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동수가 바람났다 <3화>
[웹소설]동수가 바람났다 <3화>
  • 조다슬
    조다슬
  • 승인 2016.12.2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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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작가 양성 프로젝트

조다슬

중학생 시절부터 지혜와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지혜까지 세 명의 ‘여행 팸’이었다. 실제로 여행을 간 것은 두 번뿐이었지만 동네 친구들이라 한 달에 다섯 번은 보았고 대화 주제가 떨어질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없는 고민을 만들어내 수다를 떨곤 했는데, ‘남자친구가 육체적인 바람을 피우는 게 더 싫으냐, 정신적인 바람을 피우는 게 더 싫으냐.’ ‘남자친구와 헤어진 날 간 클럽에서 완벽한 이상형이 대쉬하면 어쩔꺼냐.’ 등의 시시콜콜한 주제였다.

그중 하나가 ‘길을 걷는데 다른 여자와 팔짱을 끼고 걸어오는 남자친구를 마주친다면.’하는 것이었는데, 지혜는 그때 아주 단호하게 “바로 가서 무슨 사이인지 물어봐야지. 혹시 바람이 아닐 수도 있고, 만약에 바람이면 그 자리에서 헤어지는 게 당연하지.”하고 열을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그 말처럼 달려가서 따지지 못했고, 그렇다고 다른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숨지도 않았다.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선 것도 아니다. 그냥, 걷던 길을 계속 걸었다. 계속계속 걷다가,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깨끗이 씻고 침대에 누워서, 그제야 생각했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지혜는, ‘나는 이제 스물아홉. 또 다른 남자를 만나서 또 알아가고, 양보 하고, 익숙해지고, 싸우고 화해하고, 그럴 수 있을까. 동수만큼 나와 비슷한, 평범한 사람이 있을까. 동수가 정말 바람난 것이 맞을까.’ 같은 생각을 하며 일주일을 보냈고, 동수와 한 번을 더 보았다.

그제서야 동수의 행동은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동수는 지난 주말, 무엇을 했는지를 얼버무렸으며, 지혜가 그것을 캐묻자 눈썹을 살짝 올리곤, “오늘 왜 그래. 너 원래 안 이렇잖아. 내가 너 그래서 좋아하는데” 했다. 핸드폰을 의식적으로 엎어서 내려놓았으며 화장실에 갈 때도 그것을 꼭 챙겼다. 지혜는 그날 동수에게 끝끝내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우선 자신부터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수가 바람났어,”

일주일 뒤,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여행 팸’은 그녀처럼 무던하지 못했다. 그중 성격이 가장 불같은 다은은 동수가 여자와 팔짱을 끼고 등장한 대목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지혜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며 말했다. “잠시만, 그 새끼 가죽 아직 안 벗겼다고 할 거면 말도 꺼내지마.” 기원은 여자가 동수 뺨에 뽀뽀하는 대목에서, “그 봐봐! 니 사진 프사 한 번 안 하는 거, 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난 그 사람 애초에 맘에 안 들었어.” 했다.

지혜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모든 말이 끝나자 기원은, “내가 니 헛똑똑인 줄 진즉에 알았다. 언제부턴 것 같은데?”하고 물었다. 지혜는 아직도 다은에게 잡혀있는 손목을 비틀어 빼며, “글쎄, 언제부턴 지는 잘 모르겠는데, 더 늦기 전에 알아서 다행이지 뭐.”하며 웃어 보였고, 그 순간 문득 강남 카페에서 유쾌하게 말하던 은하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 유쾌함은 은하의 마지막 자존심은 아니었을까. 나도 지금 이들에게 은하처럼 보이고 있을까.’ 하고 긴장했다.

지혜가 많은 연애를 해본 것은 아니다. 처음 남자친구는 스무 살 때였는데, 학과 선배였다. 그는 말 그대로 지혜의 첫사랑이었고, 지혜는 남기는 것 없이 마음을 다 주었다. 그와 함께일 때면 정말로 심장이 간질간질 벅차올랐고 흔하디흔한 사랑의 관용구들이 정말로 딱 들어맞는 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더랬다.

그와 이별하던 날, 그녀는 방 안에서 해가 지기도 전부터 새벽녘까지를 울다 그치다 했다. 그러다 문득, 친구와 다투고 속상해 울던 자신을 달래주던 그 사람 생각이 나서,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울어도 자신을 달래줄 사람이 하나 없는 것이 사무치게 속상해서, 안방 문을 열고 주무시던 부모님을 깨워 엉엉 울기도 했다.

“그다음 연애의 이별은 그보다 나았고, 그다음 이별도 조금 더 나았어. 그래서 지금 내가 눈물 한 방울 안 나나 봐.” 그녀는 이어서 여전히 덤덤하게 말했다. “그런데 울지 않는다고 괜찮은 건 아니야. 그냥, 울어도 바뀔 게 없다는 걸, 이제는 알아서 그런 거지.” 그리고 지혜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사람이 상처로 배운다는 말은 다 자기 합리화야. 사실은 괜찮지 않은데 괜찮아야 해서 그런 척하는 거지.”하고 중얼거렸다.

“그래서, 너는 이제 어쩌고 싶은데.” 다은이 그제야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헤어져야지. 더 만날 수는 없지.” 그것이 지혜가 일주일간 생각해서 얻은 결론이었다. 어차피 신뢰가 깨진 그와 결혼은 못 한다. 그렇다면, 더 시간 끌지 말고 서둘러 헤어지는 게 답이다.

동수 같은 남자를 또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헤어질 거야? 뭐라고 하고? 바람 피는 거 봤다고 하고?” 기원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다은이 매섭게 말을 받았다. “너 그냥 호구같이 헤어졌다간 나 두 번 다시 못 볼 줄 알아. 그랬다간 니만 보면 나 속 터져 죽을지도 몰라.” 기원이 다시, “그 여자도 가만은 못 두지. 내가 생각하기에 분명히 여자 있는 남자인 거 알면서 만났을 거야” “커플 목도리도 싫다고 한 동수 오빠. 아니, 그 새끼가 운동화까지 맞춰 신은 거면, 그 여자 보통이 아니야.” 다은의 말을 마지막으로 그 여자는 이제 ‘쌍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지혜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간만에 여행 팸은 생기가 넘치는 듯했고 지혜는 그것이 조금 거북스러웠지만 그런 그들이 밉지는 않았다. ‘너희들 중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면, 당연히 나 역시 그랬겠지.’ 지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어떠한 우월감을 느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이, 그 이야기가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미진이나 은하처럼, 주인공이 된 듯한 그런 느낌.

여행 팸이 내린 결론은 어쨌든 그 여자에게 연락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여자에게 연락을 해보고, 그 뒤 행동은 그 여자 태도를 보고 정하는 것. “그런데 나 그 여자 얼굴밖에 몰라. 아니, 얼굴도 잘 몰라.” 지혜의 말에 다은이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야. 걱정하지 마. SNS로 사람 찾는 거 무지 쉬워. 너 그 새끼랑 친한 친구들 이름 다 불러봐.” 다은이는 기원이가 삭제했던 페이스북을 채 다시 깔기도 전에 그 여자를 찾아냈다. 그 여자의 이름은 새인. “흔하지 않은 이름이네.” 지혜는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놀라시겠지만 연락드려요.
저는 한동수 씨 여자친구입니다. 한동수와 어떤 사이인지 듣고 싶습니다.」

다은과 기원은 너무 예의 바르다며 질색했지만,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선 무조건 예의 바르게 나가는 게 낫다는 지혜의 주장 때문이었다. 다은과 기원은 답장이 오자마자 연락을 하라고 지혜에게 신신당부 한 뒤 헤어졌고, 지혜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새인에게서 답장이 왔다.

「내일 시간 어떠세요? 만나서 말하죠. 아니면 지금 당장도 괜찮습니다.」

‘이건 뭔가. 이 여자는 왜 이렇게 당당한가.’ 이 소식을 들은 여행 팸은 날뛰었다.

“보통 년이 아니라니까!” “약속 잡고 말해. 같이 가서 머리 뜯어줄 테니까.” “야 만나고 말고 할 것도 없네, 그냥 사진 찍어서 그 여자 회사게시판에 올려버려.”

지혜는 그녀를 만나려면, 일요일인 내일 보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일 하다 보면 화장도 무너질 테고, 지친 상태일 테니까. 친구들의 말대로 보통 여자가 아닌 듯했고 그녀는 작정하고 나가야 할 듯했다. 그녀에게 이제 동수의 바람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이 주인공인 이 이야기의 결말을 어떻게 짓는가. 그것이 중요했다.

「내일 2시. 서촌에서 봐요.」

지혜가 굳이 서촌을 고른 까닭은, 자신이 그들을 목격했음을, 단순히 심증만으로 이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넌지시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런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녀는 여전히 당당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카페 히로인에서 만나요.」

다은은 3개월간 준비한 PT를 앞두고 있었고, 기원은 돌이 막 지난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지혜는 다음날, 일요일 아침. 9시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시작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검정 아이라인에, 11mm짜리 속눈썹까지 붙이고 레드립을 꽉 차게 발랐다가 너무 작정하고 나온 것처럼 보일까 봐 살짝 닦아냈다. 옷은 제일 좋은 옷. 그런데 너무 화려하지는 않게. 다섯 벌을 갈아입고서, 신발도 운동화를 신었다가 워커를 신었다가 다시 구두를 신고서야 집을 나섰다.

서촌에 도착한 것은 1시 30분이었지만, 일찍 가지는 않았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꽃구경도 하고, 서점도 들어가고, 주변을 괜히 돌다가 2시가 되고 나서야 히로인의 문을 열었다. 새인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연한 갈색 머리에 진하지 않은 화장. 어린가 싶다가도 “안녕하세요, 홍새인입니다.” 인사하는 말투나 몸짓은 꽤 어른스러워서 나이를 정확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지혜입니다.”

그녀는 친구들이 일러준 대로 동수와 자신이 꽤 오랜 사이라는 것을 알려야지 싶었다. “저는 한동수와 2년을 만났어요. 2년 조금 넘게요.” 그런데 새인이 그녀 앞의 컵을 살짝 만지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올해로 6년을 만났어요.”

‘동수가 바람났다. 나랑 바람났다.’

이어지는 말에 지혜는 더욱 뜨악했다.

“사람 고쳐서 쓰는 거 아니라더니, 이번이 세 번째네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지혜는 갑자기 새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새인은 지혜의 표정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모르셨나 봐요. 이전 두 명 중 한 명도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더는 그 자식 만날 생각 없어요. 정 때문에, 내 젊은 시간이 아까워서 참고 넘겼는데, 이제는 안 되겠어요. 지혜 씨 만나려면 만나세요. 더 할 말 없으면 저는 일어나겠습니다.”

준비해 온 것 같은 말들을, 그 기색을 숨기지 않고 모두 뱉어낸 새인은, 자리를 뜨려고 일어섰다가 잠시 지혜를 응시했다. 그리고

“알고 만나신 건 아닐 거라 믿을게요.”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우리가 열을 올리며 욕하던 쌍년이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지혜는 가만히 앉아서, 새인의 지문이 잔뜩 묻은 컵만 바라봤다. 그녀는 아직 커피 한 잔 주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엄지손톱을 다른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여행 팸의 메신져방이 미친 듯이 울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끄고, 열흘 전 그날처럼 서촌을 걷기 시작했다. 무리해서 신은 구두에 뒤꿈치는 까졌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 될까. 세 시간을 걸어도, 네 시간을 걸어도 아무도 지혜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지혜는 어쩔 수 없는 엑스트라였던 것이다. 잘해봐야 조연. 거기에 만족했어야 했다.

동수가 바람났다.

내 주인공 지혜와 바람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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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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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기식 변호사 (前 서울고등검찰청 부장검사, 대구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차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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