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식대박터뜨리기
<6화> 치욕스런 퇴장
 주식담당
 2008-12-26 02:24:59  |   조회: 1369
첨부파일 : -
명예퇴직금 2억 원과 빚더미 10억 원



1998년 1월 17일, 대한은행 본점 인사부에 사표를 던지던 날 밤, 나는 온몸이 무너지는 듯한 무력감을 주체하지 못했다. 자살을 결심한 중늙은이 노숙자처럼 안주 없는 강소주를 폭음했다. 후미진 공터의 어둠 속에 홀로 쪼그리고 앉아 병 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만취 상태에서 허청거리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갑자기 위장이 고통을 호소해 오자, 나는 마셨던 액체를 깡그리 토해 버렸다. 고꾸라진 상태에서 이마를 만졌다. 피가 손에 묻어 났지만 아프지 않았다.



입을 꽉 다문 채 구역질을 참았고 허공으로 흩어지는 희망을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으려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시멘트벽에 멍하니 기대어 캄캄해진 세상을 원망했다. 그러나 나는 지독한 좌절감 속에서도 쓰러져 죽지 않고 용케 살아 있었다.



코흘리개 시절에는 내 자신이 행복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철든 이래 30대 초반까지 한번도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안정이 보장되는 대한은행에 취직한 데다가 이 나라 최고 명문 대학을 졸업한 직장 여성, 능력 있고 아름답고 건강한 여자의 사랑을 쟁취했으니 행복감을 즐겨도 좋았었다.



하지만 그 행복한 자부심은 오래도록 만끽할 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얼떨결에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항상 불안감을 안고 서성거려야 했다. 속으로는 늘 ‘본전만 찾고 손을 떼야지’ 하고 중얼거렸지만 결국 악마의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본전을 찾기는커녕 빌린 돈에 대한 이자를 갚기도 어려워지고 있었다. 탈탈 털리고 거액의 빚까지 졌을 때,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마땅한 놈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내를 속이고, 장모와 처가 식구들을 속이고, 홀어머니와 형제들을 속이고, 친구들을 속이고, 직장 동료들을 속이고, 교회 신도와 목사님들을 속이고, 가까운 이웃들을 속여 가며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한 뒤, 11억 원대의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되자 나는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버렸던 것이다. 이웃 사람들은 앞으로 나를 재앙의 덩어리, 당장 없어져도 좋을 속없는 망나니 사기꾼으로 생각할 게 뻔했다. 한 마디로 말해, 한 여성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라는 가장의 자격도 폭삭 허물어진 셈이었다.



명예 퇴직금 1억 7천만 원, 이제는 더 이상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빚 11억 원, 빈털터리가 짊어진 순수 부채 원금 10억 원……. 대한은행에서 20년 4개월 동안 청춘을 바쳐 가며 근무했던 나의 ‘결산 보고서’는 부실하다 못해 엉망진창이었다.

1959년 충북 청주 출생, 1977년 10월 대한은행 특채 입사, 1978년 2월 부귀상고 졸업, 1978년 3월 대한은행 정식 입사, D대학교 야간부 회계학과 졸업, B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대한은행 을지로 지점 대리, 주식 투자 실패로 파산, 1998년 2월 대한은행 퇴사……. 어느 누가 봐도 지극히 단순하고 서글픈 이력서 한 페이지만 달랑 기록해 둔 채, 나는 진저리를 치며 그 안정된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 * *



은행 근무 20년의 결과는 빈털터리



1998년 1월, 대한은행 본점 인사부 여직원에게 떨리는 손길로 사표를 내밀던 순간, 나는 죽을병에 걸린 말기 환자처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정녕 이토록 아무런 대책 없이 물러나야 한단 말인가. 당장 가능하다면 아무도 모르게 이 도시를 떠나서 잠적해 버리고 싶었다. 말이 좋아 스스로 선택한 명예 퇴직이지 사실상 선택의 길이 없어 어정쩡하게 떠밀리듯 물러나야 하는 치욕스런 퇴장이었다.



1997년 12월 IMF 구제 금융 사태, 대한은행 내부 구조 조정의 신호탄은 나에게 기회이자 위기였다. 8천만 원 가량의 퇴직금을 더 받을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감, 빚잔치를 벌여 가며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것이라는 한 줄기 어두운 소망이 지지리도 못난 나를 막다른 구석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한은행 안에서 명예 퇴직을 신청한 직원은 입사 동기 200여 명 중에서 내가 처음이었다.



사표를 쓰던 그 순간, 갑작스런 퇴장과 잠적의 기미를 간파한 사람은 인사부 여직원 한 명밖에 없었다. 선량한 아내와 철부지 두 자식, 홀어머니와 형제들, 장모와 처형과 동서들, 수많은 채권자와 연대 보증인들, 대한은행 동료들이 눈치챌까 봐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명예 퇴직 신청서에 서명 날인하던 그 날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표를 제출한 뒤 대한은행 본점 19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나는 실성한 놈처럼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내 의식은 살아 있는 것도 죽어 있는 것도 아닌, 그 중간을 헤매고 있었다.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고통의 원인밖에 되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대로 감쪽같이 사라지는 길은 정말 없을까 고민했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대한은행 한 곳에서만 보낸 20여 년의 세월,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는 텅 비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 깨물어 주고 싶도록 사랑스러운 두 자식들, 고향의 홀어머니와 네 명의 형제들, 그리고 장모와 막내 처형과 동서들을 생각하니 서글픈 연민의 정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앞도 보지 않고 걸었다. 때로는 길거리에서 멍하니 멈춰 서기도 했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나는 사실상 이 도시의 허공에서 공중 분해되었고 철저히 빈털터리가 되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지나치게 고통스러워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다. 40년 전 이 세상에 알몸으로 던져지던 탄생의 순간처럼 새로 시작하는 거다…….

그토록 절절한 고통과 오기의 토막들을 끌어안고 비틀거리면서도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 해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지만, 알거지가 된 나는 열병을 앓는 환자처럼 헐떡거리고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서거나 도망쳐 숨어 버릴 공간이 없다면 이를 악물고 견디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사기꾼 취급을 받아서 빚쟁이들의 몰매를 맞거나 이 세상으로부터 유배당할 운명이라면 이 도시 안에서 감당하지 못할 일이 또 있겠는가.



나는 연신 가슴을 쓸어 내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밝은 곳은 기웃거리지도 못하고 어두운 곳이나 음습한 곳에 숨어 있어야만 하는 패배자, 수많은 빚쟁이들을 피하여 절망의 벼랑끝에서 달달 떨던 나는 완벽한 빈손이 되고 나서야 과거의 나를 차분히 되돌아볼 수 있었다.(계속)
2008-12-26 02: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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