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 한달 살기(2) 매일 매일 빨래하기 좋은 날
사이판 한달 살기(2) 매일 매일 빨래하기 좋은 날
  • 김소라 칼럼리스트
    김소라 칼럼리스트
  • 승인 2018.03.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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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신문=파이낸스투데이]

상품을 소비하는 방식의 아닌 다른 여행이 가능할까? 가이드의 깃발따라 관광지에서 쇼핑센터로 정신없이 행군하는 여행이 여행의 전부인 양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다른 여행을 상상할 여유가 있을까. 휴식을 가장한 전투적인 여행이 아닌 성장과 가치를 찾는 여행이 분명 있다.

여행을 왜 떠나고 싶을까 들여다보면 광고와 이미지의 욕망을 따를 때가 많다. 아파트 광고를 보면서 그 속에 들어가 살아야 행복할 것 같은 마음, 자동차 광고를 보면서 그 차를 소유해야 성공한 삶일 것 같은 욕망이 생긴다. 인생은 끝나지 않는 가상의 수레바퀴인 걸까. 그래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차선책으로 선택한 방법이 여행이 아닐까한다. 사이판에서 아이랑 놀며, 살며, 배우면, 경험한 내용을 칼럼으로 10회 연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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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 한 달 살기 여행 멤버가 어른 둘, 어린이 다섯 명. 총 일곱이 지내니 빨래도 매일 해치워야 할 일이다. 다행인 건 햇빛이 좋아 한두 시간이면 빨래가 보송보송하게 잘 마른다. 햇빛이 쨍쨍하고 바람도 살랑부는 기후는 빨래 말리기에 최적이다. 사이판의 아침저녁은 에어컨이 필요 없다. 낮에도 통풍 잘 되는 곳의 창문을 열어 놓으면 쾌적하기도 하다. 햇빛은 눈이 부시도록 따갑지만, 바람은 시원하기만 하다. 사이판의 한 달은 매일 매일이 빨래하기 좋은 날이었다.

바구니 한가득 빨래가 찼다. 바다 수영 한 번만 하고 와도 수건이 4~5장에 수영복까지. 그리고 하루에 한두 번씩 갈아입는 옷까지 포함하면 빨래거리가 매일 넘친다. 하루만 밀려도 빨래가 그득하다. 9시경 산 안토니오(San Antonio)라는 동네 빨래방을 갔더니 사람들이 많다. 이곳의 휴일 일상은 빨래방에서 빨래를 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현지인의 경우 요리나 빨래 등 집안일을 남자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사이판과 같은 섬나라는 여자들의 천국인가!

빨래방에서 한 번 세탁기 돌리는 요금은 보통 1달러 정도. 25센트 동전 4개를 넣어야 한다. 건조기는 2~3달러 정도다. 세탁기 한가득 빨래를 넣고, 2.5센트 4개 동전을 넣은 다음 START 버튼을 누르면 끝이다. 빨래하는 시간은 25분 걸린다. 나는 주로 노트북을 들고 나와 일기를 쓰고, 사이판의 하루 일과를 기록하는 편이었다. 책의 원고의 50%가 빨래방에서 빨래 돌리면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열댓 개의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 기다리는 동안 TV를 보는 사람들, 앉아서 맥주나 콜라 캔을 들고 와서 마시는 사람 등 다양하다.

며칠 동안의 빨래를 모아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양도 꽤 많다. 사이판의 현지인 집에는 세탁기가 없는 경우도 많다. 석회수의 물 때문에 전자제품이 쉽게 고장 난다. 세탁기나 정수기 등을 소유하지 않는다. 사이판 한 달 살면서 ‘아이들 빨래는 어떻게 했나요?’ 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세탁기의 유무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게스트하우스에 세탁기가 없다는 소리를 들어서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한 달 살아보니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빨래방에서 세탁기 돌리고, 그 시간에 책 읽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빨래하러 가는 시간마저도 소중할 줄이야.

빨래 한 것을 게스트하우스로 가지고 와서 건조대에 널어 말리면 몇 시간이면 햇살이 좋아 금방 마른다. 햇볕 가득 머금은 수건이 사랑스러울 정도다. 햇빛에 살균·소독되어 보송보송 기분 좋다. 한국의 아파트에선 빨래를 실내에서 건조하기 때문에 직사광선에서 말릴 수가 없다. 햇빛에 반짝일 정도로 흰 수건이 펄럭이는 모습을 보는 건 주부라면 누구나 느끼는 청량감 아닐까. 바스락거리면서 잘 마른 빨랫감을 하나둘 갤 때도 만족스러운 이 기분은 뭘까!

‘사이판에서 기억나는 일이 뭐였어?’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테다. “빨래방에서 빨래 돌려서 빨랫줄에 널어놓은 후, 햇빛 아래에서 펄럭이는 모습을 보는 일”이라고!

이처럼 빨래라는 일상의 행위가 소중하게 다가온 것은 내 생애 처음이다. 빨래하고, 널고, 개켜서 넣어두는 반복적인 일이 얼마나 주부들은 지루하고 소모적인지. 하지만 사이판에서의 한 달, 빨래하던 일은 귀찮은 노동이 아니었다. 햇빛을 머금은 옷은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이곳의 현지인들은 좋은 세탁기를 소유하는 일보다 동네 빨래방에서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것이 즐거운 듯하다. 비싼 전자제품을 집집마다 소유하지 않아도 사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사람들과의 만남의 장, 교류의 장이 되는 빨래방의 풍경은 우리네 아낙네들이 냇가에서 빨래하던 모습같기도 하다.

“아니 사이판까지 가서 기껏 빨래하는 게 좋았다고?”라면서 황당해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어쩌랴. 햇빛에 빨랫감이 말라가는 모습만 보아도 흐뭇해진다. 아이들이 많아서 빨랫감이 넘쳐도 걱정 없다. 한국처럼 옷이 마르지 않을까 봐 걱정할 일이 전혀 없다. 겨울에는 옷이 잘 마르지 않으니까 집집마다 건조기까지 구입하는 추세다. 베란다에서 잘 마르지 않아 눅눅하고 꿉꿉한 빨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사이판의 햇살을 잊을 수 없을 거다.

필자 소개

현) 더즐거운교육연구소 교육이사

현) 꽃맘협동조합 이사

저서) 『사이판 한달 살기』 (김소라 지음, 씽크스마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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