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석 칼럼] 대선, 일회용품을 포장지 보고 고르나?
[박대석 칼럼] 대선, 일회용품을 포장지 보고 고르나?
  • 박대석 칼럼니스트
    박대석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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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화려한 포장 / 출처 dreamtimes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민에게 5년간 딱 한 번 사용하는 '일회용품' 같은 자리다. 따라서 소비자인 국민은 새 대통령이 국가지도자로서의 시대정신을 잘 포착하고 이를 실현할 능력 등 자질과 올바른 국가관· 철학의 완성도를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의 흠결이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심각한지가 중요하다. 또 분열을 끝내고 국민을 통합할 의지가 있는지 등을 잘 따져서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도 포장지에 현혹당해서 대통령이 아니라 부적절한 집단의 두목을 뽑아서는 안 된다. 기업이 일회용 물 잔을 팔려고 요란하게 포장할 일도 없지만, 소비자 역시 포장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포장지가 요란하고 내용이 부실한 상품은 한 번은 속아서 살 수 있지만, 재구매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상품은 한번 사면 중간에 폐기(탄핵) 처분하고 다시 돈을 들여 사지 않는 이상 5년간 어쩔 수 없이 써야 한다.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게 낭비된다.

▲ 이 때문에 상품의 본질이 빈약한 쪽에서 더욱 포장지 마케팅(네거티브)에 열을 올리기 마련이다.

일회용 컵 / 출처 dreamtimes

유권자는 이번 대선의 경쟁 상품인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 내년 대선 선거일까지 77일 남았다. 지금은 포장지에 해당하는 부인과 장모, 아들 등 문제에 대한 흑색선전에 대선 전까지 서로 해명, 검증할 시간이 있지만, 대선이 임박한 시점(15일 전후)에는 검증할 수도 없는 기가 막힌 괴담들이 사실인 양 떠돌 것이다.

2001년 16대 대선 때 김대업 씨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서류가 조작되었다고 거짓 진술 테이프까지 만들어 주장하였고 '국방의무'에 대해 민감한 국민은 사실 여부를 따질 시간도 없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허위 선전이 결정타가 되어 당선이 유력했던 이회창 후보는 낙선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 후 병역 비리 허위 사실을 유포한 김대업 씨는 달랑 1년 9개월의 수감 생활을 하고 풀려났다. 이러한 일이 이번 대선 중에 재연될 위험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누려오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 공화주의가 어느 날 그냥 던져진 선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정치인들은 시민의 수준에 맞추어 먹힐 만큼 교묘히 조종한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민주주의 태동과 변천에 대하여 잘 알 필요가 있다.

▲ 자유 민주주의

아크로폴리스 / 출처 flickr

민주주의는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인 고대 그리스에서 신(神)이나 자연이 만든 질서나 법칙이 아니라, 인간, 정확히 시민이 만들고 실제 운용한 제도이다. 아테네라는 폴리스(마을, 소도시)에 사는 사람 중, 먹는 경제문제를 해결한 자유로운 사람들이 시장(광장, 아고라) 또는 마을 언덕(아크로)에 모여 마을 문제에 대한 공통의 문제에 대하여 논의한 것이 정치다.

시민 모두가 폴리스의 주인(민주)이고, 서로의 생각, 경제적 수준, 성향이 다른 사람이 조화(공화)롭게 타협(절차와 제도)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며 공화정이다. 지도자는 돌아가면서 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공화주의는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라 시스템이 하는 일이고 그 기준이 헌법이다.

자유를 가진 시민들이 공동의 공적(公的, 지금의 국가) 영역을 만들어 공통의 문제를 타협하여 해결하고 적합한 절차와 제도를 만드는 행위다. 정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 고도의 가치 있는 행위이다. 정치하는 자체가 목적이지 정치를 통하여 개인적인 이득(특히 경제적)을 꾀하고자 함이 없는 일이다.

왕도정치, 그럴듯한 이념으로 포장한 위대한 지도자, 신의 이름으로 하는 정치는 결국 시민은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피지배자가 되는 전체주의, 독재가 된다. 정치가 아니라 통치만 있고 시민이 아니라 자유가 없는 피치자(피지배가)만 있을 뿐이다.

왕정, 전제, 전체, 독재자는 대(大)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늘 소(小)를 희생시킨다.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히틀러, 폴 포트들은 수천, 수백만 명을 너무나도 당당하게 무참하게 학살했다. 학살에는 항상 무지한 홍위병들이 완장을 차고 앞잡이 노릇을 한다.

희생당하는 대상과 기준은 그때그때 통치자 또는 독재자의 편의에 따라 피지배자를 갈라치기를 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 노사, 지역, 종교, 피부색, 성별 등 만들기 나름이다. 하지만 시민이 주인인 민주주의는 단 1명의 소수의견도 존중하고 타협하려 하지만 다른 제도는 소수의견은 무시되고 희생당한다. 민주주의 말이 쉽기 어려운 제도이다.

▲ 정치는 양립 불가능한 비극과 보복의 악순환을 끝내는 행위.

프랑스 화가 세바스티앵 노르블랭의 1825년 작 ‘폴리네 이케스에게 제주(祭酒)를 바치는 안티고네’. 프랑스 파리 국립 고등 미술학교 소장

인간은 늘 양립 불가능한 비극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한 상황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양보할 수 없는 윤리, 철학, 가치관, 이익, 공동과 개인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사건이 비극이고 늘 있는 인류 역사이다. 늘 한쪽은 당하고 당한 쪽은 복수하며, 복수 당한 측은 대를 이어 보복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를 타협하여 막는 일이 정치다.

기원전 440년경에 공연한「안티고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크레온은 테바이의 왕으로서 왕권의 확립을 위해 '신(神)의 정의'에 입각한 기존의 윤리적 관습을 무시했다. 그는 외국 군대를 동원해 조국과 전쟁을 벌인 '배반자' 폴리네 이케스의 장사(葬事)를 금지했으며, 그를 매장하는 자는 누구라도 국법에 따라 엄히 다스리겠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친오빠의 시체를 매장하지 않는 것은 신의 계율을 어기는, 인륜에 어긋나는 행위임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목숨을 걸고 왕명을 어겨 가면서까지 오빠의 장사를 지내 주기로 마음먹었다. 하늘의 법(인륜)과 왕명(국가의 법) 사이의 모순적인 상황에 놓인 것이다. 비극이다. 이러한 비극을 막고 해결하는 일이 정치다.

그리고 인간사회 가장 원초적인 정의는 복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이고 사실 최초의 함무라비 법전과 구약 성경의 출애굽기의 내용이기도 하다. 공자 역시 아버지의 원수와 같은 하늘에 살 수 없다고 하는 이른바 불구대천(不俱戴天)이다. 무협지 대부분이 복수 이야기고, 일본의 사무라이 세계관을 대변하는 주신구라( 忠臣蔵, 충신장) 도 복수 이야기다.

비극으로 발생하여 연속되는 보복을 끝내는 일이 아테네에서 만든 민주주의 정치이다. 그런데 정치가 앞장서서 숙청이나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선동하여 비극을 양산하고 보복을 잉태시키는 일은 민주주의 기본을 모르는 일이다. 국민을 갈라치고 반정부 투쟁이 민주주의 본질이 아니다.

▲ 거저 얻은 자유민주주의 아니다. 이제 제대로 다듬을 기회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는 200년밖에 지속하지 않았다. 기원전 322년 마케도니아에 그리스가 정복되면서 민주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후 공화정은 기원전 509년부터 기원전 27년까지 로마로 당분간 이어졌다.

이후 1,500년 동안 민주주의는 신의 정치인 중세시대에 자취를 감춘다. 그러다가 이탈리아에서 14세기~16세기 르네상스 시절에 마키아벨리 등의 사상가들이 공화주의를 부활시킨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의 세습 통치로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면서 다시 공화정은 사라진다.

그런데 누구보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잘 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9세기 중후반 고대 그리스의 경제와 정치 관계를 뒤집는다. 모든 가치는 노동에서 나오고 자유는 국가가 소멸할 때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특정 계급(저본가, 영주)이 사라지고 농노, 노동자 계급이 생산수단을 강제, 폭력으로 장악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특정 계급의 일당, 일인 중심의 나라가 되면서 시민들의 자치, 정치는 소멸되고 독재만 남게 되었다.

결과는 자국민 6천만 명을 학살한 레닌과 스탈린의 무도한 전체주의, 4천만 명을 굶겨 죽이고 때려죽인 모택동의 인민민주주의, 8백만 명의 전체 인구 중 2백5십만 명을 처형시키고 굶겨 죽인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킬링필드가 일어났다.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그뿐이랴. 3대에 걸친 수령체제를 유지하면서 동족을 죽이고 수용소에 보내서 고문하고 굶겨 죽이고 때려죽이는 북한의 노동자 낙원(?)은 주민의 42.4%가 영양부족 상태이고 인권이 없는 현존하는 지옥이 되었다. 모두 민주주의와 정치를 실종시킨 마르크스의 독극물을 마시고 괴물이 된 나라들이다.

미국의 자유여신상과 그 앞을 지나고 있는 미국 해안경비선 / 출처 flickr

민주주의 공화정이 부활한 것은 18세기 후반부 영국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동부 연안에 있는 13개 작은 정착촌이다. 1776년 독립혁명 당시 2백5십만 명의 북아메리카 정착민은 초강대국 영국을 물리친 후 왕정 대신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택했다. 지금의 미국이다. 정착민 모두가 주인인 민주주의, 정착민들이 공동으로 하는 정치형태의 공화주의 국가를 만든 것이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그대로 부활시킨 것이다.

미국의 지도자는 바뀌어도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 보완 발전한다. 때로는 유능한 지도자가 나오고 때로는 엉망인 대통령이 집권하지만 그렇다고 나라가 요동치지 않는다. 언제든지 시민이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45명의 전직 대통령이 퇴임 이후 구속되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전직 대통령 장례 때는 미국이 멈출 정도로 애도를 표하고 최고의 예우를 갖춘다. 부럽다. 우리는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차가운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다. 두 명의 다른 전직 대통령은 얼마 전 돌아가셨지만 현 정부는 걸맞은 예우에 소홀했다. 아니 버려두었다. 부끄럽다.

미국이 부활시킨 위대한 자유민주주의, 공화주의를 한국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과감하게 도입했다. 해방 당시 한국 지식인 대부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비에트 공산주의에 대한 호기심이 팽배하였을 때였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왕세자인 소현세자는 8년간 청나라에 볼모(인질)로 있으면서 청의 핵심세력들과 중국의 몰락 과정과 서구의 문명과 시스템을 제대로 체험하였다. 그러나 귀국하여 망한 명나라의 분신인 소중화(小中華, 중국은 중화)로 자처하며 쇄국을 한 국내파들에게 사실상 독살(의문의 죽음)당했다.

역사에 가정이 없지만, 이때가 1645년이니 소현세자가 정권을 이어받았으면 일본보다 먼저 개화하여 치욕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는 미국에서 체험한 자유민주주의를 거세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민주주의의 싹을 심었고 사람들이 쉬고 가는 중간 크기 나무로 성장하였다. 이 덕분에 북한과 국력차이는 50배 이상 벌어지고 부족하지만, 대통령도 선거로 바꾸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러한 분명한 역사적 사실과 현재 결과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어떤 역사와 현실을 보고 배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미국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세계에 전파하려고 노력하였고, 독일, 일본, 한국은 어느 정도 성공한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자체는 늘 불안한 체제이다. 시민이 함께 참여해야 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250여 년된 민주주의가 확실한 제도로 가려면 다듬고 보완해야 할 일이 많고 이러한 노력을 지속하여야 한다.

주인인 시민이 정치에 방관하고 비난만 하며, 교묘히 거짓 선동술(프로파간다)에 조종당하면서, 거저 권리만 얻으려고 왕이나 독재자를 추종하고 모시려는 행태로는 민주주의는 존립할 수 없고 붕괴한다. 그 틈을 항상 혁명가, 독재자나 전체주의자들이 파고든다. 뛰어나고 유능하다고 하는 리더가 오히려 전제, 전체주의 국가를 만들려고 한다.

▲ 시민의 수준만큼, 대통령과 정치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성인군자나 신이 지배, 통치하는 제도가 아니고 시민이 모여서 타협하고 정치하며 자치(自治)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완벽하고 일사불란한 제도가 아니다. 시민 중 민주 의식이 높고 설명을 잘하고 절충을 잘하며 시민들과 소통하며 통합하려는 리더 정도가 필요한 제도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 대통령은 인성과 자질 두 가지가 다 중요하다. 모두 우리와 같은 시민 중에서 한 명을 대신 뽑는 것이니 절대 우리 수준을 넘어서는 초월자, 초인이 아니다. 따라서 시민 수준만큼의 대통령이 나오고 정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좋은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비스마르크는 정치는 가능한 것, 달성할 수 있는 것의 예술이다. 다시 말해서 차선책의 예술이라 했고,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정치는 가능한 것의 예술이 아니고, 처참한 것과 밥맛 떨어지는 것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라 하였다. 대통령을 선택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국민을 갈라놓고, 대통령 된 이후 상대편을 손보려고 생각하며 그런 의도로 표를 모으는 후보는 민주주의 기본도 모르는 자이다. 하물며 대통령이라는 일회용 리더를 선출하는데, 상품의 본질이 아니고 별 영향 없는 일회용품의 포장지라 할 수 있는 부인, 장모, 아들 등으로 선거판을 요동치게 하고 여기에 현혹당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은 통합의 대통령으로 보복을 끝내고 미래를 향해가는 지도자여야 한다. 오엑스(OX)문제도 조금은 알아야 정답을 찍는 요령이 생긴다. 벌써 몇 번이나 보는 시험인데.

칼럼니스트 박대석

 

중앙대 경영학 석사, 은행, 주택금융공사, 국제무역사, 부동산개발전문인력 출신의 금융전문가

바른역사회복국민운동본부 사무처장 및 5개은행 연합회 사무총장 및 회장 역임.

현, 한국디지털자산금융협회 설립추진위원장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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