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리뷰] 시대의 아픔을 진단하고 치유하다, 낭독음악극 ‘왕모래’
[음악극 리뷰] 시대의 아픔을 진단하고 치유하다, 낭독음악극 ‘왕모래’
  • 글, 사진_편집국 김지연 기자
    글, 사진_편집국 김지연 기자
  • 승인 2010.10.28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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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사랑을 모친 살해로 완성하는 역설적인 소재

그해 살구꽃이 흩날리기 시작한 어느 날, 새벽녘이면 으레 돌아오던 어머니가 낮이 기울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울음을 참아가며 돌아오지 않은 어머니를 기다리는, 요강에 비친 아이의 표정을 서글프다. 살구꽃이 떨어지던 봄날, 어머니의 돌아왔지만 지난날 서글픈 아이의 표정과 대비된 황폐한 모습이었다.

황순원의 단편 ‘왕모래’는 부정적인 모성상을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모성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단편이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그 그리움의 현실 속에서 추한 아편쟁이의 모습으로 돌아온 어머니로 인해 좌절하며 야기되는 비극을 조명했다. 예민한 현실 감각으로 시대와 세태를 묘사하던 황순원의 소설을 소리예술을 통해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낭독음악극 ‘왕모래’는 아득히 깊고 그리운 듯한 한국적 정서가 물씬 묻어났다. 극 중 돌이와 엄마의 테마 음악인 서정성 넘치는 국악 선율과 낙낙하고 촉촉한 전문 낭독자의 낭송, 여기에 연극적 재미가 더해져 가슴 한편에 먹먹한 그리움과 아릿한 슬픔을 남겼다.

이 작품의 ‘왕모래’는 가난과 매춘을 표상했다. 가난에 의한 죽음(아버지의 죽음)과 도덕적인 타락에 의한 죽음(어머니의 죽음)을 동시에 상징함으로 절대적 순수의 세계와 추악한 현실을 깨닫게 했다. 극 중 돌이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기다리지만 황폐한 불륜의 늪 속에 빠져들었던 엄마의 정체성을 알게 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추악한 현실의 목을 조르듯 조른다. 돌이의 이러한 행위는 자신이 그리던 아름다운 어머니의 회복하려는 의도이며,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역설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무대는 극히 한정적이나 다양한 동선이 그려지도록 꾸며져 있다. 무대 중심에 사다리꼴 모양의 빈 공간인 무대와 그 뒤 상단에 걸린 스크린은 극의 심리를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무대는 모성의 영원성과 배반, 꿈과 현실의 괴리 등 우리 삶의 이중성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사다리꼴 양 옆으로 앉은 연주자들은 흑색, 배우들은 백색의 의상을 입음으로 흑과 백의 대비, 배우들을 연기에 생동감을 더욱 부각시켰다.

현대 음악과의 손쉬운 타협을 허용치 않고 우리 문학이 전통 국악과 만났을 때 비로소 더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이 극을 통해 보여줬다. 드라마와 어우러진 국악은 젊은 국악 연주 집단인 ‘정가악회’가 참여했고 이들은 연주뿐 아니라 연기까지 소화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무엇인가 서로에게 갚을 것이 있어 만나게 된다는 부모, 자식 간의 원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그리고 부모,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아프게 하고 생채기내는 비극적인 현실을 극은 그대로 투영해 보여줬다. 이는 모성이 상실 된 시대에 잃어버린 인간성 회복, 모성이 영원하고 신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운명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낸 것이다.

글, 사진_편집국 김지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고품격 경제지=파이낸스 투데이> FnToday=Seoul,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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