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영 칼럼] (2) 의학이란 무엇인가?
[오순영 칼럼] (2) 의학이란 무엇인가?
  • 오순영 가정의학과 전문의
    오순영 가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4.03.15 15: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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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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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뿐 아니라 의학에 대해 조금 식견 있는 사람이라면 의대정원을 갑자기 2000명이나 늘리는 것이 국민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교육의 질저하, 의료의 상업화, 환자의 상품화, 의료비증가와 낭비, 인재의 의대 쏠림이 바로 눈앞의 일처럼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의사 수 늘리기라는 포퓰리즘에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의사들을 향해 정부와 언론이 집단이기주의로 몰아 많은 국민들이 전례 없이 의사를 생명윤리를 저버린 양심도 자격도 없는 인간이라 비난하고, 고대나 중세에 횡횡하였던 의학 무용론과 치료 허무주의가 재등장하고, 현대의학에 대한 반감도 노골화되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된 것은 필자의 생각으로는 일반사람들의 의학에 대한 무지가 한 몫 한다고 생각한다.

질병으로부터 인간을 구하기 위한 의사들의 감동적인 헌신과 노력, 가슴 아픈 실패와 좌절, 천재적인 발명과 위대한 발견들이 현대의학 속에 얼마나 많았는지 알게 된다면 이런 현상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반대를 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의학은 다른 학문에 비해 비교적 대상과 범위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철학, 윤리학, 미학, 물리 화학 등의 학문은 대상, 범위, 목적을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의학은 누구나 상식적 수준에서 동의할 만한 정의가 있다. 의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며 질병의 예방과 치료라는 당면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용적인 학문이다. 그러나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하더라도 초미세 영역인 세포속의 세계, 더 나아가 분·원자 수준을 연구하는 학문은 의학으로 보기 어렵다. 그것은 생명 공학으로 엄연히 다른 학문이며, 다른 대부분의 학문처럼 앎, 진리 추구, 혹은 학문 자체가 목적이다. mRNA 유전자 백신은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합목적적인지 대한 규명 없이 세계인에게 일제히(혹은 강제적으로) 접종되었다는 점에서 의학과는 동떨어져있다.

그리고 인간의 질병은 사회, 문화, 경제, 정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므로 의학을 깊게 파고들면 정의를 간단히 내릴 수 없게 되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19세기 프로이센 제국의 좌파 정치인이자 의사, 인류학자인 루돌프 피르호는 “의학은 사회과학이고 정치학은 확대된 의학”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코로나 판데믹 이라는 예외사태에서 겪었던 정치와 방역을 보면 그의 말은 타당하다고 하겠다. 문재인 케어를 설계한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김용익 교수’ 라인으로 알려진 ‘김윤’은 과거에 의대 증원을 반대했지만, 정치적 입장이 달라지자 대폭증원으로 선회하여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후보가 되었다. 의학이 이렇게 정치 수단으로 악용되는 취약성을 갖고 있음과 질병 예방과 치료가 아닌 ‘이념의 실현’에 앞장서는 정치 의사가 있음을 의사는 물론이고 일반 국민도 알고 있어야 한다.

한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앎과, 삶의 문제를 하나로 보았고, 질병과 건강이라는 인간 존재의 실존 조건을 다루는 의학은 그들이 추구하는 총체적 앎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전집』뿐 아니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서도 의학의 성격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찾아 볼 수 있는데, 그중에 공통적인 견해는 의학을 기예(techne) 규정한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다른 철학자들에게도 이견이 없다.

여인석 연세대 의학사 교수이자 철학자의 『의학사상사』에서 테크네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특정한 분야에 한정된 지식을 의미하며, 구체적이고 분명한 목표를 지니며, 일종의 생산을 위한 활동이며, 합리적 규칙이 있고, 그런 면에서 종교적, 신적, 우연적 활동과 구별되는 활동이라고 하였다. 기예의 사전적 의미는 예술로 승화될 정도의 고도기술인데, 특히 난이도 높은 수술 분야, 혹은 진단분야에서 기예는 각고의 노력과 경험 없이는 이룰 수 없으며, 다른 분야의 학문에는 없는 의학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다.  

또 하나 의학의 고유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시행착오를 통해 올바른 방법을 발견해나가는 경험적 방법이다. 경험은 의학을 구성하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경험주의 의학은 알레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헬레니즘 시대에서 체계적으로 만들어졌다. 이집트 북부의 알렉산드리아에는 세계 모든 책의 집합장소로 불리는 거대한 도서관이 있었다. 히프크라테스 의학이 환자를 직접보고 세밀하게 관찰하는 임상의학이었다면, 알렉산드리아의 경험주의 의학은 실험과 실증을 토대로 한 과학적 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보다 해부학이 이 시기에 큰 발전을 이루었고 실험과 관찰을 통해 인체의 다양한 생리와 기능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해부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필로스는 알렉산드리아 헬리니즘 시대의 의사로 인체를 해부하여 현재 알려진 뇌신경 12쌍 중 6개의 신경을 발견했고,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을 구별하였다. 헬레니즘의 경험주의 의학은 질병의 원인과 이론을 중요시하지 않는 단점도 보였는데 이것은 과학의 미발달로 수많은 원인과 이론이 난립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중요시 했던 것은 효과가 있는 경험적 치료법 이었다. 경험적 치료는 19세기 루돌프 피로호의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과도 연결된다. 코로나 판데믹 시절에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 반드시 다음에는 고쳐나가는 것이 의학의 태도인데, 효과 없고 해가 되는 것을 반복하여 막대한 경제력 손실과 인명피해가 있었다. 의학의 본질인 경험적 방법론이 정치의사와 공무원에 의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의학이 무엇인지에 대략적으로 기술하였으나 아직 부족한 면이 많아 나중에 보충하기로 하겠다. 질병이 무엇인지, 건강이 무엇인지도 다음에 연재해 볼 생각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에서 많은 생명을 구한 영웅이 많기 때문에 다음 편에는 이들에 대한 글을 먼저 연재하여, 현재 한국인에 만연하고 있는 의학에 대한 불신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한다.

칼럼니스트 소개

오순영 원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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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2024-03-20 14:26:07 (106.101.***.***)
의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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