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전기요금까지"…여름 두려운 에너지 취약계층
"코로나에 전기요금까지"…여름 두려운 에너지 취약계층
  • 김건호 기자
    김건호 기자
  • 승인 2021.07.2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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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사는 김모(85)씨는 쓰던 에어컨이 고장 났는데도 고치지 않고 있다.

덥다고 에어컨을 마냥 틀었다간 '요금 폭탄'을 맞을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마솥더위가 예고된 올여름을 주방과 안방에 1대씩 있는 선풍기로만 이겨낼 작정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한 자락이라도 쐬려고 중곡제일시장 인근 가게 앞에 앉아 있던 김씨는 전국에서 일시에 전기가 끊기는 '블랙아웃' 우려가 있다는 말에 "선풍기도 못 틀면 어디 갈 데도 없고 죽는 것밖에 방법이 있겠냐"며 웃었다.

서울 한낮 기온이 34도까지 오른 20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과 강북구 삼양동, 광진구 자양동 노후주택·쪽방 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은 폭염에 노출돼 있었다.

주민 대다수는 햇볕이 내리쬐는 바깥 출입을 삼가고 실내에 머무르고 있었고, 대다수 가구는 에어컨 없이 창과 대문을 활짝 열어놓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장을 본 물건을 들고 걸어가던 노인들은 얼마 가지 못하고 전봇대에 기대 쉬거나 건물 앞 계단에 주저앉았다.

신당동 개미골목에서 만난 구멍가게 주인은 선풍기만 틀어놓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는 "전기세 걱정에 에어컨은 거의 틀지 않는다"면서 "소나기 때문에 습도가 높아 괴로울 때만 잠깐 틀어놓는다"고 했다.'

삼양동에 사는 90세 노인은 집 밖 그늘진 곳에 나와 있었다. 그는 "집에 있으면 덥고 바람이 불면 그나마 좀 시원하다"며 이날 오후 예고된 소나기가 더위를 한 김 식혀주길 바라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한여름 무더위 피난처인 복지시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악화로 운영시간을 단축해 취약계층은 더욱더 폭염에 내몰리는 실정이다.

중구가 운영하는 신당동 개미골목 쉼터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 이후 운영시간을 4시간 줄여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만 운영한다. 하루 10여명이 방문하던 쉼터는 이용자가 절반으로 줄었다.

이날 오후 1시께 텅 빈 쉼터를 지키고 있던 관리자는 "주민 대부분이 독거노인인데 백신을 맞아도 워낙 코로나19를 조심스러워해서 쉼터를 찾지 않는다"고 전했다. 자양4동 쉼터도 평소 50∼60명 방문하던 인원이 최근 4∼5명으로 줄었다.

사상 최악의 더위가 발생한 2018년 여름에 이어 올해도 살인적인 폭염이 예고됐지만, 이처럼 실내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없는 소위 '에너지 빈곤층'을 정의할 지표나 복지 수요 파악을 위한 실태조사는 거의 없는 상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박광수 박사는 21일 "아직 국내에서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정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등 해외에선 소득 대비 과도한 에너지 비용을 지출하는 가구를 에너지 빈곤층으로 보지만, 필요한 에너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가구까지 합쳐야 에너지 빈곤층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구원 안전환경연구실의 황인창 연구위원은 "올해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폭염이 일상화되는 상황에선 에너지 빈곤 현황을 먼저 파악해야 그에 따른 지원이나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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