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욱 소설게시판
Memories... <제 10 회>
 JUP STORY
 2008-12-22 11:45:46  |   조회: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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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은 도서관에서 나와 캠퍼스 내에 위치한 문구점에 들렸다. 점원에게 현욱이 건네준 노트를 건네며 복사범위를 말해주곤 한 부만 복사해달라고 했다. 점원은 노트를 받아 복사기로 가져갔다.

현욱이 혜린을 짝사랑한다는 사실을 비밀로 지켜주기로 해놓고 좀 전에 그렇게 쉽게 내뱉은 자신이 너무나 아둔했다. 다행히 영섭도 아는 사실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몰랐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는지 눈이 질끈 감겼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이상 현욱에게 한 실수라도 만회하기 위해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사가 다 되었는지 점원이 가져왔다. 복사물을 확인해보니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여전히 남자답지 않은 정갈한 글씨체와 깔끔히 정리된 내용은 복사를 해도 눈에 잘 들어왔다. 가장 부담되었던 과목을 그나마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조금은 홀가분했다.

만약 혜린도 이 복사물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지만 이제껏 혜린을 향한 현욱의 행동을 말미암아 무척이나 소심하게 보이는 성격이 직접 전해줄 리는 없어 전무해 보였다. 사실 이것만큼 아주 자연스러운 계기도 없을 텐데… 그런 안타까움도 잠시, 굳이 현욱이 직접 전해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란은 다시 점원에게 다가가 현욱에게 빌린 노트를 건넸다.

“한 부만 더 복사해주세요.”

나머지 한 부의 복사를 마치고 그곳에서 나왔다. 여전히 비는 축축하게 내렸다. 우산을 펴고 가는 순간 저만치 혜린이 걸어왔다. 미란은 마침 잘됐다는 표정으로 다가가 넌지시 인사하자 혜린도 반가운 눈치였다.

“언니, 어디 가요?”
“도서관에…”
“좀 있으면 시험기간이라 도서관에 가봤자 자리가 없을 텐데…”
“공부하러 가는 건 아니고, 현대인의 정신건강 시험 때문에. 너도 같이 들어서 알지만, 미리 자료정리하고 차근차근 준비해야지. 시험분량은 좀 많니?”
“그거 정리하려면 엄청나게 시간 걸릴 텐데… 근데 언니! 오늘 저 만난 거 행운인 줄 아세요!”

뜬금없는 소리에 혜린은 좀 어리둥절했다. 그때 미란이 복사물 한 부를 건넸다.

“짜잔! 이거 언니한테 한 부 줄 테니깐 언니도 이걸로 시험 공부해요. 분명 도움이 될 거니깐.”

혜린은 복사물을 훑어보자 금세 감탄을 금치 못했다. 미란은 마치 좀 전 자신의 표정을 보는 듯해 웃음마저 나왔다.

“이걸 어떻게 정리 다했어? 정말 대단하다! 게다가 글씨도 굉장히 잘 쓰네.”

자신처럼 복사물에 대한 혜린의 반응도 확실히 긍정적이었다.

“근데 안타깝게도 제가 한 건 아니에요.”

혜린이 잠시 복사물에 눈을 떼고 미란을 쳐다봤다.

“그럼 누구…?”
“왜 우리하고 같이 수업 듣는 선배들 있잖아요.”
“영섭이?”

미란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영섭 선배 말고 같이 다니는 선배 있잖아요.”

혜린은 ‘아!’하며 누군지 아는 듯 했으나 이름까지는 모른 듯 했다. 이렇게나 현욱이 존재감이 없을 줄은… 결국 미란이 말했다.

“신! 현! 욱! 그 선배가 한 거예요. 근데 정말 잘했죠? 마침 한 부 남는 거니깐 선배 가져요.”
“그래도 되나? 그 애한테 미리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아? 정리한다고 정말 많이 애썼을 텐데… 자기가 정리한 걸 남이 아무렇지 않게 본다면 기분 나빠하지 않겠어?”

현욱이 더 좋아할 거란 말은 차마 못했다. 대신 다시 한 번 혜린에게 그의 이름을 새겨주고자 선배 앞에 꼭 ‘현욱’을 넣어 말했다.

“그 선배… 아니, 현욱 선배는 그렇게까지 옹졸하지 않으니깐 걱정 말아요. 차라리 나중에 마주치면 고맙단 인사가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럼 먼저 가볼게요.”
“응. 그리고 이거 고마워.”

혜린이 기쁜 표정으로 복사물을 들어 보이자 미란은 흡족했다.

“고맙긴요. 그리고 제가 한 것도 아닌데요. 나중에 현욱 선배한테 고맙다고 하세요. 그럼…”

하미란, 잘했어! 미란은 자화찬하며 흐뭇한 표정으로 사회과학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막 주차장에 이르렀을 때 평소에 보지 못했던 승용차 한 대가 보였다. 빨간색 미니쿠퍼였다. 평소에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를 유심히 볼 일은 없었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혹은 시내에서 간혹 볼 수 있었기에 유독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런 관심도 아주 잠시, 미란은 무심하게 건물 로비로 들어섰다. 이번엔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짙은 화장이었지만 늘씬한 몸매에 군더더기 없는 정갈한 옷차림은 세련미가 엿보였다. 더구나 명품로고가 박혀있는 토트백은 좀 전에 자신이 봤던 빨간색 미니쿠퍼의 주인임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해 보였고 그런 자태에 유독 지나가는 남학생들의 시선이 오갔다.

미란은 처음 보는 그녀가 괜히 눈에 밟혔다. 이상하리 만큼 꺼림칙한 느낌에 얼른 그녀를 지나칠 때였다. 현욱이 2층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빌린 노트를 돌려줘야 했는데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욱의 표정이 좀 전과는 달리 시큰둥했다.

미란은 들고 있던 노트를 건넬 찰나에 방금까지 괜히 거슬렸던 그 여자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현욱아!”

그녀는 현욱에게 반갑게 다가갔다. 현욱은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서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서있을 뿐이었다.
2008-12-22 11: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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