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덕의 등산재구성] 명함 한장으로 1970년대 무주 구천동을 잠간 배회해 봅니다.|
[김진덕의 등산재구성] 명함 한장으로 1970년대 무주 구천동을 잠간 배회해 봅니다.|
  • 김진덕
    김진덕
  • 승인 2019.03.1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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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래 시절풍경'의 기록자를 자임^^하면서 놓치고 있는 게 여전히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명함 말이다.

언제적인지 모를 무주 구천동의 한 여관 명함을 갖게 되었다. 이 명함을 만지작거리면서, 같은 시절을 함께 산아래 상가를 재현 또는 그 상가가 자아낼  추억의 길그림을 그려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립공원 무주 구천동 연락처 무주구천동 36번, 서울 62-0404... 한글자 한글자가  언제 만든 명함인지를 알게하는 힌트와 같다.

덕유산이 10번째 국립공원이 된 게  1975년 2월 1일의 일이다. 서울 전화번호 앞자리가 2자리에서 3자리로 바뀐게 70년대 후반의 일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 이 명함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새로 만든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회의실. 목욕실. 차고 완비.  단체환영" 라는 단어들은  당시 무주 구천동에서 여관의 역할이 어떠했는지 또는 어떤 목적을 갖고 덕유산을 찾았는지를 상상해 보게 한다. 명함에 이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줄 비로소 알게 된다.

그동안 산악계에서 B급자료로도 대우받지 못한 감이 없지 않은 이 책, 박동현 교수의 명저 '구름에 달가듯이'(1976년판)을 보자. 해당 명승지의 초판인 1972년과 거의 같은 걸로 알고 있다.

무주구천동의 비경 한가운데 삼공리 시설이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깊숙히 들어간 건 좋은데, 그렇다보니 집단시설 아래에 나제통문까지 있는 명소들이  평범해진 결과를 낳게 된다.

호텔로는 관광호텔과 산장호텔이 있어 이곳의 권위를 내세우고 있는데, 서울여관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게 된다. 서울호텔은 1970년대 초, 국립공원으로 조성되기 전부터 이곳에 자리잡고 있던 터줏대감으로 보인다. 

아마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영업에 대한 기대감은 엄청 높아졌을 것이다. 명함의 '국립공원 무주구천동'이라는 문구에서 그런 기대감이 읽힌다. 여기서 왜 국립공원 덕유산이라고 하지 않았을까도 궁금할 수 있겠다. 그 시절에는 구천동 계곡이 덕유산보다 더 명성이 높아서 덕유산이 구천동의 '뒷산' 역할을 할 때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 사라졌을까?

1992년 동아일보에 의하면, 무주 구천동에 '새서울장 여관'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상도의상 비슷한 이름을 짓지 않는 걸 염두에 두면, 서울여관은 이때쯤 사라졌거나 새서울장여관으로 개명되었을 것이다.

이상 B급 자료를 통해 오랜 세월  무주 구천동에서 시민들이 추억을 공유하게 한  여관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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