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인,너무나 물질적인
물질적인, 너무나 물질적인 38회
 파치노
 2009-03-11 18:08:06  |   조회: 1270
첨부파일 : -
38회











"자네............"







뒤돌아보니, 후미코의 아버지가 장화에 모종삽을 들고 서 있다.

온실 화원에서 작업을 할 모양이다.







"뭘 그리 생각하나?"








"네, 그냥, 날씨가 좋은 것 같아서요.

저게 온실인가 보죠?"






"그래, 지금 뭣좀 하려는데 구경하겠나?"







"그러죠"







사방이 유리로 된 온실은 안으로 들어가자,금새 더워졌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와 분재들, 뿌리 식물들.........

대충봐도 수백 종은 될 것 같다.







"이걸 누가 만든 건지 아나?

후미코야.

그앤 꽃을 참 좋아했지.

일본에서 구할 수 없는 종자는 외국에 가서까지 구해오곤 했어.

그렇게 열심이더니 지금은 내 몫이 돼 버렸어.

그게 벌써 20년 전이야."







"네? 20년 전이라고요?"







"뭘 그리 놀라나?

온실을 꾸몄다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후미코가 20년 전에 이 온실을 만들었다구요?"






"그렇다니까.

물론 내가 많이 도와줬지.

그 앤......."






난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또 다시 후미코를 찾았다.







"후미코, 나한테 뭔가 숨기는 거 있지?"






내 눈을 한동안 쳐다보던 후미코는 체념한 듯 입을 연다.







"할아버지에 대해 뭘 알고 알고 있는거죠. 그렇죠?"






"아니, 후미코, 당신 말이야.

당신을 말하는거야.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게 있는 것 같은데?

당신 나이가 어떻게 되는거야?"






"알아버렸군요.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나도 얘길 하려 했고............

난............45살이에요."






"뭐?

다........당신........그럼..........

당신이 할아버지가 말한 45세의 아시아 여자가 당신이야?

당신도 할아버지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단 말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이럴수가...............



난 뭐라고 해야할 지, 생각을 정리하는 게 너무 힘들어졌다.

그랬단 말인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녀가 나이에 맞지 않게 재즈를 좋아했던 것을...............



40살인 날 심리적으로 잘 안아줬던 것도...........

그 인도인이 45세 여자가 여고생 같다고 한 것도............







"킨더가튼은 내가 운영하고 있어요.

당신이 처음에 거기 오던 날, 난 강한 파장을 느꼈어요.

내 방에서...........

난 순간적으로 알았지요.

나에게 맞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당신 방으로 내가 직원인 척하며 들어갔던 거에요.

거기서 역시나 당신은 내가 찾던 그 사람이라는 걸 확신했죠."







"날..............내 생각을 들여다 봤겠군.........

그런데.........당신은 마이클 킴한테서 압박을 받지 않았나?"







"그건 당신이 날 스캔하는 걸 알고 일부러 그런 메세지를 머금고 있었던 거에요."







"그럼 당신은 내가 능력자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말야?"






"알았죠.

처음부터...........

당신의 에너지는 굉장했어요.

난 일부러 집중하지도 않았는데 입구밖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어요."







"왜 숨긴거지?

지금까지?"






"그냥.........당신한테 평범한 인간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내가 이런 능력을 가졌다면, 당신이 날 경계하거나, 나한테 다가오는 게 어려울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젠 얘길 하려 했죠.

당신이 날 사랑하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난..........난 그러니까...............

아니, 그러지마!

내 생각을 읽지말란 말야!"







그녀의 스캔 시도를 감지하고 난 외쳤다.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당신이 너무 걱정돼서........"







"난 당신이 나이가 어떻건, 능력이 어떻건, 상관 없어.

내가 비록 당신한테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은 안했지만, 그거 알아?

난 당신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다만.............난 지금 혼란스러울 뿐이야.

나한테 이런 능력이 생기고, 당신을 알게 되고, 또 그 인도인까지, 아니, 당신 할아버지까지............

이 모든 게 무슨 이유가 있는건가?

관련이 있는거야?"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 의도된 계획 같은 건 없었어요.

지금 말한 게 전부고요."






"부모님은?

부모님도 능력을 갖고 계신가?"






"아니에요.

할아버지와 저 뿐이에요."







"당신도...........당신도 생각까지 바꿀 수 있는거야?"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순간 그 능력을 나에게 써 본 적이 있는 지 묻고 싶었으나, 그만 둬 버렸다.



지금 이렇게 좋은 관계가 그 말 한 마디로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불안감 때문에........

후미코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날 환대해 줬던 것도 이해가 간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나이도 꽤 많고, 주관이 독특하고 강했으며, 그런 능력자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녀 옆의 남자가 누가 되든 잘 해주리라 맘먹었으리라..........



평탄치 않은 삶을 사는 딸이 못내 안타까웠을 것이고, 그녀 아버지는 그런 의미에서 나를 대할 때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그녀의 부모들을 위해, 여전히 모르는 척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1층 미니바로 내려갔다.



꼬냑을 한 잔 입에 털어 넣으며, 난 생각을 정리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내가 후미코와 그녀의 할아버지와 이런 관계가 된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 이노우에는 내가 후미코와 연인관계라는 걸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제일 많은 비밀을 알고 있군............



그런데, 왜 우리 셋이 만나게 된 걸까?

..........................



그래!

그 방을 들어가봐야겠어.



조상들의 방을 들어가봐야겠어.

들고 있던 잔에 꼬냑을 가득 따르고, 손에 쥔 채로 일어섰다.



내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피해있던 후미코가 나타나자, 그녀의 손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의 맨 끝방, 후미코 집안에서 가장 오래된 시조를 모시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비교적 현대적이었던 할아버지의 방과는 달리, 냄새부터 퀴퀴하며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유품들은 하나같이 헤지고 닳아빠진 것들 뿐이라, 손으로 건들기만 해도 빠지작 하며 가루로 쏟아질 것만 같다.







"이상하네?

당신이랑 같이 있으니까 맘이 편해지는군.

여기가 친숙하게 느껴지는데............."






아무 말없이 내 옆에 밀착해 있는 그녀는, 내 말 내 행동 하나하나가 아슬아슬한 모양이다.

혹시라도 비밀을 알게 된 내가 거리감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리라..............



그녀의 불안감을 감지한 나는 어깨를 천천히,그러나 힘있게 감싸안으며 발걸음을 뗐다.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시조가 되는 사람의 초상화가 나를 노려보고 있고, 그 밑엔 설명하는 듯한 문구들이 일본어로 써 있다.







"뭐라고 써 있는거야?"






"925년,고려국 개국 공신 견권은 왕의 총애를 얻어,국가 권력 서열 2위의 지위를 얻었으나, 이를 시기한 노쇄한 정치인들의 음모에 휘말려 일본으로 망명한다.

일가와 추종자들 353명이 도쿄 인근 지역에 터를 잡고 세력을 확장했다.

원래부터 무사 집안인지라 인구가 부족했던 곳에서 권력을 잡는 것은 비교적 수월했다.

결국 중앙 정부로부터 그 세력을 인정받고, 그 지역 영주로 공식 승인된다.

중앙 정권의 반란 토벌 작전에 합류하여 큰 공까지 세우자, 왕은 견권에게 '이노우에'라는 이름을 하사하며 더 넓은 영지를 선물했다."







"잠깐만, 지금 이건 당신 집안 시조 얘기잖아?

그런데 왜 고려인 얘길 써 놓은거야?

시조가 한국인인거야?"







"네, 맞아요.

우리 조상은 고려에서 건너온 장군 집안이에요.

방금 제가 읽어준 내용처럼, 견권이란 분은 허겁지겁 쫒기다시피 일본으로 건너왔고, 미쳐 챙기지 못한 일부 후손들은 고려에 남았었나봐요.

그들은 뿔뿔히 흩어져서, 성을 견권에 들어있는 권자로 바꿔서 그 뿌리를 유지하고 위장하는 방법으로 쓴 모양이에요.

참, 재성씨도 권씨네요.

일본에는 고구려,백제,신라인들이 정착한 마을들이 꽤 많아요.

고구려 약광왕의 후손들이 사이타마를 장악하고 번성했고, 지금도 그래요.

백제 침성태자의 후손임을 자처했던 오우치 가문은 현재도 야마구치현을 지배하고 있죠.

전국시대땐, 수백 년 된 명문 귀족들중에서도 한반도 후손임을 자처하는 집안이 적지 않았어요.

심지어 그 뿌리를 계속 캐다보면, 일왕조차 백제 후손이란 사실도 공공연한 비밀이죠.

그러나 일본이 흥하고,조선이 쇠하자, 이렇게 공공연히 드러내던 것이 슬그머니 사라졌어요.

자랑거리로써 작용하는 힘이 약해졌기 때문이에요.

지금 어떤 분야건 한 일간엔 묘한 경쟁심과 갈등이 존재하는데, 사실은 출가한 형제들이 누가 잘 사는 지 은근히 경쟁하는 것과 비슷하죠.

형제들의 다툼인거죠.

가끔은 형제들간의 싸움이 심각해져서 칼부림이 나기도 하죠.

호전적인 형제는 항상 존재하니까요."

















-계속-
2009-03-11 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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