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영 칼럼] (5) 카데바를 수입한다고?
[오순영 칼럼] (5) 카데바를 수입한다고?
  • 오순영 가정의학과 전문의
    오순영 가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4.04.01 10: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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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박민수 보건 복지부 차관이 해부학 실습용 시신(카데바)이 부족하면 해외에서 수입하겠다는 발언을 하여 많은 사람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너무나 이치에 맞지 않은 황당한 일을 당하면 어이가 없게 되는데, 이때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으며 뭐라 대꾸할 말도 생각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어이없는 일은 전부 좋지 못한 일이라 시간이 좀 지나 정신이 들면 그런 상태를 만든 것에 대해 화가 나게 마련이다.

한편으로는 의대생 2000명 증원이 카데바를 수입해야 할 정도로 무모한 정책이라는 것, 또한 증원을 하지 않으면 카데바 수입 같은 무모한 짓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박 차관이 자기 입으로 국민에게 자백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카데바를 외국에서 수입하겠다면, 과연 어느 나라에서, 어떤 경로와 절차로, 어떤 인종을, 한 구당 어떤 가격으로, 누구의 돈으로 수입할까? 박차관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듣자 떠오르는 불쾌한 사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국 에든버러에서 있었던 연쇄 살인 사건이다.

19세기 스코틀랜드 법은 범죄자, 범죄피해자, 고아, 신원 미상의 시신만 카데바로 쓸 수 있었다. 에든버러의 의과대학은 찰스 다윈이 유학할 정도로 유명했다. 유럽에서 의사가 되고픈 많은 젊은이들이 모였다. 그러나 에든버러는 인구가 10만 명에 불과해 카데바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 만큼 힘들었다. 해부학 교수 녹스는 시체도굴꾼인 윌리엄 버크와 헤어에게 카데바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이 2인조 도굴꾼은 묻힌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를 도굴해 공급했다. 시체가 도굴된다는 소문이 돌자 유족들이 시신을 지키게 되었다. 시체 도굴이 어렵자 이들은 시체를 만들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사람을 납치해 질식사시켜 녹스 교수에게 카데바로 계속 공급했다. 그러다 어느 매춘부를 살해해 의대에 보냈는데 의대생 중 한 명이 그녀의 단골이라 시신을 알아보고 경찰에 알려 범행이 드러나고 말았다.

버크는 10개월 동안 16명을 살해했다. 언제, 누구를 죽여, 얼마에 팔았는지 일기에 남겼다. 공범인 윌리엄 헤어는 버크를 배신해 검찰에 팔아넘기고 풀려났다. 이후 버크는 에든버러 시민 2만5천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처형을 당하였고, 카데바가 되어 의대생에게 해부되었으며, 유골은 해부학 교실의 교재가 되어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다른 하나는 1788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의사폭동’이다. 의사폭동이라고 명명은 되어있으나 실제 내용은 의사에 분노한 시민들의 폭동이었다. 뉴욕병원의 존 힉스 주니어라는 의과대학생이 해부실을 들여다보는 귀찮은 아이들을 쫓아내기 위해 해부 중이던 시체의 팔을 흔들어 보이며 이렇게 외쳤다. "이건 너희들 엄마의 팔이다! 방금 땅에서 파냈지. 이렇게 되기 싫으면 썩 꺼져!" 그런데 아이들 중에는 불행히도 얼마 전에 엄마가 죽은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집에 달려가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내의 묘로 달려갔는데, 하필이면 정말로 파묘돼 있었고 관 뚜껑이 열려 있었으며 아내의 시신은 없었다. 분노한 아버지는 동조한 시민들과 함께 맨해튼 끝자락의 뉴욕병원으로 행진을 시작하였다. 시민들이 행진에 동조하게 된 것은 당시의 의과대학이 해부 실습용으로 많은 카데바가 필요했는데 주로 가난한 사람, 흑인의 묘에서 도굴하여 수요를 충족했기 때문이다. 분노한 시민들은 뉴욕병원을 습격하고, 콜롬비아 대학을 습격하였으며, sir John(존 경) 이라는 사람의 집에 불을 질렀는데 존 경을 서전(surgeon)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도 분노가 풀리지 않은 시위대는 맨해튼 교도소를 향하였다. 교도소에 의사들이 숨어 있었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마침내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가 투입되었다. 군대를 지휘하던 프레데릭 남작은 시위대에 대한 무력 사용을 거부하고 있었는데, 시위대가 던진 벽돌에 이마를 맞고 태도를 바꿔 발포를 명령하였다. 5명이 숨지고 많은 사람이 부상당하였다. 시위대는 흩어지고 숨어 있던 의사들이 나와 부상자를 치료하여, 마침내 폭동은 진압되었다. 이 사건은 의학연구에 필요한 카데바 확보를 위한 윤리적 기준과 법적 규정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뉴욕 주에서는 카데바로 교수형 된 범죄자의 시체만을 사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법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의과대학의 카데바 수요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도굴은 계속 되었는데, 주로 하층민과 흑인의 시체가 도굴되었지만 가끔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도굴했기 때문에, 유족들은 시신을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고 14일 동안 묘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의대정원을 갑자기 2000명을 늘린다면 카데바의 수요도 많아질 것이다. 박차관의 카데바 수입 발언을 들으니 카데바를 둘러싼 역사 속 그로테스크한 사건이 떠오르며 혹시 카데바로 돈을 벌려는 악당이 생겨나지 않을까하는 불길한 예감에 소름이 돋는다.

칼럼니스트 소개

오순영 원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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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갤러 2024-04-26 21:12:36 (180.70.***.***)
의대정원 확대 반대하는 의새들만 때려잡아도 카데바는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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