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즐겨보던 만화들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개구쟁이 스머프'다. 여러 스머프가 나오는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게 싫어”라고 외치며 인상을 찌푸리는 투덜이 스머프가 인상적이었다. 만화에서 그런 캐릭터가 뜬금없이 나와 한번씩 웃게 만들어주지만, 현실에서 그런 캐릭터가 있다보면 참 피곤하다.
장인어른 칠순잔치와 막내 돌잔치등을 겸한 이른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원래 다 7월말~8월초인데 사람이 없는 비수기를 골라서 가다보니 빨리 떠나게 되었다. 가기 전날까지 몸살이 나서 누워만 있었다. 약을 먹고 겨우 정신을 차려 아내와 아이들, 장인어른과 함께 공항으로 차를 몰고 떠났다. 5일 내내 운전하고 아이들 챙기면서 좋은 음식도 많이 먹고, 멋진 경치도 눈이 아플 정도로 감상했다.
이제 여행을 잘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려고 준비했다. 공항으로 가기 전에 빌린 렌트카와 아이들 카시트를 반납해야 했는데, 시간이 좀 빠듯했다. 피로가 계속 겹치다 보니 조금 예민해진 상태였다. 차를 운전하며 급하게 가는데, 네비게이션은 시간 단축을 위해 좁은 골목길로 안내했다. 잘 피해나가다가 한 골목길로 접어들었는데, 계속 앞에서 차가 들어온다. 2~3대는 내가 양보를 하고 가려던 찰나에 또 몇 대가 들어오는데 비켜줄 생각은 안한다. 계속 앞으로 밀고 들어온다. 이번에는 나도 후진하기 싫어 가만히 있었다. 앞차가 경적을 울린다. 순간 욱하면서 “이런 상황이 싫어!” 라고 투덜대며 같이 경적을 울렸다. 일그러진 내 표정을 봤는지 뒷차들이 후진을 시작한다. 겨우 빠져나갔지만, 계속 혼잣말로 투덜투덜했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그런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그만 좀 투덜대라고 핀잔을 준다. 이미 투덜이 스머프가 된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 네비게이션 탓만 한다. 사실 큰 길로 돌아도 시간차이가 얼마나지 않는데, 시간 내 반납해야 한다는 나만의 강박관념까지 생겨 일어난 일이었다. 겨우 도착하여 반납하고,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공항에 도착하여 탑승권 발권을 해야 하는데, 가족들 모두 수하물 칸에 가 있다. 이제 6살된 둘째 아들은 혼자 신이 났는지 공항 여기저기를 뛰어다닌다. 아이을 놓칠까봐 피곤한데 또 쫓아가서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몇 번 실랑이를 하고 한번 소리를 쳐야 가만히 있는다. 그것도 1분을 못 넘기지만.
혼자 신분증을 받아서 탑승권 발권하러 갔더니 가족들 전체가 다 와야 한다고 승무원이 말한다. 또 한번 욱해서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을 본 승무원이 수하물 앞에 무인발급기로 혼자 출력이 가능하다고 말해준다. 또 투덜이 스머프로 빙의된 나는 혼자 계속 투덜투덜되며 기계앞에 가서 발권한다. 탑승권을 가지고 돌아오면서 일그러진 내 표정을 본 아내는 한마디한다.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은 누구나 피곤해. 나도 피곤한데 참고 있어. 근데 당신은 유독 피곤하고 예민해지면 혼자 투덜투덜되면서 인상은 찌푸리고.. 그 모습이 우리 가족등 주변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 줄 알아? 힘들어도 서로 배려하고 투덜되지 말고.”
그렇게 또 한번 잔소리를 듣고 나야 제 정신으로 돌아오나 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감정조절에 대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여전히 난 예전의 투덜이 스머프 그대로였다. 자기가 아프거나 지쳐도 힘든 내색없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아내와 비교되니 부끄러웠다.
앞으로 조금 더 이런 투덜거림과 욱하는 버릇은 하지 않도록 계속 개선하는 노력을 할 생각이다. 아직도 서툰 아재로 살고 있는 나는 언제쯤 감정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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