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테이블 위에 남겨진 선물
[리뷰] 연극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테이블 위에 남겨진 선물
  • 박세은
    박세은
  • 승인 2012.03.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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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일까지 윤당아트홀 2관에서 공연

당신의 눈앞에 예수가 나타나 대화를 청한다면 어떨까. 무슨 농담이냐며 자리를 피할 수도 있겠지만 눈앞에는 이미 당신을 위한 고급 와인과 근사한 식사가 마련됐다. 의심스럽지만 슬슬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근사한 저녁을 대접받으며 농담 같은 상황극에 잠시 장단 맞춰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한 잔의 와인을 시작으로 환상 같은 저녁식사가 시작된다.

연극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는 예수와 저녁식사를 하며 직접 대화를 나눈다는 참신하고 파격적인 발상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수와 마주한 ‘남궁선’은 관객석에 앉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남자다. 둘의 식사가 이미 시작됐다면 의심의 빗장을 슬며시 풀어놓는 게 좋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눈앞의 젊은 남자를 예수라고 믿는 순간 예수에게 묻고 싶었던 의문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 포용력 넓은 소통, 종교와 일상이 깨달음으로 만나다

한국사회에서 종교적 담론은 격렬한 싸움이거나 한쪽의 일방적인 강압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두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의문과 지적, 의문의 해결과 지적의 수용이라는 이해하기 편한 열린 소통방식을 택했다. 비기독교인 관객이라도 어색해할 필요가 없다. 무대 위 예수는 성경책을 들이밀지도 않고, 기도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상대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따뜻한 위로와 잊고 있던 것을 깨우쳐 주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현대판 ‘멘토’나 ‘현명한 리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하지만 작품이 예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기독교의 이야기를 꺼낸다고 해서 이 작품의 종교적 색채가 기독교인만을 이해시키는 편협함에 머물지는 않는다. 작품은 비기독교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인공 ‘남궁선’을 통해 그동안 비기독교인들이 가졌던 기독교에 대한 불만과 의문을 해소하고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일상적 깨달음을 안겨준다.

작품의 넓은 포용력은 예수와 남궁선이 나누는 대화 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디 한 번 그럴듯한 말을 해보시지’ 하고 시작하는 비기독교인의 무장 자세를 예수는 자신만의 부드러우면서도 핵심을 짚어 주는 대화 방식으로 해제시켜나간다.

극의 초반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욕망이 무엇인가’를 묻는 예수에게 주인공 남궁선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답한다. 직장에서도 자신에게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집에서는 아내가 자신에 대한 원망을 키우며 결혼을 후회하고 있다. 얼떨결에 사랑받고 싶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닫고 싶은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고만 남궁선의 모습에서 관객은 뜨끔한 불편함을 느낀다. 그가 힘주어 ‘로또대박’을 외칠 때는 마음껏 웃던 관객들이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는 것을 가장 원한다’는 말에는 조용히 입을 다문다.

작품은 이렇듯 꼭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코믹함 속에 교묘하게 섞어 더욱 집중도 있게 전달한다. 심각해지기 전에 화제는 마무리되고 가벼워지기 전에 공기가 일변해 기습공격 같은 핵심을 찌른다. 

- 상처받은 내면을 위한 따뜻한 위로

작품이 결국 가장 완전한 사랑이 신의 사랑이자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하더라도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얻을 여지는 충분하다. ‘남궁선’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예수가 나직이 질문을 던지고 ‘남궁선’은 그제야 잊었던 것들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짓궂은 장난으로 타인을 상처 입힌 자신을 엄하게 꾸짖던 아버지, 첫 아기를 낳을 때 죽음의 위기 속에서 출산하는 아내의 곁을 지키며 한마음으로 기도하던 마음, 그리고 아직은 어린 딸이 잘못된 선택으로 설사 큰 죄를 저지른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아버지로서의 사랑도 있다. 관객들은 자신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남자의 깨달음에 깊이 공감한다.   

작품은 종교적 입장을 떠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관계회복에 대한 갈망,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싶었던 내면의 갈급을 따뜻하게 채워준다. 이러한 존재의 재확인은 단지 즐겁게 웃고 떠들면서는 충족할 수 없었던 진지하고 깊이 있는 담론들을 ‘연극’과 ‘대화’라는 친근한 접근으로 시도했기에 더욱 효과적이다. 편안한 방식은 물론 둘의 진지한 대화와는 상대적으로 코믹하게 연출한 과거회상 또한 주제를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게 했다.

심플하지만 의미 있는 몇 개의 소품도 눈에 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테이블 두 개는 처음의 마주보는 상태에서 메뉴가 바뀔 때마다 짧은 암전 속에서 새롭게 변형된 형태로 세팅된다. 테이블이 벌어지고 어긋나고 다시 합쳐지는 동안 남궁선의 불만과 지적은 예수의 수용과 설명으로 점차 해소되며 합일점으로 나아간다. 테이블의 전환은 자칫하면 지루하거나 난해해질 수 있는 논쟁거리를 깔끔하게 정리하며 분위기를 전환하는 역할도 한다. 무대 뒤편의 거울도 눈길을 끈다. 커튼에 의해 가려졌다가 대화와 함께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거울은 대화를 나누는 둘은 물론 관객들의 모습까지 비추며 내면을 들여다보는 우리의 모습을 빠짐없이 담아낸다.   

예수 역을 맡은 유건우 배우는 감각 있는 차림새와 젊고 매력적인 외모로 새로운 예수의 면모를 보여줬다. 때때로 날카롭게 일갈하는 외침과 고뇌하는 표정은 유쾌한 호청년의 얼굴과 대비되면서 저 남자가 정말 예수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지게 했다. 남궁선을 연기한 홍서준은 많은 상처를 숨긴 채 현실에서 불평불만을 쌓아가는 평범한 가장의 모습을 직설적이면서 공감 가도록 표현했다. 지배인을 포함한 몇 명의 캐릭터들도 남궁선과 예수 사이의 간극을 좁혀주면서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선을 지켜 극의 재미와 이해를 높였다.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의 무대에는 성스러운 존재도, 난해한 가르침도 없다. 둘의 식사가 시작됐다면 의심의 빗장은 슬며시 풀어놓자. 열린 마음으로 단지 두 남자의 대화에 귀 기울이다보면 접시가 차례로 비워져가는 테이블 위로 관계에 상처받은 우리에게 간절히 필요했던 따뜻한 위로가 남겨진다.

 

<고품격 경제지=파이낸스 투데이> FnToday=Seoul,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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