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하이스쿨 로큰롤>
신나는 하이스쿨 로큰롤 CD 1 - Track 3.
 mojo
 2009-01-03 00:42:54  |   조회: 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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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하이스쿨 로큰롤-




CD 1 - Track 3. Strange Kind of Woman (이상한 여자)


음악을 만난 것은 고3의 첫 날. 개학식에서였다. 아직 날씨는 추웠고, 건물 뒤편이나 나무
그늘 밑에는 겨우내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땅과 나는 대강당
에서 악기들을 세팅하며 새로 오게 될 음악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하고 있었다. 작년까지
밴드부 지도교사를 하던 음악선생은 출산 때문에 학교를 그만뒀다. 아마도 개학식에서
새 음악 선생이 소개될 테지.


"가슴 큰 여선생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성 도착증 있는?"

"으흠~."

조땅과 나는 이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히히덕댔지만 사실 가슴 큰 변태 여선생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우리는 제발 밴드부실에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태교에 좋다며 모차르트를 치는
선생만 아니면 됐다. 엄마가 모차르트를 들으면 아기가 수학능력이 좋아진 데나 뭐래나?
망할 그렇다고 로큰롤을 치지 못하게 할 건 또 뭐야! 로큰롤을 들으면 아기가 가슴털이라도
달고 태어나나?


게다가 우리가 항상 로큰롤만 친 건 아니잖은가? 가오 빠지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는
기독교도가 지배하는 이 학교에서 밴드부 활동을 인정받기 위해 교가나 찬송가를 행사
때마다 빈 소년 합창단처럼 예쁘장하게 연주해야만 했다. 물론 학교측에서는 반주를 MR
테이프로 대신할 수 있는 노릇이었지만, 어떻게든 로큰롤을 연주하는 우리를 교화시키고
싶어 저런 조건을 붙였던 것 같다. 우리는 로큰롤을 위해 예수귀신에게 영혼을 팔았던
것이다.


음... 지금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하다. 보통 악마에게 팔아야 하는데... 여자가 안꼬인 게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난 기타 케이블을 튜너에 꽂고 제 5현을 가볍게 튕겼다. 튜너는 빨간불을 깜빡일 뿐이었고,
게이지는 올라가지도 않았다. 방학동안 튠이 완전히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조땅을 바라보니
녀석은 이미 드럼조립을 끝내놓고 연단 끝에 걸터앉아 어떤 여자애하고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여자애의 입이 헤벌쭉 찢어진 걸로 보아 조땅 팬클럽중 하나인 것 같았다. 그 아이는 연신
호호거리다가 개학식 시작시간이 다 돼가자 "수고해!" 하며 조땅에게 캔커피를 안겨주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헬로우? 이봐 나도 밴드부야. 나도 수고한다고! 젠장 투명인간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마실래? 난 블랙 아니면 안 마셔."

조땅이 캔커피를 휙 하고 던지며 말했다. 어디선가 날 찔러 죽일듯한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씨발 모르겠다. 그 여자애는 사람은 얼굴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야 이년아 내가 조땅보다 마음은 착하다고! 난 캔을 뜯으며 녀석에게 물었다.

"몇 점?"

"20점."

"60점은 돼 보이는데?"

난 어이없다는 듯 조땅에게 되물었다. 우리는 심심하면 여자애들의 가슴을 크기와 형태에
의거, 전체적인 미적조형을 평가하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평가기준은 파멜라 앤더슨이었다.

"뽕브라야. 가슴 선이 너무 올라가고 뾰족하게 튀어나와서 티가 많이 나잖아. 실제로는 A컵일 걸?"

그런가? 음. 이건 기억해둬야겠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창피한 일이지만 당시 내 해골속의
50퍼센트는 가슴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나머지 50퍼센트? 물론 그냥 텅~ 비어 있었다.
내 뒤통수를 누군가 보신각 종 치듯 꽝! 친다면 가~슴 하는 멋진 공명음이 하늘나라까지
울려 퍼졌으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제발 가~슴 큰 여선생을 내려주세요!'


그리고 개학식이 시작됐다. 뭐 개학식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애국가 부르고 신입생 선서하고
그런 지겨운 의식의 연속이었다. 다만 이런 행사 때 밴드부의 유일하게 좋은 점이랄까?
오와 열을 맞춘 학생들 틈바구니에 있어야 했던 게 아니라 연단 옆 구석탱이에 짝 다리
짚고 서 있을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애국가 따위 부를 때 입하나 벙끗 안 해도 되고 말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매국노라고 해도 상관없다. 난 저 노래가 정말 싫다. 내가 무정부주의자나 주체사상의
신봉자 이런 건 아니다. 하지만 저 노래 좆나 우울하지 않은가? 게다가 지겨운 얼굴을 한
천여 명의 아이들이 억지로 웅얼거리며 노래 부르는 꼴을 보자면 짜증이 난다. 좀 경쾌한
노래로 하면 안되나? 나라 말아먹었을 때 만든 노래 아니랄까봐 왜 이리 우울한 거야?
애국가만큼은 우리가 치지 않고 MR테이프로 돌린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애국가가 끝난 후에는 신입생 선서와 이사장의 훈화와 교장의 훈화 그리고 개학식 특집이랍
시고 동인천 어딘가 있다는 으리으리한 교회에서 온 목사의 훈화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나는 대강당에 나란히 서 있던 200명에 달하는 신입생 여자애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
보고 있었다. 젠장, 신입생들은 아예 열등반이 없고 전부 우등반으로 구성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서부터 예상했던 바지만 정도가 상태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나는 21세기까지
발기불능에 빠질 것만 같은 절망감에 빠졌다. 게다가 교장은 서해안 시대와 인천의 명문
사립S고와의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 연관성에 대해 삼십분 가까이 떠들어 대고 있었다.


"뜨거운 패기와 차가운 이성의 조화로 다가오는 서해안 시대를…."


어쩌고저쩌고 하는 요지의 훈화였다. 에라 썅 그 두 개 합쳐 놓으면 미지근해지기 밖에
더하겠는가? 훈화를 하고 싶으면 좀 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훈화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이를테면 서울대에 가게 되면 훌륭한 사람이 되서 연예인과 섹스를 할 수 있다거나 뭐 이런
거 말이다. 난 무릎연골이 문드러질 정도로 지겨운 훈화에 넌덜머리가 났다.


훈화가 끝나고 교장이 새로 온 선생들을 차례로 소개했다. 선생들은 대부분 서울대 연고대를
나온 재원이십니다~. 라는 수식어와 함께 소개됐다. 그 수식어가 붙지 않은 것은 가장 나중에
소개된 음악 혼자였다.


"에…. 그러니까…. 신임 음악 선생님이십니다! 키가 크시죠?"

교장이 이리저리 음악의 신상명세를 살펴보다가 한숨을 푹 쉬더니 소개말을 했다.
음악이 고개를 꾸벅이며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했다.

"몇 점?"

내가 조땅에게 물었다.

"권고전학."


음악의 첫인상은 가슴 큰 변태 여선생이라기보다 고등학생이 읽어야하는 한국 단편문학
걸작선에 나오는 히스테릭한 B사감에 가까웠다. 그녀는 20대후반정도로 보였는데, 한국
여성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 키는 컸지만 늘씬하다기보다는
그냥 마른 체형이었다. 가슴은 어디 팔아먹었는지 몸의 굴곡이라곤 없다시피 했으며 길고
가는 눈매 때문에 당장에라도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릴 것만 같았다. 덧붙여 당시 입고 있던
쓰리피스 정장은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재킷과 치마여서 어디 장례식에라도 앉혀 놓는 게
더 어울릴 것만 같았다.

이를테면 로큰롤의 장례식 말이다....
밴드부실에서 이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울려 퍼질 거만 같았다.


"아, 잠깐만요."

음악이 자리로 들어가려다 말고 퍼뜩 생각난 듯 말했다.


"깜빡할 뻔 했는데요. 일단 애국가의 가사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느.님. 이거든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국가인데, 멋대로 고쳐 부르면 안되겠죠?"


말을 마친 뒤 자기 자리로 가서 사뿐히 앉은 음악의 표정은 컨닝하는 애를 잡아낸 것처럼
보람찬 즐거움으로 가득해 보였다. 물론 으리으리한 교회에서 온 목사의 얼굴은 삽시간에
굳어버렸고, 이사장과 교장 역시 유두에 피어싱을 한 막내딸을 본 것처럼 뜨악해졌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기독교 계열 미션스쿨에서는 애국가의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부르는 게 암묵적인 합의였다.


휘~익! 하는 휘파람 소리 하나가 아이들 사이에서 송곳처럼 뛰쳐나왔다. 대강당 이곳저곳에
그 휘파람 소리가 메아리 쳤고, 학생주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누군지 찾으려는 듯
두리번댔지만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밴드부실에서 비틀즈 정도는 칠 수 있게 된 거 같지 않냐?"

조땅이 싱글벙글하며 나에게 말했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바이바이 모차르트. 베토벤과 함께
교과서안에서만 얌전히 누워 계시게나.


당황한 선생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조땅과 나는 우리 차례를 준비했다. 행사 마지막에
치는 교가는 항상 우리 몫이었다. 난 내 허리춤에 걸려있던 스트라토 캐스터에게 속삭였다.

'제니퍼! 오늘도 잘 부탁한다!'

아…. 기타 이름이 왜 '제니퍼' 냐고? 미국에서 건너온 기타니까 왠지 미국사람 이름을
붙여줘야 될 거 같지 않은가? 그리고 난 당시 제니퍼 코넬리에 푹 빠져 있던 상태라
그런 이름을 붙여줬다.


오랜만에 까랑까랑한 스트라토 캐스터의 음색이 대강당 안에 울려 퍼졌다. 우리가 치고
있는 게 지미 핸드릭스의 노래가 아니라 구질구질한 교가라는 점이 짜증났지만,
'제니퍼'는 불평 한 마디 없이 단단하고 맑은 목소리로 내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음을 쏟아냈다.


물론.


대강당안에 있던 모든 이들은 (심지어 선생들까지도) 아우슈비츠에 끌려가는 유대인들
마냥 힘겨운 목소리로 S고와 인천 사이의 풍수지리학적 고찰을 담은 가사를 웅얼거렸다.
그 꼴을 보자니 이런 형편없는 음악을 연주하는 제니퍼가 불쌍해졌다. 그래서 나는
연주가 끝날 때 가볍게 펜타토닉 스케일의 장식음을 넣어줬다.


짝! 짝! 짝! 짝!


교가가 끝난 후 잠시간의 정적을 깨고 별안간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한 대강당에
메아리친 박수소리는 말도 안되게 생뚱맞았다. 아이들은 웅성댔고, 선생들도 어이가 없는지
범인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음악이었다. 음악은 박수 치던 손을 재빨리 무릎사이에 끼워 넣었고,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딴청을 피웠다. 대강당의 정적 속에 여기저기서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나와 조땅 역시 피식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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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3 00: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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