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덕의 등산재구성] (18)지리산 한신계곡은 누가 만들었을까?
[김진덕의 등산재구성] (18)지리산 한신계곡은 누가 만들었을까?
  • 김진덕
    김진덕
  • 승인 2019.02.0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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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날 시골에 갔다가 책장에서 경남 함양군의  '마천향토지'(1994년)를 발견했다. 한신계곡에 관한 솔깃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다른 책들과 함께 보며 한신계곡의 비밀을 파본다.

한신계곡과 한신지계곡의 등산로를 정비한 팀은 누구이며, 계곡의 곳곳에 산재한 폭포에 이름을 붙인 이들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다만 한신계곡이라는 이름은 최근인 1970년대에 붙여진 걸로 보이는데, 과연 명명의 근거가 무엇인지 그럴싸한 유래를 알지 못한건 아쉬운 대목이다.

1965년 지리산 최초의 산악회은 구례 연하반이 만든 지리산 지도이다. 함양권에서는 보시다시피 하동바위 코스만 들어 있다. 파란색 1번의 칠선계곡 코스와 주황색 2번의 한신계곡 코스는 아직 없다.

1972년 그들은 새롭게 지도를 개정한다. 여기에는 1962년 부산의 대륙산악회가 개척한 칠선계곡 코스(사진에서 파란색 점선)은 들어 있다. 칠선계곡에 있는 대륙폭포 등의 이름은 부산팀이 붙인 것이다.

한편 세석산장으로 가는 한신계곡 코스는 점선이 아니라 다만 계곡이 있다는 것만 표시하고 있다.

일제 때부터 1970년대까지 지리산 등산지도 리스트를 보시려면 --> 여기를    또 여기를

1967년 이우형의 지도를 보면 지금의 한신지계곡 코스가 들어 있고, 1970년 김용성의 지도를 보면 한신계곡 코스가 들어가 있다. 그 시절 등산로가 슬금슬금 세상에 선보이기 시작한 걸로 짐작된다.

지금 지리산 지도의 한신계곡에는 그 이름이 로맨틱한 '첫나들이 폭포', 가내소 폭포 등과 천령폭포 내림폭포 등이 있는데, 이들 이름과 등산로를 누가 개척했을지를 보자.

마천 향토지에 의하면, '첫나들이 폭포는 마천산악회에서 1974년 명명한 곳이다'라고 하고 있다. '가내소 폭포'는 마천 향토지에도 들어 있고,  비슷한 명칭이 다른 지역에도 있는 걸 보면 예전부터 마천 주민들이 붙인 이름으로 추정된다.

한편 한신지계곡 코스역시 마천 산악회에서 개척한 코스로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이 계곡은 1974년도 마천 산악회에서 약 80만원을 들여 개척한 코스이다. 이곳의 무명폭포 및 내림폭포 장군대 등의 지명도 마천 산악회에서 명명하였다.

한때 무명폭포를 여주한 함양군수가 이곳을 등산하다가 무명폭포의 아름다움과 폭포의 웅장함을 보고 함양의 옛이름인 천령폭포로 이름지어 표시판을 붙였지만 몇년 안돼 표지판은 없어지고 지금까지 무명폭포로 불리우고 있다.

그렇다면 마천산악회는 어떤 단체일까?

짐작에는 등산을 즐겨해서 만든 단체라기보다는  백무동 입구의 상가 주민들이 등산, 관광 진작차원에서 만든게 아닐까 싶다. 1970년대가 되면 지리산은 본격적으로 등산객들이 들어왔으니 말이다.

지리산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던 고 최화수 선생이 1994년  만든 '대하르포 지리산 하'에 의하면, 백무동에서 첫나들이폭포까지를 백무동 계곡으로, 그 상류를 한신계곡으로 불린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신계곡의 명명 유래는 거론하지 않고 있다.

두산백과에서는 한신계곡의 유래에 대해서 몇가지 가설을 적고 있는데, 허랑한 감이 없지 않다. 앞으로 자료나 증언을 만나길 바란다.

그런데 한신계곡으로 가는 길은 알다시피 계곡 과 100m 안팍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폭 3m나 되는 도로가 이어진다. 이건 언제적 만들어졌을까?

최화수에 의하면 이러하다.

지난 1963년 9월 삼성흥업주식회사라는 벌목업체가 서울 영림서로부터 마천면  강청리, 삼정리 그리고 추성동 일대의 국유림 내 고사목, 퐁도목(風倒木)에 한해서 벌채 허가를 받았다.

그 후 남선목재와 서남흥업공사로 전매되어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1964년 4월 3일까지로 잡은 벌채목 반출기관과 허가 지역이 늘어났다. 또 이 기간에 불법, 탈법으로 아름드리 생목을 마구잡이로 베어내는 도벌행위가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참고로 서남흥업공사는 지난날 지리산 빨치산 토벌대 출신의  지방유지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것으로, 1959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리산 도벌 사건'의 주체이기도 하다.

수문출판사에서 펴낸 이종길의 '지리산'에 의하면, 

1979년을 기준으로 했을때, 한신계곡이 등산로로 알려진 것은 10여년 정도 될까?

함양방면에서 천왕봉에 오르려는 사람은 대부분 칠선계곡 아니면 하동바위를 잇는 기존 등산로를 택했었다. 계곡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길찾기가 어려운 한신계곡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진주 광주 마산 등지의 일부 산악인들이 한신 주계곡을 겨울 훈련용으로 이용하고부터다.

한신 주계곡의 빙벽 훈련장을 찾아 나서다보니 폭포가 많은 한신 지계곡의 아름다움이 세상에 알레지게 된 것이다.

라고 적고 있다.

이제 이렇게 해서 한신계곡이 세상에 선보이게 된 연유, 등산로를 정비하고 명명을 한 단체와 그 시기 등에 대해서 대강이나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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