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임의 굿모닝 M]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공정임의 굿모닝 M]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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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5.0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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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욕망은 ‘아름답거나 불행하거나’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Thomas Lanier Williams)의 작품으로, 1951년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랜드 주연의 영화로 우리에게 더 알려져 있다. 그리고 지금 21세기 한국에서 무대의 옷을 입고 다시 재해석 되었다.

 

20세기 초반의 작품이지만 고전의 힘이 느껴진다. 마치 러시아의 막심 코리키의 연극 ‘밑바닥에서’와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비극으로 치닫는 인물들의 세세한 감정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색, 공간, 대사, 소품 등이 가진 힘은 두 작품이 서로 비슷하다.

 

“나는 피 흘리고 싸웠다”

 

결혼한 여동생 스텔라(이지하 분)을 찾아 ‘낙원’으로 온 블랑쉬(이승비 분). 그녀는 한 눈에도 불편해 보이는 가식을 가득 안고 있다. 그리고 비밀이 많아 보인다. 마치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푸른 이파리들을 마구 쏟아내는 여름 나무와 닮아 있다. 하지만 버럭하고 소리를 질러도, 술을 벌컥벌컥 마셔도 그녀는 아름답다. 충분히 매력적이며, 그래서 넘치도록 연약해 보인다. 이것이 블랑쉬가 고향의 저택과 농장을 지키기 위해 “나는 피 흘리고 싸웠다”며 동생에게 투정부리듯 말하는 대사가 ‘모든 것을 잃은 자의 변명’ 같지만은 않은 이유다.

 

물론,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신경쇠약증 환자라는 것을 빼고 나면 블랑쉬는 딱히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블랑쉬의 대사는 모두 관객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마치 작가가 관객에게 블랑쉬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독백의 메시지와도 같다.

 

“너무 편한 것은 좋지 않아”

 

생일의 초는 25개만 꽂는다는 블랑쉬, 남편의 폭력을 간과하는 스텔라, 말끝마다 나폴레옹 법전을 운운하며 하류층 출신 노동자라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숨기지 못하는 스탠리(박해수 분), 이들은 모두, 그들 나름대로 가식적이고 불편하다.

 

이 작품은 현재의 격변하는 사회에서 적응과 비적응으로 양분화 되는 즉,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혼란과도 같다. ‘욕망’이라는 단어는 왠지 마치 바라면 안 될 무언가를 바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철학적인 ‘욕망’이 가식과 진실을 왔다 갔다 한다. 그 사이사이 관객들은 궁금한 것이 너무 많다. 예를 들면, 블랑쉬가 신문대금을 받으러온 청년에게 ‘작업’을 거는 언행은 그녀가 가식적 이어서일까, 솔직해서 일까.
그녀에게 심히 공감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질문하게 된다. 그런 형이상학적 캐릭터를 ‘배우 이승비’는 아주 잘 소화해내고 있다.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

 

이 말은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이 그의 소설에서 한 말이다. (물론 이 말은 단순히 외모지상주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문학소녀’인 블랑쉬는 스탕달의 열성팬이 아니었을까 싶다. 현실에서는 아름다움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블랑쉬는 그녀의 위태로운 아름다움이 자신이 가진 전부라 믿었기에 그녀의 욕망을 엉뚱한 것으로 해소한다. 자신에게는 정신의 아름다움이 있다 말하면서 외적인 아름다움을 탐하고, 신(神)이 너무도 빨리 와버렸다고 푸념하듯 말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향해 제 몸을 던진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욕망, 낙원, 타협, 그리고 묘지, 이 단어들은 모두 ‘인간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기적인 자기합리화에 빠진 블랑쉬, 나약한 타협주의자 스텔라, 괴팍한 자격지심 덩어리 스탠리, 그리고 블랑쉬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과거를 알고 단번에 변한 미치(오민석 분), 이들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내재된 욕망을 분노하며 터트린다. 각자 저 마다의 방식으로 욕망 즉, 그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향해 제 온 몸을 던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내재된 욕망을 안고 산다. 어쩌면 평생 꺼내보지도 못한 채 삶이 끝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의 분노에 정이 간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자가 되어버렸다. 아니 그들이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그녀의 환상 속에서는 늘 떠다니는 욕망과 죽음. 갓을 씌운 전구처럼 그녀 또한 희미해진다. 하지만 떠나는 그녀의 마지막 대사는 관객의 뇌리에 확실히 전달된다. “여기선 저 종소리만 깨끗해”. 그녀의 마지막 걸음이 엄마 품으로 돌아가는 어린아이와도 같다.

 
공정임 기자 newstage@hanmail.net

<고품격 경제지=파이낸스 투데이> FnToday=Seoul,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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