉(88) 전 국무총리가 3월 23일 별세한 뒤 이러저런 사후 평가가 진행 중이다. 당연한 일이다. 국내 언론에서도 고인이 국제정치학자이자 정치사상 이론가로서 했던 역할에 대한 조명 작업이 오늘 24일자 신문 지면에 일부 없지 않았다. 고인은 노태우 정부에 참여했는데, 당시 민주화 물결이 몰아치는 국면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가에 대한 평가도 적지 않았다.

유감이지만 내 눈에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사실 영어권 국가에서 고인에 대한 사후 첫 평가는 냉정하고도 정확한 부음기사 즉 오비추어리(obituary)에서 나온다는 건 상식이다. 그 점에 비춰봐도 노재봉 전 총리에 대한 국내의 사후 평가란 대강 두루뭉수리한 게 특징이다. 이 또한 다분히 한국적 현상일까? 일테면 김종인 전 국회의원의 경우 이런 말을 했다.

“고인은 민주화로 이행하는 과도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으며,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었다.” 조선일보 부음기사에서 그렇게 언급한 걸로 보도됐지만, 하나마나한 소리에 불과하다. 사실관계를 뒤바꾼 야바위꾼 같은 소리라는 인상마저 안겨준다. 가장 사실에 근접한 평가로는 고인의 제자인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코멘트가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인은 남북의 실존적 차이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 전체주의 체제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자각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와 이를 위한 지성인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게 맞는 소리다. 실제로 노 전 총리는 은퇴 이후엔 제자 그룹 등과 공부 모임을 만들었고 한국자유회의 같은 지식 플랫폼을 주도했다. 성신여대 교수 출신인 김영호 통일부 장관 등이 멤버였고, 고인은 제자들과 머리 맡대고 두 권의 단행본을 펴냈다. <정치학적 대화>(2015년 성신여대출판부 펴냄), <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2018년, 북앤피플 펴냄) 등이 그것이다.

솔직히 말하자. <정치학적 대화>는 공부모임에서 오갔던 말을 효과적으로 정리하지 못했다. 그래서 해독 작업이 쉽지 않은 요령부득의 책인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게 다름 아닌 노 전 총리의 진솔한 다음의 발언이다. “정치학 공부 60년이 흘렀지만, 한국정치는 여전히 숨가쁜 전환 속에 있고, 그래서 이 변화에 나는 항시 신경이 바짝 쓰인다.”

서울대 교수를 지낸 그가 토해냈던 이 말은 썩 의미심장하다. 그건 대한민국의 정치란 정상국가에선 찾아볼 수 없는 무규칙 이종경기가 판친다는 장탄식이었다. 당연히 보이지 않는 손인 북한의 개입이 특징이다. 노 전 총리 같은 전문가에게도 그렇게 보이니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의 눈알이 팽팽 도는 것도 당연할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박근혜 대통령 말기, 그리고 문재인 정권 등장 전후의 한국정치란 한마디로 체제전쟁 중이란 인식을 노 전 총리와 그의 제자들은 공유하고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물론 틈 나는대로 그걸 공식화했다. 체제전쟁, 그게 맞다. 꼭 8년 전 이 나라를 휩쓸었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광기, 촛불집회 대 태극기집회 그리고 문재인이 등장했던 2017년 대선은 정상이 아니었다.

정치는 포장이고 실제론 대한민국 정체성을 흔드는 체제변혁-민중혁명의 전쟁터였다. 노 전 총리의 그런 평가에서 필자인 나 역시 거기에서 많은 암시를 받았음을 고백한다. 고인이 말했던 체제전쟁은 다른 말로 ‘느슨한 형태의 내전’ 이기도 했다. 그건 또 한 명의 진짜 정치학자인 양동안 교수의 독자적 해석이기도 하다.

사실 문재인 5년은 국가 파괴 내지 해체의 기간이었다. 국민 모두를 힘들게 만들었던 최저임금제 도입, 집값 폭등을 불러온 최악의 부동산 정책, 남침(南侵)대로를 활짝 열어놓은 9.19 남북군사합의 그리고 저주에 다름 아닌 탈(脫) 원전정책... 당신 눈에는 이런 게 정상으로 보이는가? 한꺼풀만 벗겨보면 ‘대한민국 해체공작’의 일환이 아닐 수 없는데 노 전 총리는 그 실상을 제대로 본 흔치 않은 학자였다.

문제는 왜 사람들에겐 이런 체제전쟁, 다른 말로 명백한 좌익혁명의 실상이 잘 안 보이는 것일까? 이유가 있다. 박근혜 탄핵과 조기대선 그리고 문재인 정부 등장은 저강도 혁명(low intensity revolution)의 구조다. 즉 강도가 높지 않고,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미처 눈치를 못 채는 것이다.

저강도 혁명이란 말은 저강도 전쟁(low intensity war)이란 개념에서 변용시켜 내가 직접 만들어본 신조어다. 실제로 그말을 여기저기에서 써먹었다. 즉 전면전과 달리 제한된 곳에서 적은 자원과 인력을 동원해 테러나 요인 암살 등 국지적 형태로 이뤄지는 게 저강도 전쟁이다. 2024년 봄 지금 한국 사회 변화의 핵심도 꼭 그러하다. 백 말이 필요없다.

지난 4월 총선 이후 다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 들어선 지금 한국정치의 흐름이야말로 노재봉 전 총리가 말했던 체제전쟁 개념을 다시금 되새겨보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조중동을 포함한 주류 언론이 그걸 쏙 빼놓고 있다. 왜 그럴까? 저들은 8년 전 박근혜 탄핵 과정에 가담했던 전과(前科)가 있는 탓이다. 오늘 당신의 견해를 묻는다.

칼럼니스트 소개

조우석

현) 평론가

전) KBS 이사

전)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

전)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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