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아시안게임...94 미국 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의 풀멤버들이 모두 히로시마로 출격했고 한국의 우승은 당연지사로 여겨졌던 상황이었습니다. 8강전에서 일본을 만나 3-2로 작살내고 준결승에 오르니 우즈베키스탄이 기다리고 있었죠.
골키퍼 이름이 셰이킨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177cm의 크지않은 키였어요. 슛팅수 28-2라는 말도 안되는 원사이드 게임이었고 한국은 우즈벡 문전을 졸라리 유린했지만 강슛은 셰이킨의 몸에 맞고 튀어나오고 좀 약하다 싶은 슛은 모조리 셰이킨이 잡아냈습니다. 내 젊을 적에 이를 갈며 본 말레이시아의 아르무감 골키퍼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얄밉게 막아내더군요.
한국의 골키퍼는 차상광이었습니다. 189cm의 장신이었죠. 미국 월드컵에서는 최인영과 이운재가 골문을 지켰는데, 그날은 어떻게 된 일인지 제3의 골키퍼 차상광이 한국 문전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반전 한 30분이나 되었나, 미드필드에서 우즈벡 미드필더가 잡아 중거리슛 한 것이 떼굴떼굴 한국문전으로 굴러갔어요. 그냥 쉽게 잡을 수 있었던 볼이었는데, 차상광 선수가 어서 옵쇼 동작으로 비켜주더만요. 그대로 골이었습니다.
골 넣은 선수 이름도 기억이 납니다. 압두라이모프...참 싱거운 결승골이었습니다. 당시 우즈벡에는 이고르 쉬크비린이라는 스타가 있었습니다. 184cm 정도 되는 키에 역습의 스피드를 한껏 타는 선수였죠. 당시 아시안게임 대회는 지금과 달리 연령제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팀 다 국가대표팀 풀멤버가 나올 수 있었죠. 쉬크비린은 그 대회에서 톱스코어러였습니다. 한국 수비진은 그 이고르 쉬크비린만 막으면 되겠다 판단하고 동선을 차단하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뒤를 받치는 미드필더의 움직임까지 예상하지는 못했던 거죠.
아무튼 그 경기는 올드축구팬들에게 한국축구 어처구니 없는 경기 베스트였던 1971년 뮌헨올림픽 최종예선 말레이시아 전 못지않게 벙찌는 매치였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을 꺾은 후 결승에서 중국을 4-1로 격파하고 금메달을 목에 겁니다. 보도를 보면 역대 한국vs우즈벡의 전적에 한국의 1패가 나오는데 그 1패가 바로 그 해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때 당한 겁니다. 한국팀 감독 김호는 그 경기를 마지막으로 물러갔는데, 자신이 불명예스럽게 쫓겨났다고 앙심을 품고 이후 반정몽준 패거리에 합류합니다. 이후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은 전술고문으로 영입된 비쇼베츠에게 돌아갔죠. 비쇼베츠는 88올림픽에서 소련에 금메달을 안긴 감독이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해체된 소련으로부터 그 때 막 독립했던 나라입니다. 지금까지 우즈베키스탄이 아시아 축구에서 우승했던 대회는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딱 한 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