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위성방송이 본격적으로 수신되기 시작하면서 유럽이나 남미축구, 그리고 일본 J리그 경기도 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진작부터 축구 선진국을 부러워하던 젊은 축구 동호인들에게 위성화면에 비친 세계 최고의 리그경기는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안겨주었다. 특히 우리보다 축구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온 일본조차도 경기장 시설이나 축구열기, 응원문화에서 한국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수치스런 것이었다.
1995년 9월 마라도나가 소속된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팀이 방한하여 우리 대표팀과 경기를 벌이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PC통신에 글을 올려 우리 대표팀 유니폼을 함께 사서 입고 경기장에 가서 응원하자고 제안했다.
경기장에서 자기 나라 대표팀을 응원할 때 선수들과 똑같거나 비슷한 색깔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였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그런 문화가 없었다.
나의 제안에 호응해 10여 명이 동대문운동장 근처에 있는 스포츠용품 가게에 가서 어깨에 색동 무늬가 있는 아래위
흰색 대표팀 유니폼(그때는 흰색이 주 유니폼이었음)을 구입했다. 며칠 뒤 잠실운동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50여 명의 하이텔 축구 동호회원들은 왼쪽 골대 뒤쪽에 모여 종이가루를 날리며 열광적으로 응원했다.
TV 화면에 잠깐이나마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비록 소수였지만 한국축구
역사상 대표팀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집단적으로 응원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2002년 6월4일 폴란드전이 열리던 날, 나는 부산 스타디움을 비롯해 전국 방방곡곡이 붉은색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수십만의
사람들로 뒤덮인 것을 보면서 ‘한 점의 불꽃이 광야를 불사른다’는 격언을 떠올리며 벅차오르는
감격을 이길 수가 없었다
스탠드 곳곳에서 멕시코 응원단들이 발을 구르고 어깨를 흔들면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는 그때 멕시코가 빈부격차가 심하고,
외채도 많다지만, 응원문화 만큼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박지성은 마라톤 선수, 윤정환을 중용해야 한다, 차두리 안된다 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히딩크
한국축구 수준을 높였다 하는데, 저 정도는 흑역사로 넘겨도 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