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최종예선이 시작도 안한 마당에 본선 얘기를 들먹이는 건 시기상조임이 맞다. 그러나 한국의 본선진출 확률은 매우 높은 편이고, 최종예선도 본선을 준비하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전술적 완성도를 높여가는 훈련이라고 보면 될 듯)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대한 언급을 한번쯤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최종예선까지 붙는 아시아 팀들과 본선이후의 유럽, 남미 팀들의 격차는 상당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객관적 전력상 유럽,남미에 쳐진다고 평가되는 팀은 두 상반된 그룹에 대해 각기 다른 전술로 임하는게 맞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예선까지 실컷 해왔던 전술을 하루아침에 모두 폐기하고 본선가서는 벼락치기로다가 새로운 전술로 완벽하게 변신하는게 현실적인 한국선수 수준에서 가능할까?
지금은 물론 월드컵 본선을 향해가는 과정이고 실험의 단계임이 맞다. 슈틸리케도 이정협, 황의조등 자칭 "국대팬(국빠)"들조차 다소 생소해했던 다양한 선수를 발탁해서 시험해보는 중이며 전술적인 면에서도 아직 유동적이지만 공격적일 때의 4-1-4-1과 비교적 강팀에겐 밸런스를 강조한 4-2-3-1이 어느정도 틀을 갖추었다고 본다.
중원에서는 기성용을 키플레이어로 정우영이 기성용을 보좌하면서 2선에 권창훈, 손흥민, 지동원, 구자철 등이 번갈아가며 자리를 메꾸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건 가만 보니까 첼시의 4-2-3-1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 기성용이 바로 파브레가스의 역할을 하면서 파브레가스를 중심축으로 삼아 리그를 제패했던 2014-15 시즌 무리뉴의 첼시.(물론 현 콩테의 첼시도 4-2-3-1이긴 하나 파브레가스의 저조한 활동량과 쳐지는 수비력으로 캉테-마티치 조합이 1순위 전술인 듯하다.)
과연 기성용이 그때 당시의 파브레가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가? 나는 여기에 물음표를 던진다. 사실 2010 월드컵 원정 16강 당시 한국은 매우 역동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중원의 박지성, 김정우, 염기훈 모두 엄청난 활동량으로 빈공간을 구석구석 메웠으며 기성용은 움직임에서 저들에 비해 다소 부족했으나 장기인 롱패스로 한국의 전술적 다양성에 큰 기여를 했다. (박지성, 김정우 둘 다 준수한 패싱력이 있었고 염기훈이 아르헨전 헛발질로 욕을 먹긴 했지만 그의 크로스만큼은 말 안해도 다 아실 듯)
물론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황금세대와 그들이 떠난 자리를 메우지 못한 나름의 골짜기세대라고 볼 수 있다. 좌우 측면 풀백도 이영표-차두리에 견줄 상황이 아니고 나름 모나코에서 주축이었던 박주영에 비하면 아직 확실한 원톱자원조차 확정하지 못하는 현 상황이 대조적이다.
우리나라 수비진은 항상 국내축구팬의 모든 비난을 짊어지지만 실상 그 포백을 전혀 보호해주지 못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재야말로 언제나 문제의 본질이었다(2006년 이후로 국대는 포백전형을 유지해 옴). 수비형 미드필더의 보호막없이는 제아무리 1대1에 강하고 예측력이 탁월한 월드클래스의 수비수라도 2대1패스 두어번이면 벗겨지게 마련이다. 전북의 예로도 이재성 김보경이 아무리 탈압박과 공격적으로 탁월한 볼배급을 해내도 뒤에서 이호나 장윤호가 받쳐주지 않는 경우엔 수비불안 때문에 공격에 집중하기는 커녕 중원 장악에 실패하고 빌드업도 제대로 안되어 경기력이 엉망인 경우를 여럿 봤을 것이다.
자 여기서 우리나라의 포백을 보호할 수비형 미드필더는 누구인가?
그렇다. 답이 없다. 우리나라 정치판, 사회 부조리, 경제개혁과 비슷한 결과가 도출된다.
답이 없다니 문제만 제기하면 끝인가? 문제가 보이는데도 답을 제시 못하는 것만큼 답답한 것도 없을 것이다. 급하게 외국인선수라도 귀화시키지 않는 이상 본선이 1년 반도 안남은 이 시점에서 어느날 뜬금없이 한국인만이라도 놀라게 할 수비형 미드필더가 급부상 할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한국대표팀의 진짜 아킬레스건인 수비형 미드필더에 대한 부재를 끌어안고 다음 월드컵 본선은 조별리그에서 2무1패 정도만 하더라도 체념하고 보려고 한다.
슈틸리케는 답없는 시험지를 받아든 어떻게 보면 면죄부가 주어진 감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강의 기적, 2002 4강신화 모두 한국인들의 놀라움을 칭송하는 전설같은 얘기로 회자되곤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기적이란 없다. 기적처럼 보이게 하는 무대뒤 조연들의 땀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