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석 칼럼] 뻔뻔함과 우직함
[정연석 칼럼] 뻔뻔함과 우직함
  • 정연석
    정연석
  • 승인 2024.03.0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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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총선이 다가옴에 따라 정치 기사가 봇물을 이루고, 이합집산과 배신이 난무하고 있다. 한솥밥을 먹으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던 동지가 서로 등을 돌리고 전장에서 만나야 하는 경우도 있다. 천박한 정치 놀음에 환멸을 느끼다가도 ‘에이, 뭘, 정치가 다 그렇고 그렇지’하고 체념해 버리기도 한다. 하긴 4류 정치라고 평가된 지가 언제인데, 차라리 기대를 접는 것이 속 편할 수 있겠다.

평생을 같이 갈 것처럼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다가 그 당을 탈당하는 심정이야 오죽하겠냐마는, 온갖 나쁜 말로 그동안 몸담았던 둥지를 비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마시던 물에 침 뱉지 말라고 했는데. 막상 내게 불이익이 닥치면 그것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국민의힘에서도 현역 국회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많아짐에 따라 탈당과 무소속 출마가 속출하고 있다.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는 울분과 함께 그동안 헌신한 것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이만큼 키워주고 돌봐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는 없을까? 좋다 좋다 하다가 어느 순간 태도를 바꿔서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양심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하긴 그 어려운 것을 해내는 뻔뻔한 사람이 정치를 할 자질을 갖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치가 상식과 같을 순 없을까

변화하는 상황과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뒤처지고 실패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직업도 바꾸고 이념도 바꾸고 심지어 정체성마저 바꾸기도 한다. 예술인이나 연예인이 인기를 기반으로 국회에 진출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탈랜트나 코미디언이었다가 정치를 하고, 아나운서나 앵커였다가 국회의원이 된 경우도 많이 있었다. 프로 바둑 기사도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수(國手) 조훈현이 4년 동안 여의도 정치를 경험한 후에, 정치판이 자기의 상식과 달랐고 정치 할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는 아군과 적군이 흑백으로 분명하게 나뉘고, 적군에게는 무조건 반대하고 반대표를 던져야 하는 이율배반이라고 느꼈다. “흰 돌인데도 무슨 꼼수를 부려서라도 검은 돌로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때가 묻고 하니 검은 것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식이다.”라며 자신의 뜻과 맞지 않아서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이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정계를 은퇴하면서 남긴 말도 우리 정치의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4년 동안 코미디 잘 배우고 갑니다.”

우직함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재빠르게 변신하는 적응력을 높이 평가하는 시대에, 어떤 사람은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키려고 한다.

며칠 전 별세한 원로배우 오현경도 그렇게 우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을 배우로 살았고 인기도 많았지만, 상업 광고를 단 한 편도 찍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심지어 수입이 적어 살림이 힘들 때, 아내가 옷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때에도 거액의 광고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전문 배우로서 꼭 하나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 같은 것이었는데, 주변에서는 그를 융통성 없다고 혀를 찼다. 그는 연극이 좋았고 무대를 사랑했다.

 

순수한 예술이 그곳에 있었기에 한 눈 팔지 않고, 평생을 작품과 함께 살았고 연극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인 작년 5월에는 연세극예술연구회가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함께 올린 합동 공연 '한 여름밤의 꿈'에 잠깐 출연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오현경이 무대에 오른 유작이 됐다. 거액의 출연료를 제안한 광고 출연보다 20대 꿈을 키웠던 모교의 무대를 더 사랑한 오현경의 삶은, 약삭빠른 변신과 배신이 난무하는 요즘의 정치판 문법으로 보면 어리석다고 하겠지. 그러나 때로는, 우직함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오현경의 몸짓을 다시 보고 싶다.  

칼럼니스트 소개 

 

정연석

한나라당 중앙당 부대변인

전, 대한지적공사 감사
한국성서대학교. 경주대학교, 여주대학교 한국어학당 한국어 강사
도서출판 석향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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