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6개 프로구단 중 연고기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빠따는 대도시 지역 배분을 했을거라고 보는데 지방구단들은 대부분 연고 기업입니다.
해태는 광주.전남지역 기업.롯데는 부산.삼성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창업했고 대전도 오비베어스가 충청기업이 아니라서 몇년간 충청팀으로 있다가 충청지역기업인 빙그레 이글스.현재 한화이글스가 창단되자 서울로 연고 이전했습니다.철저하게 지역민들의 기업으로 출범했죠
프로축구는 현대구단은 고 정주영회장의 고향 강원도를 연고로 했지만 강원도가 현재의 교통이 좋은것이 아니라 다른지역에서 가면 엄청난 불편을 격었고 지역 노동자.직원들이 있는 울산으로 연고 이전.포항제철 역시 대구.경북으로 연고를 정했지만 삼성같이 포항외의 지역은 별로 관심이 없었죠,
솔직히 이당시는 프로축구 라는 이름이 민망할정도 형식적인 연고와 유랑을 했죠.
이렇게 울산.포항.부산 지방구단들이 정착이 되니까 서서히 연고정착이 이뤄졌죠.
대우 역시 부산에 버스공장이 있고 뱃길로 1시간도 안되는 거제조선소가 있어서 부산 지역의 구단으로 발전했죠,
프로축구.빠따구단들은 여차하면 직원들을 동원할수 있는 지역을 선호합니다.
서울 공동연고 정책으로 3개구단은 지역에 기반이 없기때문에 수도권 중견도시에 연고를 정했죠,
만약 아무 연고도 없이 대도시라는 이유만으로 연고를 정했으면 숙소.지자체와 협력.이동거리가 복잡하고 구단들이 불이익이 올수가 있습니다.
농구.배구도 지방구단들은 전용숙소 체육관은 수도권에 있고 경기가 있는 날에만 지방에 내려가는데 지역민과 소통이 되지를 않죠,기업들이 대도시를 물론 선호 할것이지만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프로축구는 그렇다고 당시 인기가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니고 지자체들 특히 문화가 발달된 대도시는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죠,중소도시는 관심이 많았습니다.강릉은 일화 유치를 할려고 하고 현재 통합시 지만 당시 50만도 안되는 창원이 구단유치 아니면 창단할려고도 힜고 진주 역시 프로축구에 관심이 많았죠,
월드컵 유치가 되고 부터 경기장활용등으로 대도시에 컨소시엄.시민구단등으로 창단을 적극적으로 나서고 대도시.중소도시 할것없이 프로축구단이 있고 승강제가 되었습니다.
제 글로 인해서 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제가 알고 있는 당시 상황을 글로 옮겼습니다.
제의견이 잘못이 있는것도 있겠지만.....
울산 같은 경우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1990년부터 울산연고지였으니 25년째인데 왜 1990년대보다 관중수가 적은지 아십니까
울산 소득이 높아지면서 공짜표 아무리 살포해도 근로자들이 축구장에 안 가요. 더 재미있는 곳 갈데가 많아졌거든요. 포항도 그렇고 광양도 마찬가지입니다.
1990년대에 이런 공업도시에서 관중 오는걸 축구계에서는 연고지 정착을 한다고 착각했는데 전혀 아니올시다입니다.
그리고 포철 같은 경우 포항 보다는 대구, 광양 같은 경우도 광양 보다는 광주 이렇게 프로스포츠 측면으로 더 사업성 있는 연고지보다 그냥 이익 안 바라고 운영하는 구내식당 운영하는 개념처럼 자기들 운영하는 공장 연고지에 축구팀 만들고 공짜표 풀고 근로자들이 경기장 채우는게 이게 연고 정착이 되는거라고 절대 생각이 안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