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욱 소설게시판
Memories... <제 1 회>
 JUP STORY
 2008-11-22 00:53:15  |   조회: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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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도 대학가 인근에는 어김없이 분주했다.
거리 곳곳에는 다양한 신제품 발매를 위한 판촉행사들이 지나가는 학생들의 발걸음을 잡았고, 굳이 몇 걸음하지 않아도 카페, 카피전문점을 비롯해 조그마한 테이크아웃 가게들은 매 건물마다 하나씩 자리 잡아 빈번하게 거리를 매웠다.
현욱은 이리저리 시선을 옮겨가며 걸음하다 주변 건물과는 사뭇 다르게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가슴높이만한 담장 안으로 엔틱한 건물을 발견하자 걸음을 멈췄다.

“여긴가…?”

여느 가게처럼 흔한 유리문은 물론 출입문 대신 단층으로 된 테라스에는 몇 개의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이미 사람들로 군데군데 채워졌다.
마침 테라스 가장자리에 자리가 비어있었고 현욱이 자리를 잡자 금세 깔끔한 하얀 셔츠 차림의 여종업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건네고는 투명한 유리잔에 조심스레 물을 채웠다.

“저기 윤영섭 지점장 좀 불러주시겠어요?”

그저 주문을 받을까 했는데 현욱의 말에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저희 지점장님을요? 실례지만 어떻게 오셨나요?”

“친구에요. 신현욱이라고 전해주시면 될 겁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여종업원이 돌아간 지 일 분도 되지 않아 정갈한 수트 차림의 한 사내가 뛰다시피 다가왔다.

“어이! 신현욱! 이게 얼마만이냐?”

“한 3년 정도…? 아무튼 반갑다, 영섭아!”

둘은 자연스레 서로 악수를 청했다.

“새끼, 안 본 사이에 몸도 좋아졌고 얼굴도 좋아졌네. 임마, 네가 장교로 군대 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해병대 장교로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거기다 그렇게 갑자기 가버리는 게 어딨냐? 마중도 못가보고…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섭섭했는지 알기나 해? 내가 네 대변인도 아니고 이런저런 변명하느라 얼마나 진땀 뺐는데. 게다가 그렇게 갑자기 군대 갔으면 휴가 나오면 연락이라도 하든지. 정말 너란 놈은 못됐어!”

“미안, 근데 내가 요란스러운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건 너도 알잖아. 더구나 휴가도 그리 길지 않는데 이 사람, 저사람 만나면 더 피곤해. 그보다 너 결혼했다면서? 축하해.”

“참 빨리도 축하해준다. 결혼한지 벌써 6개월이 넘었고 내년 1월이면 이 몸이 아빠가 된다고!”

현욱은 그의 핀잔에 머쓱한지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영섭은 잠시 대화를 멈추고 근처에 있는 종업원에게 커피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이내 뜨거운 김이 피어나는 커피와 함께 그동안 3년이란 시간적 부재로 인한 일들로 대화를 이어갔다.

“정말 시간 빨리 가네. 민아까지 시집가다니… 하긴 민아가 스물일곱이니깐 딱 좋을 때 잘 갔네.”

현욱은 흐뭇한 웃음을 짓고는 커피잔을 들었다.
더 이상 김은 나지 않지만, 아직은 뜨거운 온기가 남았는지 아주 조금 커피를 머금었다.
그리고 다시 잔을 받침대에 내려놓을 때였다.
좀 전과는 다르게 영섭의 목소리는 나직했다.

“이제 군대도 갔다 왔으니 앞으로 취직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는데 이제 너도 제대로 된 연애해야지?”

“그래야지. 근데 연애는 뭐 혼자 하냐? 이참에 좋은 여자 있으면 소개 좀 해주든지.”

“꼭 멀리서 찾을 필요 있어? 미란이 있잖아!”

“미란이?”

현욱은 들던 잔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래, 하미란! 솔직히 너도 알다시피 미란이가 얼마나 귀엽고 예쁘냐? 게다가 결정적으로 널 좋아했잖아!”

“그랬지.”

“그랬지가 아니라고! 아직도 미란인 널 잊지 못하고 있어. 아직도 널 좋아하고 있다고. 대학때 사람들 만나면 가끔 보는데 그때마다 네 안부에 대해 얼마나 물었는데… 물론 나도 아는 게 없으니 딱히 말해준 것도 없었지만, 아무튼 정말 미란이만한 애 없다고!”

현욱은 잠시 손목시계를 쳐다보더니 이윽고 자리에 일어났다.

“네 말은 충분히 알겠으니깐 나중에 더 얘기하든지 하고, 오늘은 그만 가봐야겠다.”

“왜? 벌써 가게? 더 놀다 가지…”

“영어학원 가기 전에 잠시 들린 거라고. 나중에 또 올게.”

영섭도 자리에 일어나 현욱의 가슴을 가볍게 툭하고 쳤다.

“나중에 또 안와도 되니깐 이젠 연락이나 자주 해라! 아니, 내가 전화하면 잘 받기나 해!”

현욱은 웃음으로 그의 말에 답을 대신했다.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그곳에서 벗어날 찰나에 다시 한 번 영섭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현욱은 슬쩍 고개만 돌렸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아직도 그 애를 못 잊어서 그런 건 아니지? 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되지 않았어? 너도 이제 네 인생 찾아야지! 언제까지 그럴 거야? 막말로 네가 그 애랑 제대로 사귀긴 했니? 그저 너 혼자 그 애를 좋아한 거잖아? 그냥 짝사랑이잖아?”

현욱은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좀 전처럼 웃음으로 대신 대답하고 그렇게 거리로 나왔다.
여전히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로 분주했고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최신가요 음악소리는 오히려 소음에 가까울 정도로 쿵쾅거렸다.
현욱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아이팟을 꺼내어 작동시켰다.
물론 완전히 바깥 소음을 차단할 수 없었지만, 한층 나았다.
이윽고 사거리 행단보도에 도착했고, 무수히 지나가는 차들로 반대편 신호등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옆에 있는 신호등을 올려다보았다.
신호등은 여전히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호등 옆에 우측을 가리키는 하얀 화살표 모양의 표지판에 진푸른 고딕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대한대학교 200m’

현욱의 시선은 그 표지판에 잠시 고정됐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보더니 망설이는 표정이 역력했다.
때마침 신호등의 불빛이 녹색으로 바뀌었고, 무수히 지나치던 차들은 정지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건너가고 반대편에서 건너오고 있었다.
현욱도 이곳에서 건너가기 위해 걸음했다.
그러다 횡단보도 중간에 이르렀을 때 일순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다시 돌아왔다.
다시 그 화살표 형상의 표지판을 바라봤다.

‘그래, 오늘이 아니면 다시 학교에 올 일도 아닌데…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학교에 가겠어?’

현욱은 화살표 방향으로 씩씩하게 발걸음 했다.
전과 다름없이 커다란 가로수 사이로 긴 오르막이 그를 처음 맞이했다.
조금씩 걸어 올라갈 때마다 얇은 가지에 겨우 걸쳐있는 듯한 울긋불긋한 나뭇잎들이 드문드문 떨어졌다.
오르막길에 거의 도착했을 때 대학본부 너머로 ‘교양학관’이라고 하얀색 문자로 붙여져 있는 짙은 붉은색 건물이 보였다.
현욱의 걸음은 한층 더 빨라졌고 그의 걸음걸음만큼이나 괜한 설렘과 함께 그의 심장도 고동쳤다.
금세 교양학관이 완전히 들어났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하나씩 밟아갔다.
계단 양쪽 가장자리와 중앙에 위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진 화단이 생긴 것 외에는 전과 다름없었다.
이내 안이 훤히 비치는 유리문을 열고 로비로 들어섰다.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오가고 있었고 현욱의 설렘은 점점 더해갔다.
강의실이 양쪽으로 줄지어져 있는 복도로 향했고 203호 강의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마침 강의가 끝날 시간인지 강의실 문이 열리면서 학생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한 남학생이 그 강의실에서 나오는 와중에 마침 그곳을 지나치던 한 여학생과 부딪힐 뻔 했다.
그 남학생이 먼저 멋쩍은 웃음을 짓고 사과하자 그 여학생 역시 웃으며 그의 사과를 받는 듯 잠시 고개를 숙이곤 다시 걸어갔다.
반면에 그 남학생은 그 여학생의 뒷모습을 쳐다보더니 잠시 주춤거리다 급하게 그 여학생의 뒤를 따라갔다.
금세 그 여학생을 따라잡은 남학생은 뭐라고 중얼거리자 여학생은 수줍에 웃었다.
그리고 남학생은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더니 또 중얼거렸다.
여학생은 잠시 골몰하더니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고 좀 전까지 상기된 남학생의 얼굴엔 환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잠시 후 그 둘은 그곳에서 벗어나 버렸다.

‘좋아하는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저렇게 간단한 것이었나?
그 남학생은 도대체 어떤 결심으로 그 여학생에게 다가간 것일까?
단지 순간적인 감정으로 인한 무모한 행동은 아닐까?
그보다 어떤 달콤한 말로 그 여학생의 마음을 단 번에 빼앗은 걸까?
그 남학생이 모델 같은 몸매의 소유자도 아니고 잘생긴 외모도 아닐뿐더러 전체적인 행세로 말미암아 금전적 여유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길 가다가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남학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그 남학생이 자신의 진심을 상대방에게 눈으로 직접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그 여학생에게 상대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렇다면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인 것일까?

그러고 보니 7년 전, 그녀를 처음 본 것도 이맘때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다만 다시 만나고픈 마음에 그녀를 만났던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만약 그녀를 처음 만난 날… 그녀에게 내 진심을 고백했더라면 짝사랑에 그치지 않고 진정, 그녀의 사랑이 될 수 있었을까?’
2008-11-22 00: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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