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강세로 인해 한국경제 위협
원화 강세로 인해 한국경제 위협
  • 이지성 기자
    이지성 기자
  • 승인 2013.11.0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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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스투데이=중소기업&소상공인 전문지]
원화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중 달러당 1,150원대였던 원화는 7월부터 강세기조로 전환되어 10월 중순에는 한때 달러당 1,050원선을 위협하기도 했다. 정책당국이 급히 구두개입과 시장개입에 나서면서 원화환율이 달러당 1,060원 수준으로 반등했지만 원화절상 추세가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기는 물론이고 중장기적으로 원화강세를 지속시킬 요인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최근 원화강세의 배경과 향후 전망, 그리고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고 정책적 대응방안을 모색해 본다.

하반기 들어 각국 통화는 미국 출구전략의 향방에 따라 크게 출렁거리는 모습이었다. 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예상으로 미달러화에 대해 큰 폭의 약세를 보였던 각국 통화는 9월 중순 이후 상당 부분 회복세를 나타냈다. 9월 통화정책회의에서 미연준이 양적완화 축소에 나서지 않고 10월에는 미국 정부의 폐쇄사태의 여파로 양적완화 축소가 늦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된 때문이다.

원화는 하반기 중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이면서 주요 통화 중 가장 큰 폭으로 절상되었다. 6월말 대비 10월말 원화의 절상 폭은 8.3%에 달했다. 최근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유럽 지역의 통화가 대부분 상승세였지만 원화의 절상 폭이 더 크다.

주요 교역상대국 통화들에 대해 교역량을 가중치로 하여 평균한 종합적인 환율 수준을 나타내 주는 명목실효환율 기준으로도 원화의 강세 폭은 큰 편이다. BIS가 추계한 국가별 명목실효환율 자료에 의하면 원화는 3분기 중 절상 폭이 5.4%에 달한다. BIS가 명목실효환율을 추계하는 61개 통화 중에서 원화의 절상 폭이 가장 크다. 소비자물가 변화까지 고려한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는 원화의 절상 폭이 6~9월 중 5.2%여서 베네수엘라(10.3%)를 제외하면 원화가 가장 큰 폭으로 절상된 것으로 나타난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기본 배경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로 외화공급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9월까지 경상수지 흑자는 488억달러에 달해 이미 지난해 전체 흑자 규모인 431억달러를 넘어섰다. 연간으로는 66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상GDP 대비로는 5%를 넘어 2000년대 이후 최대 규모다.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통관기준 수출이 1.3% 늘어나고 수입은 -1.9%의 마이너스 증가세를 보이면서 상품수지는 418억달러의 대규모 흑자를 보이고 있다. 만성적인 적자 상태였던 서비스수지가 지난해에 이어 흑자를 보이고 있는 것도 경상수지 흑자를 늘리는 요인이다. 서비스수지는 9월까지 흑자 규모가 46억달러로 지난해의 27억달러를 웃돌고 있다. 대규모 건설서비스 흑자가 유지되고 있는 데다, 사업서비스 적자 폭도 지난해의 153억달러에서 올해는 9월까지 50억달러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밖에 이전소득수지는 9월까지 7억달러 가량 적자 상태이지만, 본원소득수지는 30억달러의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해외투자 증가에 따른 배당이나 이자수입이 늘어난 데 기인한다.

지난해 이후 지속되고 있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는 수출입이 동반 부진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불황형 흑자 성격이 짙다. 원자재가격 안정도 수입 억제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 확대에 기여한 요인이다. 최근 수출과 더불어 수입도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단기간 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크게 줄어들기는 어려워 보인다. 내년에도 400억달러 이상의 흑자가 예상된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는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원화의 절상추세는 뚜렷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원화가 1.7% 절하되기도 했다. 경상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보이는데도 원화환율 조정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던 것은 최근 몇 년간 미국과 유럽의 금융불안 등의 요인으로 자본유출입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유럽재정위기가 주기적으로 발생할 때마다 해외자본이 급격히 유출되면서 원화절상 추세에 제동이 걸리고 원화가 일시적으로 큰 폭의 절하를 보이기도 했다.

2011년 이후 자본금융계정을 살펴보면 자본의 유입보다 유출 규모가 더 크게 나타나면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원화절상 압력이 상당 부분 상쇄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자본 순유출 규모는 128억달러에 달했으며 2012년에는 317억달러로 커졌다. 올해도 9월까지 자본순유출 규모는 432억달러에 달한다.

자본의 순유출 추세가 이어진 것은 해외자본의 국내투자는 억제된 반면 국내자본의 해외투자 규모는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자본 유입 규모는 2009년에 527억달러를 기록한 이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345억에 이어 올 들어 9월까지는 157억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3종세트로 불리는 선물환포지션 규제, 외국인채권투자 과세, 단기 외화차입에 대한 부담금 부과 등의 정책이 해외자본의 국내유입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에 국내자본의 해외투자 규모는 커지고 있다. 2009년에 156억달러에서 점차 늘어나 2012년에 693억달러를 기록했고, 금년 들어 9월까지는 이미 614억달러에 달한다. 올 들어 해외직접투자가 주춤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외국인 직접투자보다는 많은 상태이고, 해외증권투자와 기타투자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올 상반기중 원화가 절하 추세를 보인 것은 연초 불거진 북핵 리스크, 3월의 키프러스 사태와 더불어 뱅가드펀드의 벤치마크 지수 변경에 따른 영향 등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5~6월에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자금유출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7월부터 외국인투자자금의 흐름이 크게 바뀌었다. 상반기 중 국내주식 매도에 나섰던 외국인투자자들이 7월 이후 4개월째 대규모 순매수 추세를 유지했다. 외국인투자자들의 국내주식 순매수 규모는 7월과 8월에 각각 1조3,480억원, 1조5,24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9월에는 무려 8조3,320억원으로 급증했다. 10월에도 9월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5조원 넘는 순매수를 유지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이 오히려 국내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양적완화 축소는 미국의 경기회복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우리 수출여건 개선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취약 신흥국의 경제불안에 따라 우리나라가 상대적 수혜를 본 측면도 있다. 여타 신흥국들은 구조적인 성장세 둔화와 함께 경상수지 적자, 고물가 등에 시달리면서 금융불안 가능성이 높은데 비해 국내경제는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외환부문의 안정성도 높은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향후에도 원화절상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원화의 저평가 상태로 인해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절상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이후 경상수지가 거의 균형에 근접했던 두 시점(2002.3분기~2003.3분기, 2008.1~3분기)의 환율을 기준으로 할 때 9월 원화환율은 4.3% 가량 저평가된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몇 년간 원화의 저평가 폭이 꾸준히 줄어들었지만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확대된 것은 경기부진에 따른 수입 위축과 함께 국제원자재가격의 안정 등의 요인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 원화환율의 향방은 외국인 투자자금의 움직임과 정부의 환율정책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 규모는 둔화될 여지가 있다. 이미 외국인 채권 순투자는 8월 이후 마이너스로 돌아선 상태이다. 올 들어 7월까지 국내채권에 대한 외국인투자자들의 순투자 규모는 월평균 1조7,000억원 가량 유지되었으나, 8월 중 -2조60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9월에도 -2조4,490억원를 나타냈다. 10월중에도 마이너스 순투자 추세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투자자들이 보유 채권을 내다 팔 정도는 아니어서 순매수 추세는 유지되고 있지만 그 규모가 크게 줄어든 데다, 보유채권의 만기도래분을 재투자하지 않고 있다. 향후 금리가 점차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와 아울러 원화환율이 단기간에 크게 하락하면서 외국인투자자들이 추가적인 채권투자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요 원화채권 투자자였던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환율방어 목적의 외화 확보 수요를 늘리면서 해외채권 투자 여력이 줄어든 점도 외국인 채권투자 감소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주식의 경우는 아직도 외국인들의 순매수가 유지되고 있으나 순매수 규모는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7월 이후 4개월 동안 국내 주가가 15% 가량 상승한 데다, 미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8% 이상 상승한 상태여서 단기차익을 노리고 유입된 외국인투자자금은 차익실현 기회를 엿볼 가능성이 높다. 주가와 환율수준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신규 주식투자자금 유입도 둔화될 수 있다.

정책당국의 환율안정 의지도 단기적으로 환율의 향방을 좌우할 주요 변수이다. 일단 정책당국은 달러당 1,050원선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쳤다. 외환시장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서 환율에 대한 외환당국의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다. 최근처럼 대규모 자본 유입에 의해 통화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시장개입은 달러화 매입을 통해 외환보유액 증가로 이어진다. 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외화보유액을 푸는 것에 비해 정책적 부담이 덜 하다.

다만 눈에 뜨일 정도로 자주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기가 쉽지는 않다는 점이 변수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원화절상을 억제하려 한다는 해외의 시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의 외환시장 개입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 대비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규모가 최근 들어 크게 낮아졌다. 글로벌 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외환보유증가액/경상수지 흑자 비율이 1 이상을 유지했으나,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0.54, 0.28에 불과했고 올 들어 9월까지는 0.13까지 떨어졌다. 그만큼 경상수지 흑자로부터 발생하는 외환절상 압력을 외환보유액 증가를 통해서 흡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서는 직접적인 시장개입 대신 자본유입 억제 및 자본유출 확대 등을 통해 원화절상 압력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책당국이 원화절상 추세 자체를 바꾸기는 어려워 보인다. 원화절상 속도를 늦추는 정도의 효과가 예상될 뿐이다. 단기적으로 올해 중에 달러당 1,050원선을 지킬 수 있더라도 내년에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도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와 함께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외국인 자금의 국내유입을 억제할 요인이지만 경기회복 및 여타 신흥국과 차별화된 경제건전성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 유인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정책당국의 환율안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화절상 압력을 완전 해소하기는 어려워 내년에는 원화가 달러당 1,000원대 초반 수준까지 절상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아시아 신흥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외국인투자자금의 이탈 우려가 크지 않고 과도한 원화절상을 걱정할 정도로 외환시장이 안정적이다. 과거 대외충격이 발생할 때 원화환율이 급등하곤 하는 추세에서는 뚜렷하게 벗어난 모습이다. 우리 경제의 안정성이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금리인상에 나서고 있는 신흥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환율안정 목적으로 통화정책이 제약받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도 크다. 최근 국제적인 달러화 강세 움직임 속에서도 경기방어 차원에서 호주와 이스라엘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금리인하에 나선 바 있다. 우리나라도 외국인 자금 이탈과 통화가치 급락에 대한 우려 없이 경기위축이 심화될 경우 유사시 금리인하 여력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세계호황기에 발생했던 원화절상의 충격은 크지 않았던 편

금융시장은 안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작지 않을 것이다. 원화절상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수입물가 안정 등을 통한 긍정적 효과도 있겠지만 현재와 같이 물가가 안정되어 디플레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는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더욱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 우리 경제가 원화절상으로 인해 수출이나 성장에 크게 타격을 입었던 사례는 뚜렷하지 않다. 1980년대 이후 원화절상이 장기간 지속되었던 시기는 크게 4차례 정도로 볼 수 있다. 그 중 두 차례는 IMF 외환위기 및 리먼쇼크 등으로 급등했던 환율이 정상화되던 시기이다. 나머지 두 차례는 세계경제의 호황기에 발생했다

1980년대 후반 유가하락과 엔고 등에 힘입은 3저호황기에 원달러 환율은 1986년 달러당 880원에서 1989년 670원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이 기간중 수출증가율은 20%를 넘었으며 경제성장률도 평균 10%에 달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원달러 환율이 2001년 달러당 1,290원에서 2007년 930원까지 절상되었지만 저물가-고성장 시기의 빠른 교역확대에 힘입어 평균 15% 이상의 높은 수출증가세가 지속된 바 있다. 세계수요 증가로 우리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이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로 원화가 절상기조를 보인 것이다. 원화절상에 따른 경쟁력 손실이 국내외 수요 확대효과 때문에 부각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경제여건을 고려해볼 때 원화절상이 가속되거나 추세가 장기화될 경우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과거보다 훨씬 클 것이다. 원화절상이 세계경기 회복과 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3저호황기나 2000년대 중반 호황기와 유사하지만 경기회복 및 교역확대 속도는 과거에 비해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의 부채조정이 지속되고 양적완화 축소 등 출구전략도 점차 본격화되면서 세계경제 성장세는 내년에도 3%대 중반에 머물 전망이다. 평균 4.8% 성장한 2000년대 중반뿐 아니라 4% 가까이 성장한 3저 호황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더욱이 세계 교역의 증가속도는 과거보다 훨씬 느릴 전망이다.

선진국 경기가 좋아지고 있지만 수입은 별로 늘지 않는 상황이다. 미국은 올해 상반기중 1.5% 성장했지만 수입증가율은 금액기준으로 -2.1%에 그쳤다. EU지역도 올해 7월까지 수입증가율이 -2.7%를 기록했다. 세계 전체적으로 교역증가율은 지난해 0.4% 증가에 이어 올해도 5월까지 1.5% 증가에 머물렀다. 2003~2007년 기간중 세계교역증가율이 16.7%에 달해 세계경제성장률을 크게 상회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선진국의 부채조정을 위해서 무역불균형 조정은 필수적이다. 명시적으로 보호무역 기조를 강조하지는 않지만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유턴에 대한 세제지원, 시장규제 및 지적재산권 보호 등을 통해 수입보다는 자국 생산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대외적자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사회적으로도 자국 제품소비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향후 세계경기가 완만하게 회복되어도 세계수요 확대가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처럼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원화절상에 따른 가격경쟁력 악화의 충격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리먼쇼크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던 점을 고려할 때 환율이 더 떨어져도 수출기업들이 버틸 여지가 있다는 견해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07년 평균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930원까지 낮아졌던 바 있다. 그동안 높은 환율로 인해 수출기업들이 얻었던 일시적인 수혜가 어느 정도 줄어들어도 생산을 지속하는 데 차질이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물가상승 및 경쟁국들의 환율을 고려한 실질실효 환율은 더 빠르게 절상되었으며 현재는 2007년에 비해 약 10% 정도 절하된 수준에 그치는 상황이다. 2007년 우리 수출은 두 자리수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이는 세계적인 초호황세에 의존한 것이었으며 우리나라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었다.

더욱이 기업 재무상황 여건은 현재 2000년대 들어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원화절상을 버틸 여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장기업의 재무통계를 이용해 분석해보면 올 상반기 기업의 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0.5%에 그쳐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더욱이 매출액 증가율의 중위값은 -1.2%로 역성장했다. 일부 기업들의 높은 성장이 평균을 끌어올렸지만 전년대비 매출액이 오히려 감소한 기업들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이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의 중위값도 4% 수준으로 나타나 198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기업들의 수익성 저하는 세계적인 경쟁여건이 그만큼 치열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글로벌 기업들의 전반적인 수익성을 살펴보면 선진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유지되는 가운데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과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익성 둔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LG Business Insight 2003. 9.2일자, ‘경기 회복돼도 기업성과 개선 쉽지 않다’ 참조). 주요 개도국 기업들이 전기전자, 석유화학, 철강 등 우리 주력 부문에서 대규모 투자확대를 통해 생산능력을 늘리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와 주요 개도국간의 수출상품 구성이 유사해지는 모습이 나타난다. 주요 경쟁국인 일본과의 수출유사성이 더욱 높아지는 가운데 인도, 브라질, ASEAN 국가들과도 수출상품의 구성이 유사해지고 있다. 결국 주요 개도국들의 화폐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우리나라 원화가치가 절상되면서 우리수출의 가격경쟁력 약화효과는 더욱 크게 나타날 것이다.

환율변화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추정식을 통해 분석하는 방법은 실제 환율효과를 과소평가하기 쉽다. 역으로 수출변화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수출이 늘어날 때 원화도 같이 절상되는 효과를 제거하기 쉽지 않다.

외부적인 충격에 의해 환율이 급격하게 변화한 시기의 우리 수출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기간중 우리 수출의 세계시장 점유율 변화를 살펴보면 세계경제 성장에 따른 효과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우리 경쟁력이 높아진 데 따른 영향을 추출할 수 있다. 이제까지 대외충격에 따른 환율의 급변은 IMF 외환위기와 리먼쇼크 이후의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 두 차례이다. IMF 위기 기간 중에는 기업부실과 투자급감으로 수출이 크게 늘지 못했지만 리먼쇼크 이후의 환율 급등기에는 우리수출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크게 올랐다. 2007년 이후 연평균 환율은 2년 동안 37% 상승했는데 이에 따른 세계시장 점유율은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2.6%에서 3.1%로 상승했다. 세계수요 확대효과를 제외하고도 우리 수출이 약 18.9%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원화환율 10% 상승에 따른 수출증대 효과는 약 5.0%로 계산된다.

같은 분석을 상품별 수출에 적용해보면 원화절상에 따른 효과는 농축수산물 등 1차 산품과 섬유의복 부문에서 높게 나타난다. 이들 품목은 원화 10% 절상시 수출감소 효과가 8%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가 뚜렷한 제품경쟁력 우위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 산업일수록 가격변화에 대한 민감도가 큰 것으로 보인다. 섬유 및 의복의 경우 그동안 개도국에 대한 가격경쟁력 약세와 해외기지 이전으로 수출이 계속 줄어들었으나 2008년 이후의 원화환율 급등에 힘입어 플러스 증가세로 돌아선 바 있다. 향후 원화가 다시 절상기조를 보일 경우 수출부진이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된다.

철강금속도 제품차별성이 다른 산업제품에 비해 적은 편이어서 원화환율에 따른 영향이 크게 나타난다. 더욱이 최근 세계적인 공급확대로 가격경쟁이 치열해지고 기업수익성도 낮아진 상황에서 원화절상에도 불구하고 단가를 추가적으로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기전자, 자동차, 기계류 등 우리 주력 수출부문도 원화환율 변화 대비 수출 탄력성이 0.3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과 같은 장기 저성장의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은 1980년대 후반 일본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당시 일본은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가 빠르게 절상되는 가운데서도 수입이 크게 늘지 못하면서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장기간 지속된 바 있다.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당시 원자재 가격의 하락이었다. 오일쇼크 이후 높아져 있던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엔고에도 불구하고 수입증가율이 수출증가율을 크게 상회하지 못했다. 자본재 수입의존도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폐쇄된 일본 유통구조로 인해 소비재 수입도 크게 늘지 않았고 결국 경상수지 흑자와 엔고가 공존하는 모습이 되었다.

엔고가 지속되면서 일본은 TV, 자동차 등 주력 부문의 생산기지를 해외로 빠르게 이전하였고 기존의 완성품 수출 형태에서 해외지사에 대한 부품 중심으로 수출구조를 바꾸어 나갔다. 해외생산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국내 투자와 고용, 생산이 위축되는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발생했고 이는 일본의 90년대 이후 장기 저성장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수입의 가격탄력성이 높지 않다는 점, 원자재가격이 하향안정기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점, 그리고 해외투자가 계속 늘어난다는 점이 80년대 중반 일본과 유사하다. 우리나라 전체 수입에서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50.8%에서 지난해에는 63.2%까지 꾸준히 높아졌으며 가격탄력성이 큰 소비재 수입비중은 10%를 넘지 못했다. 결국 원화가치가 절상되어 수입가격이 낮아지더라도 수입물량이 늘어나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며 국제원자재 가격이 하향안정되면서 수입이 당분간 부진한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국제수지 균형을 위해 그만큼 수출이 조정되어야 하는 폭이 크다는 뜻이다.

여기에 국가신용등급 상승 등으로 원화자산의 안전성이 높아지면서 안전자산으로서 원화에 대한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적으로 유럽재정위기 등 선진국 경제불안으로 전통적인 안전자산 외에도 여타 대체 안전자산을 찾는 추세와도 관련이 있다. 결국 세계경제의 리스크가 클 때 원화가 절하되면서 국내 회복세를 높이는 과거의 경기안정 메커니즘이 점차 작용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세계경제가 부진할 때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더욱 경기위축 요인으로 작용했던 일본의 경우를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전체 투자증가에 비해 해외투자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지난해까지 우리나라의 해외 직접투자 증가율은 연평균 6.9%로 국내투자 증가율 5.4%를 상회한다. GDP에서 해외 직접투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2.9%에 달해 일본 수준을 넘어섰다. 현재와 같이 임금경직성이 높고 기업규제도 늘어난다는 인식이 높은 상황에서 원화절상 기조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기업들이 투자를 하더라도 해외에 투자할 유인이 커질 수 있다. 결국 원화절상과 경상수지 흑자가 공존하면서 국내 제조업 생산이 정체되는 일본형 성장둔화 리스크가 우리나라에서도 커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되는 한, 시장개입은 점차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10월말 발표된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서도 ‘한국 금융당국에 대해 시장 혼란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환시장 개입을 제한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IMF나 미국 등에서는 원화가 아직 저평가 상태이며 3,369억달러(9월말 기준)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규모도 이미 적정수준을 초과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의 시각을 고려하면 이제 빈번하고 지속적인 외환시장 개입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외환시장에서 쏠림 현상이 발생할 때 일방적인 원화절상 기대심리를 막는 차원에서 제한적인 시장개입은 필요할 것이다. 국제적인 갈등을 가져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외환시장 개입을 적절히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자본유입이 크게 늘어날 경우에는 이른바 3종세트로 불리는 자본유출입 안정화 방안의 강화를 모색할 수도 있다. 2010년 이후 단계적으로 도입된 은행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은행 단기차입에 대한 부담금 부과 등의 조치는 단기 유출 가능한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유입을 억제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3종세트는 거시건전성 규제 차원에서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만큼, 해외자본의 유입에 의해 국내금융시장이 위협받을 경우 추가적인 강화 조치는 가능해 보인다. 아울러 외화유입을 억제하는 것과 함께 해외증권투자 등 외화유출 확대를 도모하는 것도 원화절상 압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규제완화와 인프라 확충을 통해 내수부문에서의 수요창출력을 높이는 것이 잠재적인 성장능력을 증가시키고 빠른 원화절상을 막는 방안일 것이다. 특히 내수시장에서 대외개방도를 높여 수출과 수입의 균형있는 증가를 도모하고 경상수지 흑자가 과도하게 누적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또한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지속으로 제조업이 공동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내투자 여건을 가시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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