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현의 스테이지피플] 작품에 품격을 더하는 “뮤지컬” 배우, 류정한
[조수현의 스테이지피플] 작품에 품격을 더하는 “뮤지컬” 배우, 류정한
  • 편집국
  • 승인 2010.04.2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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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한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대한민국 뮤지컬계에서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 1호 뮤지컬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은 채 1997년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토니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줄곧 뮤지컬 한 길만을 걸어온 그에게 뮤지컬 팬들이 보내는 신뢰는 대단하다. ‘류정한이 출연한다’는 것은 일정 수준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보증 수표로 작용할 정도로 그는 작품에 품격을 부여하는 배우다. 류정한의 출연작은 그의 팬들에겐 반드시 봐야 할 ‘It Musical’이 되고, 설사 그의 팬이 아니더라도 기대해도 좋을 작품 리스트로 분류된다. 류정한도 자신의 이름이 갖는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언제부턴가 개인적인 성취를 떠나 좀 더 큰 틀에서 작품을 고르게 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그런 그가 복수의 화신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되어 돌아온다. ‘영웅’과 ‘맨오브라만차’를 끝내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한동안 휴식을 취하지 않을까 했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류정한이 ‘몬테크리스토’를 선택한 이유,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아름다운 음악과 탄탄한 텍스트, 흥미로운 유럽 뮤지컬

 

“솔직히 말씀드리면 ‘몬테크리스토’는 계획에 없었던 작품이에요. 좀 쉬고 7월에 하기로 약속한 작품에 주력할 예정이었는데 ‘몬테크리스토’의 넘버가 너무 아름다워서 욕심을 좀 내보자 생각했어요.”
21일 프리뷰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연습실에서 만난 류정한이 밝힌 작품 선택의 첫 번째 이유다. 음악적 완성도를 무척 중요시하는 그다운 대답. ‘몬테크리스토’의 작곡가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사랑 받는 ‘지킬앤하이드’의 노래를 만든 프랭크 와일드혼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킬앤하이드’는 류정한의 손꼽히는 대표작 중 하나다.
“음악을 들으신 분들이 지킬 넘버와 비슷한 면이 있다 말씀들 하시는 데, 와일드혼이 작곡가라는 사전 정보 없이 들었으면 그렇지 않았을 거예요. 작곡가가 와일드혼이라는 걸 떠나 노래 자체가 아주 좋고, 고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 음악을 받쳐주는 텍스트도 탄탄하죠.”


지난해 3월 스위스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소개된 이후 라이선스 공연으로는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몬테크리스토’는 프랑스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1845년 작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해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에드몽 당테스가 은인의 도움으로 탈옥 후 치밀한 계획을 세워 복수에 성공한다는 스토리. 연습실에서 지켜본 ‘몬테크리스토’는 복수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로맨스와 모험담, 유머가 적절하게 녹아 있는 대중적인 작품이 될 듯 했다. 최근 몇 작품에서 계속 죽음으로 끝을 맺었던 류정한으로서도 실로 오랜만에 해피엔딩을 맞게 된 셈.
“결말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관객들이 복수라는 소재에 많은 기대를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서 비극으로 끝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죠. 그런데 결말에 대한 디스커션을 하다가 로버트 연출이 ‘우리 작품의 주제는 용서와 화해다. 몬테크리스토가 용서하고 화해하는 여정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말을 했어요. 그 견해에 수긍을 했고요. 처음엔 제가 너무 깊이 들어가니까 심각했었는데, 연습을 진행하다보니 몬테크리스토의 여정에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중학교 때 빠졌던 무협지 느낌도 나고요. (웃음) 방학 때면 ‘의천도룡기’, ‘영웅문’ 같은 몇십편짜리 비디오 시리즈를 빌려다 하루에 4,5개씩 잠도 안자고 보곤 했죠. (웃음)”
‘몬테크리스토’는 그 동안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라이선스 대작을 주로 해온 류정한이 처음으로 도전하는 유럽 뮤지컬. 자신에게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 같단다.
“유럽 뮤지컬 중엔 ‘엘리자베스’나 ‘모차르트’처럼 굉장히 클래식하고 좋은 넘버로 채워진 작품들이 많더라고요. 또 이번 작품엔 실제 펜싱 검을 가지고 하는 검술씬, 무술씬 같은 것들이 많아서 안 해 봤던 부분들을 경험하는 재미가 있어요. 생각보다 많이 힘들긴 해요. 합이 안 맞으면 다칠 수도 있고. 공연을 보시면 뭐 저 정도 가지고 그러나 하실 수 있는데, (웃음) 제가 몸을 잘 못 쓰는 배우예요. 그래서 몸을 날렵하게 만들면 숨이 덜 찰까 싶어 4kg 정도 체중 감량을 했어요. 사실 기준이, 성록이도 다 힘들어 해요. (웃음)”
몬테크리스토 역에는 류정한과 함께 엄기준, 신성록이 캐스팅됐다. 트리플 캐스팅의 맏형으로서 후배들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한 작품에서 처음 만났는데 방송을 하는 친구들이지만 뿌리가 무대고, 공연을 놓지 않고 꾸준히 해서 좋게 보고 있었어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저는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열정이 있는 친구들이니까 역시 열심히들 하고요. 서로 의지하고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 류정한의 마지막 욕심 ‘레미제라블’

 

2007년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 수상 인터뷰 이후 오랜만에 만난 류정한. 당시 “낼모레 마흔”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던 그가 진짜 불혹의 나이가 됐다. 일반인도 나이 먹는 게 서러운데 배우는 오죽할까 싶지만 세월은 그에게 안정감과 여유를 선물했다.
“30대 초반까지는 자신에게 집중하기보다 남한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뭔가를 애써 붙잡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정말 이제는 상이나 주인공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본의 아니게 주연을 계속 하고 있지만 (웃음) 작품이 좋고 제가 할 몫이 있다면 얼마든지 조연으로 무대에 설 용의가 있어요.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제가 ‘지킬앤하이드’의 어터슨이나 덴버스 경을 할 수도 있죠.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작품이니까요. 또 아주 뛰어난 후배가 지킬 역을 하고 있으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할 거예요. 훌륭한 조연으로 주인공을 받쳐주는 것. 그거야말로 후배를 위해서, 작품을 위해서, 관객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입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다들 그런 선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유를 찾았다고 해서 작품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은 아니다. 뮤지컬을 하면 할수록 노래와 연기에 대한 고민은 깊어지고 작품에 대한 책임감도 무거워 진다고. ‘몬테크리스토’ 연습 현장에서 그는 1막에서 머리를 앞으로 내리고 2막에선 머리띠를 했다. 더워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스스로 세월의 흐름을 느끼기 위해 나름의 변화를 준 것이었다. 류정한은 연습 때에도 누구보다 진지한 배우다.
“이번 ‘몬테크리스토’도 그렇고 제가 했던 많은 작품들이 초연이었는데 그 책임감은 엄청나요. 첫 테이프를 잘 끊어야 꾸준히 선보일 수 있으니까요. 연기도 노래도 하면 할수록 힘들어요. 정답이란 게 없죠. 예전엔 뮤지컬 배우의 첫 번째 자질이 가창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비슷하지만 두 가지를 따로 생각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에요. 연기를 잘하면 노래를 잘하게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음... 가수보다는 배우 출신이 뮤지컬을 하는 게 훨씬 나은 경우가 많아요. 뮤지컬 넘버라는 게 결국 감정을 노래로 연기하는 건데,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걸 표현하기가 참 힘들거든요. 노래가 좀 부족해도 최선을 다해서 감정을 표현하는 친구들이 훨씬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상이나 주연의 욕심은 접은 지 오래라는 류정한에게도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욕심이 있다. 바로 조만간 공연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한 ‘레미제라블’이다. 특별히 맡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공공연하게 얘기했지만 ‘레미제라블’은 참여 자체에 의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코러스라도 상관없어요. 지금까진 주로 제의를 받는 입장이었는데 ‘레미제라블’을 위해서 오랜만에 순수한 의미의 오디션을 보게 될 것 같아요. 오디션을 봐서 어떤 역할이든 주어져서 하게 된다면 작품 욕심은 없을 것 같아요.”

 

- 나를 꿈꾸게 하는 뮤지컬, 행복한 배우 되고파
 
 “도전하고픈 캐릭터가 있나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세요?” 라는 질문은 대부분의 인터뷰어가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일 게다. 데뷔 후 13년이 넘게 뮤지컬 배우의 길을 걸으며 대작 뮤지컬의 주연을 도맡아온 류정한에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질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스로 뮤지컬 배우라는 것에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그가 꾸는 꿈은 어떤 것일지도 궁금했다.
“이제는 행복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또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고요. 관객에게 행복을 주고 저 역시 극장의 공기 안에서 같이 행복감을 느끼고 싶어요. 우연히 시작한 뮤지컬이지만 뮤지컬은 점점 더 나를 꿈꾸게 해요. 예전에는 농담 삼아 마흔이 되면 배우를 그만두고 공연을 제작하거나 이태리 레스토랑을 차리거나 펜션을 운영해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웃음) 지금도 그런 생각은 있지만 오랫동안 관객들과 만나면서 행복을 나누는 것이 우선입니다.”
관객과 오래 만나기 위해선 체력 관리가 필수! 하루에 한 갑씩 피우던 담배도 줄였다.
“최근 두 달 동안 한 갑 정도 피운 것 같아요. 고1때 시작해서 23년 동안 담배를 폈는데,  꼭 목 관리를 위해서 줄인 건 아니고요. 전에 지인으로부터 ‘너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냐’란 질문을 받았어요. 내가 나를 너무 아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지난 구정 때 담배를 줄여보기로 결심했어요. 너무 스트레스 받을까 봐 금연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1년 안에는 완전히 끊어보려 해요. (웃음)”
‘몬테크리스토’ 이후 류정한은 오랜만에 소극장 작품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두 친구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룬 2인극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가 그의 차기작이 될 것 같다고.
“음악이 참 아름답고 연극적인 색깔이 강한 작품이에요. 제 나이에 맞는 깊이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고 기대가 큽니다.(웃음)”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2010년 4월 21일 ~ 6월 13일. 유니버설아트센터. 로버트 요한슨 연출. 류정한, 엄기준, 신성록, 옥주현, 차지연 등 출연)

 
조수현 기자 lovestage@empal.com

<고품격 경제지=파이낸스 투데이> FnToday=Seoul,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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