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칼럼] 진보의 종말이 다가온다
[박한명 칼럼] 진보의 종말이 다가온다
  • 박한명
    박한명
  • 승인 2020.07.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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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 누구 책임인가

[파이낸스투데이 박한명 논설주간]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너무 미안하다. 화가 나고 참담하다.”

“서울시 울타리 안에는 유사한 일이 없는지 살펴보겠다. 어떤 폭력과 인권 침해도 용서하지 않겠다”며 가혹행위를 당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던 최숙현 선수를 애도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 글을 쓴 며칠 후 자신도 같은 길을 선택했다.

정치 인생 절정의 시기에 날벼락처럼 붙은 성추행범 의혹의 불명예로 인해 평생을 인권 변호사로 자부해온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거부당할 까 공포와 절망감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 아닌지 추측할 뿐이다.

고 박원순 시장은 자타 공인 인권운동의 대부였다. 1980년대 인권변호사로 출발한 그는 시민운동의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를 만들어 성공적인 모범사례를 만들었다. 좌파 역사투쟁의 대표격인 민족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을 지내며 힘을 보탰고 민변의 전신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 창립멤버로 민변 창립 51인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이다.

얼핏 떠오르는 굵직한 단체들만 살펴봐도 박 시장은 대한민국 소위 진보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두였다.

진보와 좌파치고 박 시장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박 시장은 정치적 반대세력에게는 평생 재벌 기업의 약점을 잡고 등을 쳐 기생해온 약탈자, 또는 대한민국 역사를 좌경화시킨 핵심 좌파 인사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쏘아 올린 무상급식 이슈와 안철수 등의 조력을 받아 2011년 서울시장에 당선된 후 서울시장 최초로 민선 3선 시장이 되었지만, 반토건 철학을 바탕으로 무상급식, 도시재생, 환경문제 등 좌파적 이데올로기에만 집착한 무능한 시장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서울대공원 낙하산 인사 사례처럼 서울시 관련 각종 단체에 측근 인사 꽂아 넣기나 방배동 월세 250만원 논란, 옥탑방 거주쇼, 반값등록금 등 포퓰리즘 행정으로 유난히 튀기도 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에서 진보가 깨달아야 하는 것

그러나 어찌됐든 오늘날 진보의 뼈대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진보의 대부는 박 시장이었고 그러한 사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명함조차 내밀 수 없을 만큼 큰 자리를 차지한다.

한 가지 의문점은 진보의 영역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을 볼 때 박 시장이 왜 그렇게 빨리 극단적인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무엇이 그를 체념하게 만들고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같은 혐의를 받았던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경우 여권 내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수습했던 정황과 비교해 봐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언론 보도를 토대로 보면 박 시장의 전 비서였던 피해자는 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성추행 혐의 고소장을 접수하고 9일 새벽까지 피해자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박 시장은 8일 오후 일부 측근들과 대책회의를 했는데 이 자리에서 시장직 사퇴 등 대응방안이 거론됐다. 그러나 9일 오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등산복 차림으로 공관을 나섰고 10일 0시 20분쯤 북악산 숙정문 인근 숲 나무 부근에서 발견됐다는 것이 언론이 추적한 기록이다.

아무리 수습할 시간이 짧았다고 해도 그동안 여권이 조국, 윤미향 사태 때나 오거돈 전 시장 때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피해자가 조사를 받고 있을 동안 이 사실은 청와대에 즉각 보고되었을 것이다. 만일 청와대에서 나섰다면 박 시장이 그래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랬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우연이지만 오거돈 전 시장은 대선캠프에 합류해 문 대통령을 도운 사람이고 박 시장은 대선후보 경선에서 경쟁자였다.

이번 사건으로 정치권 주변에서 떠돌던 ‘안이박김 숙청설’이 다시 불거지는 이유도 이런 사연 때문 아니겠나. 어찌됐든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건 불행이다. 안타까운 고인의 죽음을 놓고 음모론을 꺼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박원순 시장의 죽음은 조국이 증명한 진보의 위선과 윤미향이 드러낸 진보의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종합판이라는 점은 상기시키고 싶다.

박원순표 서울시정은 자기편엔 관대하고 반대편엔 엄격했다.

박 시장의 진영의식, 반쪽짜리 관념 탓이었다. 여권의 대부와 같은 인물이 성추행과 같은 사건으로 단박에 무너진 이유도 따져보면 그 과정에서 내면화되고 강화된 이중잣대, 내로남불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여권 인사들이 “박 시장의 공이 컸다” “성추행 혐의는 무죄 추정” 등 뒤늦게 박 시장을 옹호하고 나섰다고 한다.

박범계 의원은 "맑은 분이시기 때문에 세상을 하직 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는 느낌이 든다"고 했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삶을 포기할 정도로 자신에 대해 가혹하고 엄격한 그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고 했다.

여권이 뒤늦게 미화한다고 고인의 명예를 다시 살리진 못한다.

진보의 모순을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불행한 사태는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 여권 방식의 추모는 오히려 고인을 모독하는 것이다. 불편해도 진실을 정면에서 마주해야 더 이상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칼럼니스트 

파이낸스투데이 논설주간 박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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