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영 칼럼]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대하여
[오순영 칼럼]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대하여
  • 오순영 칼럼니스트
    오순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4.0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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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대하여

공교롭게도 코로나 사태에 연이어 의대생 70% 증원사태까지 터지자 수천 년 전 고대로부터 히포크라테스가 그 어느 때 보다 자주 불려나와 그의 선서가 각계각층 입에 오르내리며 각자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지만, 실은 그것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기에 이에 대해 글을 쓴다.

우선 히포크라테스의 족보부터 살펴보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 의학의 신은 아폴론이다. 아폴론은 신이지만,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기원전 600년 경)는 실존 인물이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는 두 아들과 두 딸이 있었는데 두 아들은 트로이 전쟁에서 군의관으로 참전하였다. 첫째 마카온은 외과, 둘째 포달레이리오스는 내과 진료를 하였다. 두 딸 중에 휘기에이아는 건강과 위생의 여신으로 불리는데, 위생(Hygien)의 어원이고, 파르케니아는 만병통치의 여신으로 불리는데 만병통치약 페너시어(Panacea)의 어원이다. 아스클레피오스의 두 딸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두 아들 중에 첫째는 트로이 전쟁에서 전사하고, 둘째 아들은 전쟁 후 이오니아 해안(지금의 튀르키예 서해안)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그의 자손이 번성해 두 개의 큰 의학파를 만들었다. 코스 섬을 중심으로 한 학파는 코스 학파, 크니도스 반도를 중심으로 한 학파는 크니도스학파라 불리웠다. 히포크라테스는 코스 학파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였다.

히포크라테스가 의학의 아버지라고 추앙받게 된 것은 『히포크라테스 전집』 때문이다. 이 전집은 그가 쓴 것도 있고, 제자들이 쓴 것도 있다. 기원전 400년경에 가장 유명한 의사가 히포크라테스였기 때문에, 후대의 사람들이 전집의 제목으로 히포크라테스를 넣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은 약 70권이고 그중에 하나에서 선서가 나오는데 원문은 다음과 같다.

Ὄμνυμι Ἀπόλλωνα ἰητρὸν, καὶ Ἀσκληπιὸν, καὶ Ὑγείαν, καὶ Πανάκειαν, καὶ θεοὺς πάντας τε καὶ πάσας, ἵστορας ποιεύμενος, ἐπιτελέα ποιήσειν κατὰ δύναμιν καὶ κρίσιν ἐμὴν ὅρκον τόνδε καὶ ξυγγραφὴν τήνδε.

나는 의술의 신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와 휘기에이아와 파나케이아를 비롯한 모든 남신들과 여신들을 증언자로 하여, 이 신들에게 맹세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다음 선서와 서약을 이행할 것이다.

Ἡγήσασθαι μὲν τὸν διδάξαντά με τὴν τέχνην ταύτην ἴσα γενέτῃσιν ἐμοῖσι, καὶ βίου κοινώσασθαι, καὶ χρεῶν χρηίζοντι μετάδοσιν ποιήσασθαι, καὶ γένος τὸ ἐξ ωὐτέου ἀδελφοῖς ἴσον ἐπικρινέειν ἄῤῥεσι, καὶ διδάξειν τὴν τέχνην ταύτην, ἢν χρηίζωσι μανθάνειν, ἄνευ μισθοῦ καὶ ξυγγραφῆς, παραγγελίης τε καὶ ἀκροήσιος καὶ τῆς λοιπῆς ἁπάσης μαθήσιος μετάδοσιν ποιήσασθαι υἱοῖσί τε ἐμοῖσι, καὶ τοῖσι τοῦ ἐμὲ διδάξαντος, καὶ μαθηταῖσι συγγεγραμμένοισί τε καὶ ὡρκισμένοις νόμῳ ἰητρικῷ, ἄλλῳ δὲ οὐδενί.

내 의술의 스승을 내 부모와 똑같다고 여기고 삶을 함께 하며 그가 빈곤할 때에 나의 것을 그와 나누고, 그의 자손들을 내 형제와 같이 생각하고 그들이 이 기술을 배우고자 하면 보수나 서약 없이 가르쳐줄 것이다. 의료지침과 강의 및 그 밖에 모든 가르침은 나의 아들과 나를 가르친 스승의 아들 및 의료인의 선서에 따라 서약한 학생들 말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전해주지 않을 것이다.

Διαιτήμασί τε χρήσομαι ἐπ' ὠφελείῃ καμνόντων κατὰ δύναμιν καὶ κρίσιν ἐμὴν, ἐπὶ δηλήσει δὲ καὶ ἀδικίῃ εἴρξειν.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내가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떠한 것들도 멀리하겠노라

Οὐ δώσω δὲ οὐδὲ φάρμακον οὐδενὶ αἰτηθεὶς θανάσιμον, οὐδὲ ὑφηγήσομαι ξυμβουλίην τοιήνδε. Ὁμοίως δὲ οὐδὲ γυναικὶ πεσσὸν φθόριον δώσω. Ἁγνῶς δὲ καὶ ὁσίως διατηρήσω βίον τὸν ἐμὸν καὶ τέχνην τὴν ἐμήν.

나는 요청을 받더라도 치명적인 약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며 내가 그것을 제안하지도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여성에게 임신 중절용 페서리(pessary)를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삶과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보존할 것이다.

Οὐ τεμέω δὲ οὐδὲ μὴν λιθιῶντας, ἐκχωρήσω δὲ ἐργάτῃσιν ἀνδράσι πρήξιος τῆσδε.

나는 설령 결석 환자라도 칼을 쓰지 않을 것이고 이 일을 하는 전문가에게 맡길 것이다.

Ἐς οἰκίας δὲ ὁκόσας ἂν ἐσίω, ἐσελεύσομαι ἐπ' ὠφελείῃ καμνόντων, ἐκτὸς ἐὼν πάσης ἀδικίης ἑκουσίης καὶ φθορίης, τῆς τε ἄλλης καὶ ἀφροδισίων ἔργων ἐπί τε γυναικείων σωμάτων καὶ ἀνδρῴων, ἐλευθέρων τε καὶ δούλων.

내가 어떤 집에 방문하건 나는 환자의 이익을 위해 그곳에 갈 것이며 모든 의도적인 잘못과 해악을 삼갈 것이다. 특히 자유인이든 노예이든 남자나 여자와의 성적 관계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Ἃ δ' ἂν ἐν θεραπείῃ ἢ ἴδω, ἢ ἀκούσω, ἢ καὶ ἄνευ θεραπηίης κατὰ βίον ἀνθρώπων, ἃ μὴ χρή ποτε ἐκλαλέεσθαι ἔξω, σιγήσομαι, ἄῤῥητα ἡγεύμενος εἶναι τὰ τοιαῦτα.

치료 행위 중이든 아니든 사람들의 삶에 대해 내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은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나는 그것을 신성한 비밀로 여겨 결코 누설하지 않을 것이다.

Ὅρκον μὲν οὖν μοι τόνδε ἐπιτελέα ποιέοντι, καὶ μὴ ξυγχέοντι, εἴη ἐπαύρασθαι καὶ βίου καὶ τέχνης δοξαζομένῳ παρὰ πᾶσιν ἀνθρώποις ἐς τὸν αἰεὶ χρόνον. παραβαίνοντι δὲ καὶ ἐπιορκοῦντι, τἀναντία τουτέων.

내가 이 선서를 지키고 어기지 않는다면 내가 모든 이에게서 존경을 받으며 나의 삶과 의술을 누리길 기원하고, 내가 이 선서를 어기고 거짓 맹세를 한다면 이와 반대되는 일이 있기를 기원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는 스승을 아버지로, 스승의 자식을 형제로 여기고 그들과 선서를 한 사람에게 한해서 의술을 가르치라 했다. 그 밖에 수술을 하지 않고, 수술 전문가에 맡길 것, 여성의 낙태나 불임에 관여하지 않을 것, 환자와 그의 가족과 성관계 하지 않을 것 등,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나의 도그마처럼 사람들은 여기지만, 실상은 현대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서양의학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역사적, 상징적인 가치만 있다고 하겠다. 이 선서가 서양의학에서 근 이천년 넘게 사용되었지만, 2차 대전 중의 나치 의사들의 반인륜적 만행에 각성한 의사들이 제네바에 모여 새로운 선언문을 만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네바 선언(1948)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1.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2. 나의 은사에게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3. 나의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노라.

4.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5. 나는 환자가 나에게 알려준 모든 것에 대하여 비밀을 지키겠노라.

6.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7.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8.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관계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9.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더 없이 존중하겠노라.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 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10. 나는 자유의사로서 나의 명예를 걸고 위의 서약을 하노라.

이 제네바 선언도 시대 변화에 맞춰 조금씩 개정되었다. 1968년 시드니총회에서는 제5항 환자 비밀보장조항에 ‘환자의 사후에도 비밀을 지킬 의무’를 추가하였고, 1983년 베니스총회에서는 제9항 ‘수태된 때로부터’를 ‘생명의 시작’으로 변경 했다. 1994년 스톡홀름총회에서 제7항에 형제 뒤에 ‘자매’를 추가하였다. 2006년의 중간 이사회에서 제9항의 ‘생명의 시작부터’를 삭제하는 제안이 있었지만, 아이슬란드 의사회로부터, 삭제를 하면 세계의사총회(WMA world medical association)가 낙태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반대가 있어, 결국 원안대로 하게 되었다.

의대생들이 졸업식 때 하는 선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라고 불리지만, 실은 개정된 제네바 선언이다. 이 선언에 따르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의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명’이다. 더불어 은사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 양심과 품위,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지켜야하고 동료를 형제자매처럼 여겨야한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의 의사들은 선서를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데 점점 더 악화일로에 있다. 저수가로 인해 품위와 명예가 한 줌밖에 남지 않았다. 의사가 너무 많아 현재도 의료 생태계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정글이 되어 표면적으로는 동료애가 있으나 진정한 동료애는 한 줌조차 되지 않는다. 의사의 양적인 팽창이 계속되어 의료계가 갈수록 비대해진다면 과연 의사가 ‘사명’을 다 할 수 있을까? 비대해진 의료의 몸집에 깔려 신음하는 환자가 생기지는 않을까? 좁은 한국 땅이 비대해진 의료계로 꽉 차버리면, 그 틈바구니에서 다른 산업들은 어떻게 살까?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칼럼니스트, 오 순영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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