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칼럼]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전정희 칼럼]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 전정희 소설가
    전정희 소설가
  • 승인 2019.09.3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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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바야흐로 하늘이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이 왔다. 천고마비의 유래는 중국 은나라 때 흉노의 침입과 연관이 있다.

과거 은(殷)나라 때부터 중국 북방에 나타나기 시작한 흉노족(匈奴族)은 거의 2천 년 동안 중국의 각 왕조나 백성들에게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척박한 초원을 생활 근거지로 하여 유목 생활을 하는 그들의 강점은 말에 의한 기동력이었다.

흉노족들은 기동력을 발휘해 바람같이 국경을 넘어 들어와 중국 북변 일대를 휘저으며 약탈을 자행하고는 다시 바람처럼 달아나곤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두려운 계절이 있었으니, 바로 겨울이었다. 척박한 초원에서 방목과 수렵을 하는 것이 생활 방편의 전부인 흉노족에게 겨울은 초원이 온통 얼어붙는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 겨울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보다 따뜻한 곳에서 농경 생활을 하고 있는 중국인들을 약탈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에 늘 흉노의 침략을 두려워하던 북방 변경의 중국인들은 “하늘은 높아 푸르고 말이 살찔(천고마비) 때가 가장 두려워! 언제 흉노가 쳐들어올지 모르니까.”라고 푸념했는데, 이것이 천고마비의 유래가 됐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며 독서의 계절이다. 가을은 여름과 겨울 사이의 계절로 절기상으로는 9월 23일 ‘추분’부터 12월 21일 ‘동지’까지이고, 9월에서 11월 사이를 말한다. 가을이 특히 좋은 이유는 땀이 줄줄 흐르고 생활하기 힘들었던 무더운 여름을 막 지나 바람이 살랑살랑 일어 생활하기 딱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정말 가을에 독서를 많이 할까? 답은 ‘아니다’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전국 공공도서관 대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들은 오히려 가을에 책을 가장 적게 읽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령 484개 공공도서관 대출데이터 약 4,200만 건의 분석 결과를 보면, 대출량이 가장 적은 달은 9월, 11월, 10월 순이었으며 오히려 대출량이 가장 많은 달은 1월과 8월이었다. 즉 ‘독서의 계절’로 불렸던 가을 대신, 실제로는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 오히려 독서의 계절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 되었을까?

아마 등화가친(燈火可親)이란 사자성어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등화가친이란 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말로, 학문을 탐구하기에 좋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말은 한유(韓愈)가 아들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지은 시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 중의 한 구절로, 가을이 날씨가 서늘하고 하늘이 맑으며 수확이 풍성해 마음이 안정되어 공부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즉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또 대나무를 활용해서 만들어 글을 적은 죽간도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죽간은 105년 중국의 채륜이 종이를 발명하기 전까지 동양에서 쓰인 주된 책의 재질이다. 죽간의 재료가 바로 대나무인데 이 대나무는 봄에 죽순이 나서 그것이 재질로 활용되려면 가을까지 기다려야 했다. 즉 가을이 되면 죽간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책을 구하기가 쉬웠고 그래서 가을에 책을 많이 읽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처음 정의한 곳은 바로 1925년 10월 30일자 <조선일보>에서였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도서관주간’을 맞아 경성부립도서관과 조선총독부도서관이 무료공개 행사를 한다는 내용의 기사도 함께 싣고 있다. 그러나 당시는 일제강점기로 출판되는 책들 대부분이 다 일본어 서적인 상황에서 독서는 조선인을 일본말과 일본문화에 동화시키기 좋은 문화적 도구가 되었으므로 ‘독서의 계절’ 취지가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아무튼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명명한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책을 읽기 좋아서가 아니라 단풍여행, 관광, 소풍 등 바깥으로 놀러 다니기에 좋은 날씨에 책도 좀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는 의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가을은 겨울을 대비하여 모든 생물들이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도 가을에 곡식을 차곡차곡 창고에 쌓아놓듯이 머릿속에 지식을 담아두기에 적절한 시기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선선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푸른 하늘과 몽실몽실한 구름이 피어오르는 이 가을에, 각자 좋아하는 책 한 권과 커피 한 잔을 들고 책 속으로 나들이를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전정희 소설가 저서 '하얀 민들레' '묵호댁'
전정희 소설가 저서 '하얀 민들레' '묵호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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