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 한달 살기(3) 싼 물을 찾으러 떠났던 매일의 일상
사이판 한달 살기(3) 싼 물을 찾으러 떠났던 매일의 일상
  • 김소라 칼럼리스트
    김소라 칼럼리스트
  • 승인 2018.04.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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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신문=파이낸스투데이] 

상품을 소비하는 방식의 아닌 다른 여행이 가능할까? 가이드의 깃발따라 관광지에서 쇼핑센터로 정신없이 행군하는 여행이 여행의 전부인 양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다른 여행을 상상할 여유가 있을까. 휴식을 가장한 전투적인 여행이 아닌 성장과 가치를 찾는 여행이 분명 있다.

여행을 왜 떠나고 싶을까 들여다보면 광고와 이미지의 욕망을 따를 때가 많다. 아파트 광고를 보면서 그 속에 들어가 살아야 행복할 것 같은 마음, 자동차 광고를 보면서 그 차를 소유해야 성공한 삶일 것 같은 욕망이 생긴다. 인생은 끝나지 않는 가상의 수레바퀴인 걸까. 그래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차선책으로 선택한 방법이 여행이 아닐까한다. 사이판에서 아이랑 놀며, 살며, 배우면, 경험한 내용을 칼럼으로 10회 연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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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자. 외국 여행을 많이 하면서도 늘 최고급 호텔에서 묵고, 고국에서 먹던 것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고국에서 만나던 사람들과 똑같이 게으른 부자들만 만나고, 자기 집 저녁 식탁에서 나누던 것과 똑같은 소재들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고국으로 돌아와서 돈만 많이 드는 지루한 여행을 끝냈다는 안도감만 느낄 것이다. 반면에 어디를 가든지 그곳의 특색을 살펴보고 그곳의 특색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사귀고,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관심을 끄는 것들을 낱낱이 살펴보고, 그곳의 고유한 음식을 먹고, 그곳의 예절과 언어를 익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기나긴 겨울밤을 되새기면 좋을 만한 새롭고 즐거운 생각들을 마음속에 가득 채워서 집으로 돌아온다”

이 글은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에 나온 여행에 대한 이야기 중 일부다. 러셀의 글을 통해서 ‘여행’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유명 관광지에서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이 여행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현지의 경험을 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의 차이는 성향 차이다. 혹은 다른 경험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편견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행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는 식으로 규정짓곤 한다.

사이판에서 현지 생활을 한 달 하면서 온전히 그곳을 느끼고 불편함을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그 중 하나는 물 사는 일이었다. 한국도 집집마다 정수기를 설치하거나 생수를 사다 먹는 게 보편적이다. 섬나라 같은 경우 석회질이 많은 수질 때문에 가급적 정수된 물을 먹어야 한다. 사이판에서 물 값은 만만치 않다. 처음에는 숙소 가까이의 대형마트에서 2리터짜리 물을 낱개로 샀다. 쌀을 씻고 밥을 하고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물을 많이 쓰기 때문에 감당하기 힘든 지경이었다. 나중에는 5갤런들이 커다랗고 파란 생수통에 물을 받아쓰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물통을 사서 마트에 있는 정수시스템을 통해 물을 살 수가 있다. (사이판의 경우 큰 마트에 공공정수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5갤런 큰 통을 받아가면 1달러 정도한다)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생수 콸콸 나오는 한국의 우리집이 그립기도 하다. 물 때문에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아야 하나. 쓸데없이 귀찮은 일이 늘어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이판의 현지인 집에는 정수기가 설치된 곳이 많지 않다. 석회질이 많은 물은 정수기를 금방 상하게 만들고, 필터를 자주 갈아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고장도 잦기 때문에 가정집 정수기보다 공공 정수 시스템으로 정수한 물을 물통에 받아먹는 게 보편적이다. 한국 같으면 생수를 배달하여 먹거나 매달 필터를 갈아 주는 코디 시스템도 있다. 작은 섬나라 사이판은 느리고 불편한 나라다. 감수해야 할 일상의 불편함은 한 둘이 아니다.

저렴한 물을 사고 나르는 일은 쉽지 않다. 배달해 주는 업체도 없다.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 이러한 일이 여행의 기쁨을 반감시킬까? 귀찮은 일을 하면서 몸을 써야 하는 상황이 여행을 짜증나게 만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신선한 경험으로 와 닿을 때가 있다. 완전히 다른 삶을 경험하는 것이 여행의 재미이자 배움 아닐까. 매일 물을 사러 다니고, 좀 더 싼 물을 찾으러 다녔던 별 것 아닌 시간이 그립다.

한국에 다시 오니 얼마나 우리는 편리함에 길들여져 살아가는지 알게 된다. 오늘 주문하면 내일 바로 배송되는 초고속 택배 시스템, 로봇청소기나 식기세척기 등의 전자제품, 쉽게 배달하여 먹을 수 있는 음식점 등. 하지만 느리면서 수동적으로 인간의 몸을 쓰게 만드는 시스템은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 작은 것에 감사하게 만든다. 때로는 쓸데없이 귀찮은 일들도 우리의 삶을 훈련하는 과정이다. 여행은 몸으로 기억된다. 물을 받아서 사다 나르는 것이 고달팠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가보다. 5갤런 물통을 들고 옮기면서 안 쓰던 나의 팔 근육도 단련되었을 거다.

 

필자 소개

현) 더즐거운교육연구소 교육이사

현) 꽃맘협동조합 이사

저서) 『사이판 한달 살기』 (김소라 지음, 씽크스마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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