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식대박터뜨리기
<8화>죽기아니면 살기
 주식담당
 2009-01-03 18:11:43  |   조회: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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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재형저축과 친지 명의를 도용한 투자금 확보



며칠 뒤 은행 대출금과 사채 차입금 등을 총동원하여 7천만 원을 마련했고 배수진을 치듯 (주)한양 주식에 집중 투자했다. 하지만 신용을 포함하여 1억 7천 5백만 원으로 한양의 주식을 사들인 지 사흘도 지나지 않아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한양의 주식이 관리 대상 종목으로 지정되었다는 게 아닌가. 나는 그 비극을 확인하던 순간 까무러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사실상 대박의 꿈을 키우며 졸속을 고집하던 녀석의 운명이 그랬다. 일 주일도 안 되어 투자금의 3분의 2가 날아갔으니 그처럼 어리석은 투자도 없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깡그리 복권을 사 두는 게 훨씬 승률이 높지 싶었다.



“김 형, 얼마가 깨졌는지 알기나 해?”

나는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나무라듯 김종오 대리에게 대들었다.



“글쎄요. 저 역시 미칠 지경입니다.”

나를 파멸의 늪으로 몰아넣은 김종오 대리에게도 묘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자그마치 2억이 넘어. 초기에 몇 푼 챙기고 그 뒤로 2억 2천을 날렸어.”

“단기간에 승부를 거는 무리수를 피해 갑시다.”

“어떤 방법으로 만회할 수 있겠어? 당장 퇴직금을 받아도 빚 갚을 묘책이 없는데.”

“어차피 여유 자금이 없다면 최대한의 신용을 창출합시다.”

“더 깨지면 어떡할래?”

“단기 투자가 실패했으니 장기 투자의 발판을 마련하자는 얘깁니다.”

“방법은 있어?”

“증권재형저축이란 제도를 활용하면 돼요.”

김종오 대리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나를 다시 한번 붕붕 뜨게 했다.



“증권재형저축 한 구좌에 최고 천만 원짜리 가입이 가능하니까 10명의 이름을 동원하더라도 1억 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10명의 이름을 빌릴 경우 신용 거래 1억 5천만 원을 포함하여 2억 5천만 원의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거기다 증권재형저축 가입 후 1년 동안 안정적인 신용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처럼 훌륭한 장기 투자의 발판도 없다는 것이었다.



“금융실명제 관련 법률 위반인데 그게 가능하겠어?”

“차명(借名) 거래야 제 전공 아닌가요? 10명이 아니라 20명을 목표로 잡고 뛰어 봅시다.”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지 모르겠어.”

“가족 친지를 모두 동원하면 되겠네요. 그 사람들 모르게 진행하면 그만입니다.”

“그보단 자금 마련이 문제야.”

“지금 이 상황에서 더 이상 뭘 망설이세요? 대한은행 책임자라는 신분이 곧 신용이 아닙니까? 각 은행에서 신용 대출을 받아 시작합시다.”



마침내 대형 부실의 단초를 제공한 증권재형저축 전략은 10개 은행에서 신용 대출 1억 5천만 원을 받는 데서 출발했다. 신용 대출이 곤란할 때는 대한은행 동료들과 맞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돌파구를 열었다. 그렇게 마련한 자금을 다시 15명의 명의를 차용한 증권재형저축에 가입하려면 각각의 주민등록증이 필요했다. 장모, 아내, 처형, 동서 등을 감안해도 목표 인원에 턱없이 모자라자 나는 교회 신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 대한은행에서 예금 계좌 증강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한 마디에 말려든 신도들이 주민등록증과 도장을 맡겼고 나는 실제로 대한은행 통장을 개설하여 돌렸다. 이와 별도로 15명의 이름을 차용하여 15개의 증권재형저축 통장을 개설하면서 15개의 거래 인감을 새겼다. 장한증권 김종오 대리는 금융실명제 관련 법률을 위반했고 대한은행 강석우 대리는 일종의 사기 행위를 저질렀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가입자 15명 * 재형저축 한도 1천만 원 * 2.5배(신용거래 한도 1.5배 포함) = 투자 가능한 금액 3억 7천 5백만 원……. 그런 계산법만이 머리 속에서 맴돌 뿐, 작전이 실패했을 때 감내해야 할 고통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못했다. 어차피 2억 원이 넘는 돈을 날린 이상 4억 원을 더 투자한다고 해서 더 두려워질 이유가 없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그 음모가 발각될 경우에 대비하여 나는 얄팍한 수작을 부렸다. 수십 개의 신용카드를 관리하는 요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12개의 도장과 12매의 증권재형저축 통장을 고무 밴드로 묶어 비닐 봉투에 넣은 뒤 서랍 깊숙이 보관했다. 직장 동료들의 시선을 의식했던 나머지 그 비닐 봉투가 담긴 서랍은 늘 잠가 두어야 했다.



그토록 변칙적인 주식 투기와 사기 행각으로 내가 얻은 것은 손실 만회가 아니라 오직 파멸의 종착역에 이르는 길밖에 없었다. 발광체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알려진 작전주 세우포리머를 사들이면서 나는 더 골병들기 시작했다. 액면가 5천 원짜리 주식이 4만 5천 원까지 폭등했을 때 상투를 잡은 투자자는 나처럼 어리석은 개미들뿐이었다.



“대박을 그리며 루머를 쫓기보다는 우량 주를 잘 구별해 진득하게 보유하세요.”

다른 펀드 매니저가 보다 못해 충고했지만 나는 귀를 막았고 그렇게 패가망신의 지름길을 걸어갔다. 증시 분석가들의 말을 믿지 못했던 나는 단 며칠이라도 주식을 팔고 사지 않으면 직성이 풀지 않는 초단타 매매를 고집했다. 과잉 기대가 내 투자 심리를 지배했고 시장 분위기에 휩싸여 위험을 고려하지 않는 배팅을 고집했다. 결국 과열된 증시의 희생자는 나 같은 개인 투자자들뿐이었다. (계속)
2009-01-03 18: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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