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욱 소설게시판
Memories... <제 3 회>
 JUP STORY
 2008-11-26 00:06:09  |   조회: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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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욱은 매주 그녀를 만났던 그 시간, 그 장소를 맴돌았지만 한사코 다시 볼 수 없었다. 하긴 애초부터 이렇게 한들 그녀를 확실히 만날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저 그럴 확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었기에 이런 기다림 자체가 무모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그녀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조금만 더 대범하게 행동해서 그녀의 전화번호라도 알았다면 이런 무모한 기다림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런 후회와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두 달이 지나서야 그녀를 다시 만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는 것이 확실시 됐지만, 그녀에 대한 마음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허전한 마음은 더욱 공허해가만 갔다.



어느덧 캠퍼스 곳곳의 가로수 잎은 모조리 떨어져나간 나머지 마른가지만 앙상하게 남았다. 교양학관 203호에는 학생들이 숨죽여가며 기말고사 답안지를 바삐 작성하고 있었다. 영섭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슬쩍 손안에 넣어둔 커닝페이퍼를 훔쳐보느라 정신이 없는 반면 현욱은 막힘없이 써내려갔다. 그렇게 답안지를 채우고 제출하고는 성큼성큼 강의실에서 나왔다.



여느 강의실에도 시험 중인지 복도를 비롯한 건물 자체가 평소보다 적막했다. 현욱은 로비에 마련된 벤치에 몸을 맡겼다. 그때 먼발치에서 발자국소리가 들여왔다. 그곳의 침묵에 소리는 뚜렷했고 조금씩 가까워져 갔다. 현욱은 가방에서 아이팟을 꺼냈다. 이내 이어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왔고 때마침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순간 현욱의 눈에 비친 것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그녀였다. 전과는 다르게 베이지색 코트로 몸을 감쌌지만, 노란색 니트와 붉은 체크무늬 치마만큼은 동일했다. 더구나 백옥같이 눈부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지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이 공간에는 단둘밖에 남아있지 않으니 그토록 신경 쓰던 주변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최적의 기회였다.



‘남자답게 당당하게 걸어가서 마음을 표시하고 그 마음이 통하든, 통하지 않든 전화번호만은 필히 얻어야 한다. 오늘 같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마저 그녀를 그냥 보내버린다면…’



더 이상의 망설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그때 차마 아이팟을 생각하지 못한 나머지 툭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조용했던 터라 소리는 괜히 요란했다. 그녀의 시선은 현욱에게 향했고 서로의 눈이 마주했다.



‘지금이다!’



떨어진 아이팟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두 주먹까지 불끈 쥐며 그녀를 향해 당차게 한 발자국 나갔다.



“한혜린!”



하필 그때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물론 현욱마저 고개가 돌아갔다. 준수한 사내가 2층 계단에서 막 내려왔다.



“남석 선배…”



처음으로 듣는 그녀의 목소리… 외모처럼 목소리도 참 고왔다. 아무튼 그녀와 그 사내가 서로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연인 사이가 아니란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 사내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좀 전의 굳은 결의는 모조리 물거품으로 돼버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에게 말을 붙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못한 방법이란 것은 극명했다. 설사 지금 이 순간 이후로 그녀를 볼 수 없어도 아니건 아니었다.



불끈 쥐던 두 주먹마저 풀렸고 다시 벤치에 주저 앉아버렸다. 반면 그녀와 그 사내는 무슨 얘길 서로 주고받는지 그 사내는 말할 것도 없고 그녀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리고는 나란히 교양학관을 벗어났다. 아쉽고 안타까운 감정보단 그녀를 보자마자 서둘러 그녀에게 전화번호는커녕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아둔함에 더 부아가 났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뒷모습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깊은 한 숨과 함께 고개가 떨어졌다. 그제야 떨어진 아이팟이 보였다. 주워보지만, 이미 잔 흠집이 나있었다. 또 한 번 절로 한 숨이 터져 나왔다. 가방을 둘러메고 그녀처럼 유리문을 열고 나갔다. 어느새 확연히 멀어져간 그녀는 여전히 그 사내와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현욱은 그저 멍하니 제자리만 지켰다.



“한혜린…”


지독히 그리워하고, 그리워했건만… 그나마 알게 된 그녀의 이름만이 현욱의 애절한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대학 1학년이 지났다.
2008-11-26 0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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