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회 마침 거대한 모아이 근처에 근사한 식당이 하나 눈에 띈다. 칠레의 유명한 생산품 와인과 스테이크, 대표요리 몇 가지를 시켰다. " 2년 전에 이 근처에서 미 항공모함이 훈련중이었는데, 그 항모앞에 중국 잠수함이 갑자기 나타난 적이 있었어. 미국은 경악했지. 중국은 일부러 자신들의 신형 잠수함을 자랑하고 싶었던 거야. 미사일 한 방이면 항모를 박살낼 수 있었는데도,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서 말야. 미국의 자랑인 항모와 인공위성의 전자감지 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는 중국의 의지가 바다위로 떠오른 거지." 부드럽게 식감 좋은 스테이크를 우적우적 씹어가며, 난 최실장에게 떠벌렸다. 와인이 몇 잔 들어가자, 수다의 유희가 더 즐거워졌다. " 사실 잠수함이란 게 얕볼 게 아냐. 우주 상공에도 먼저 말뚝 박는 게 임자잖아. 심해도 마찬가지야. 물론 바닷속에도 국경은 있지만, 방금 말한 그 중국 잠수함처럼 흔적없이 돌아다니면, 국경을 어디까지나 확장할 수 있단 얘기거든." "재성씨, 방금 전에 그들을 콘트롤 했어요. 최실장님, 섬 매입엔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난 먹어대고 떠벌리느라, 후미코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몰랐는데, 식사 시간에 그런 일을 하다니.......... 후후후............ 그녀의 능력이라니............. 스테이크 세 조각을 씹는 동안에 세상을 움직이다니............. 난 자동적으로 입이 다물어졌다. 이 이상 수다를 떠는 건 그녀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는 증거다. '외모는 기만적이다.' 니체가 말했다. 유약한 소녀의 모습을 하고, 눈 깜박거림 하나로 상대의 뇌를 바꿔 버리다니............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니, 나도 빨리 그 능력이 갖고 싶어졌다. 그런데 사실, 이처럼 상대방 생각을 바꾸는 건 몇십 년전부터 시도돼 왔었다. 그것도 우리같은 능력자가 아니라, 군 기밀 실험으로 말이다. CIA 자료를 보면, 1973년 '판도라' 프로젝트가 비밀리에 실험됐다. 극초단파 신호를 조작해서 방송으로 내 보내면, 그것이 사람의 내이-청각 기관- 를 자극해서 인간의 말과 똑같은 음성신호로 착각을 일으킨다. 내이의 달팽이관 세포가 특정한 패턴에 따라 진동하게 해서, 극초단파 청력도를 청각과 관련된 신경체계에 직접 전달한다. 이 기술을 무기화하여, 공격 목표가 되는 사람에게 계속 '목소리'를 보냄으로 그를 정신이상으로 만들거나, 어떤 지시를 전달할 수도 있다. 미 육군에서도 이런 기술을 '비 재래식 무기' 로 분류하고 있다. 하나의 에너지 무기인 셈이다. 이런 기술이 완벽하게 사용되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결과적으로 백년이든 천년이든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 기나긴 생물학적 존재의 길이에서, 어느 구간에 그 유전자적 특성이 나타나느냐가 중요하다. 애초에 그런 DNA 를 머금고 있었다면, 후미코와 할아버지처럼 어느 순간 폭발하듯이 에너지는 분출될 것이다. 지금 난 거의 폭발 직전에 와 있고........... " 어떻게 한 겁니까?" 최실장은 궁금한 모양이다. " 이 아가씨가 생각과 의지를 바꾸는 능력이 있어. 최실장도 조심하라구. 사람 많은 데서 바지를 벗고 춤을 추게 할 수도 있으니까. 하하하하............." 나와 후미코가 박장대소하자, 최실장은 눈만 꿈벅꿈벅할 뿐이다. " 언젠가 갑자기, 먹기 싫어하던 감자가 땡기면, 후미코가 조종하는 거라고 생각해도 돼. 하하하........." " 그만 하세요. 최실장님 심각해졌어요." 유쾌한 농담과 와인의 힘으로, 망망대해 한 가운데 섬에 있다는 게 즐거워졌다. 석상너머로 오색찬란한 황혼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래............. 조만간에 이 근처 텔로스에서도 지금처럼 웃을 날이 올거야............ 낯선 곳에서 잠드는 게 싫어, 식사후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 당신 가족 얘길 해 주세요. 궁금해요." 침대위에서 초콜릿 향을 풍기며, 후미코가 파고 든다. " 글쎄.......... 꼭 해야 하나?" " 당신은 한 번도 가족 얘길 안 하더군요. 무슨 이유가 있나요?" " 후후.........이유라............ 이유라면 있지. 음............사람들은 말야, 잘 나고 좋은 것은 드러내고 싶어하지만, 그렇지 않은 건 반대로 숨기고 싶어하지. 내가 얘길 하지 않는 것도 그런거야." " 못됐어요. 재성씬 가끔 그렇게 각진 면을 드러내더군요. 가족은 잘 났다고, 혹은 못났다고 얘길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가족들에게서 상처를 받았나요?" " 맞는 얘기야. 난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 부모님들이 나에게 집중하지 않아서 서운할 때마다, 그들이 하나의 숙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야. 특히 내 아버지란 사람은 더 그런 생각이 들었지. 자식에게 한 번도 진심을 보여준 적이 없었어. 세 끼 밥만 먹여주면 위대한 아버지 역할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 오히려 그는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에게, 한 밤중에 술 취한 체 늘어놓는 자야. 어떤 정신적 고상함이나 자상한 부정, 혹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따윈 애초에 없는 사람이지. 그는 껍질일뿐야. 그런 의미에서 숙주라고 생각했던거지. 엄마의 경우엔 좀 달라. 엄만 나름대로 사랑이 있었지. 하지만 그녀의 종교에 대한 사랑에 비하면, 나는 또 그녈 비난할지 몰라. 엄만 약해. 육체도, 정신도............... 오히려 그 약함때문에 난 엄마에 대해선 비난하고 싶진 않아." " 지금도..............지금도 부모님께 서운한가요?" " 사실, 엄마의 약함때문에 내가 받은 손실은 컸어.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들어봤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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