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원한다고 보이면 희망이 아니다, 연극 ‘토너먼트’
[리뷰] 원한다고 보이면 희망이 아니다, 연극 ‘토너먼트’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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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4.2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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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무대를 가득 채운 결핍

무대 위에는 임씨 가족의 국수집 풍경이 펼쳐진다. 서정적이고 정감 있는 풍경 속에는 사람이 있고 삶이 있고 활기찬 생활이 있다. 얼핏 향수를 자극시키지만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균열의 불안이 낭만적 환상으로의 여행을 막는다.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야하는 택진과 그를 사랑하나 부모의 반대로 드레스 한 번 입어보지 못한 채 5년의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진경, 한때는 국가대표 펜싱 선수였으나 목표를 잃어버린 후 패배자의 삶을 살고 있는 택기, 택기가 꿈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미래도 잃어버리게 된 아내 현정, 이뤄내지 못할 가수의 꿈을 품고 있는 택현까지. 이들은 국수집에서 권투를 보거나 노래를 부르며 생활의 활기를 유지한다. 그러나 약간의 진동과 충돌에도 균열의 틈은 벌어지는 법. 이들은 끊임없이 밀려난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희망이 감질나다. 연극 ‘토너먼트’는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무섭도록 앞으로만 질주하던 1980년대 중반, 한 가정이 토너먼트에서 탈락되고 탈락되는 과정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 삶은 토너먼트

 

토너먼트[tournament] : 스포츠나 오락경기 등에서 횟수를 거듭할 때마다 패자는 탈락해 나가고, 최후에 남는 두 사람 또는 두 팀으로 하여금 우승을 결정하게 하는 시합. 

 

LG아트센터 무대는 넓다. 연극 ‘토너먼트’는 탈락되기를 반복하는 이들의 삶으로 그 무대를 채워야한다. 무엇으로 채워야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화려한 볼거리가 아닌, 외로움과 결핍으로 무대를 빈틈없이 꽉꽉 메운다. 중심에서 밀려난 한 가족을 넓은 무대 위에 덩그러니 남겨둠으로 생의 황량함과 쓸쓸함을 보여준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살았다. 파이팅하면 잘 될 줄 알았는데, 조금 더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친구를 살린 행동 뒤 남은 것은 짐이 되어버린 두 다리와 떠나버린 연인이다. 희망은 여전히 멀리 있다. 헐벗은 나무와 매서운 추위, 어둑한 사위 속에서 그들이 갈 길을 잃었듯 행복도 그들에게 오는 길을 잊은 듯하다.

 

답답한 택진은 택기에게 펜싱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음악이 시작된다. 휠체어의 택진이 일어나 펜싱을 한다. 검은 무대 위 밝은 조명 아래 양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보통사람’ 셋이 등장한다.

 

- 남은 자들의 술잔

 

택진은 ‘보통사람’들과 펜싱을 한다. 마치 이 장면을 위해 달려온 듯 전율 동시에 희망을 맛보게 한다. 힘찬 기합소리, 역동적이고 빠른 움직임, 회전무대의 박진감, 열정, 헐떡임, 뛰는 심장, 그 모든 것이 모여 택진의 심장과 관객의 심장이 같은 크기와 울림으로 뛰도록 한다. 칼끝으로 전해지는 시원하고도 날카로운 바람이 객석을 가른다. 택진은 이제야 살아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다시 산에 오른 택진은 정상에 섰다. 더 이상 오를 때가 없다. 더 이상 갈 때도 없다. 이 짜릿함이 술 취한 택진의 상상으로 힘없이 전락해버리고 남은 건 변하지 않는 삶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남루한 인생과 펜싱은 예상을 뒤엎고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익명성을 보장하는 마스크의 ‘보통사람’과 어디에서도 평범할 수 없는 택진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현실을 탈출하고자하는 돌파구로서의 펜싱은 신선하다. 섬세하고도 리얼한 연출은 그들이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사는 우리의 자화상임을 상기시킨다. 주인공들을 이해하는 것에서 나아가 기꺼이 그들이 돼 살기를 마지않았던 배우들이 남발되는 감정의 과잉을 막았다. 오버된 절망은 없다. 택기와 택진이 술잔을 부딪치며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편집국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고품격 경제지=파이낸스 투데이> FnToday=Seoul,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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