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석 칼럼] 광장(廣場)
[정연석 칼럼] 광장(廣場)
  • 정연석
    정연석
  • 승인 2024.03.0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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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외침은 시대에 따라 다르고, 중심 세력이 누구냐에 따라서 내세우는 구호도 다르다. 광우병 괴담이 넘치던 때와 대통령 탄핵이 절정에 이른 때는 촛불이 광장을 덮었던 것에 비해 요즘은 태극기가 광장을 덮는 사례가 많아졌다. 3.1절과 현충일 그리고 광복절이 되면 애국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집회에 참가했고, 올해도 어김없이 3.1절에 태극기가 광장을 덮었다.

105년 전의 3월 1일에는 우리의 민족 정체성과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보여주었고,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주창에 영향을 받아서 일본 식민 지배에 항거하며 독립을 선언했다. 맨주먹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고 일본총독부는 총칼로 막았다. 비폭력 독립운동의 효시가 된 삼일절을 우리는 국경일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밝히고 있다. 해방된 지 얼마 안 된 1947년의 3,1절에는 “3.1정신으로 통일독립을 달성하자”, “양키는 이 땅에서 물러가라”라는 슬로건을 내세웠고, 70년대 후반에는 유신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회복선언’과 ‘구국선언’이 3.1절 기념 시위의 주를 이뤘다.

광장의 소리가 시대를 반영하며 보수와 진보의 주장이 난무했지만, 요즘처럼 극심한 대립은 일찍이 볼 수 없었다. 한쪽이 광장을 점령하면 반대쪽은 다른 때를 기다리곤 했는데, 지금은 보수가 외치는 곳에 진보가 맞불 집회를 하고, 진보가 거리를 장악하면 보수가 앞길에 막아서서 몸싸움을 벌인다. 양쪽의 충돌을 우려해서 가운데 낀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일제에 항거해서 독립운동을 벌였던 그 날의 정신으로 광장을 회복해야겠다. 더 많은 인원을 광장에 동원했다고 해서 광장의 행사를 이끄는 진영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논리에 맞고 맥락에 맞는 주장만이 국민의 공감을 받고 지지와 호응을 받을 수 있다. 세력과 힘을 과시하듯이 군중을 많이 모은다고 주장의 타당성이 높아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광장의 의미와 수준을 그렇게 낮춰보면 안 된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그의 정치학이 제시하는 광장과 민주주의 토론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광장 즉 아고라(Agora)를 중요한 공공의 장소로 간주했고, 시민들이 함께 광장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토론함으로서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를 실현했다. 광장은 공공성, 자유, 책임성, 법 앞에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실현하는 공간이었고, 그래서 광장은 민주주의의 중심이었다.

참여와 의사소통이 민주주의와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평화적인 방법과 안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폭력이나 실력행사, 또는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와 무조건적인 강행은 광장의 기본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다. 대체로 힘없는 사람들이 광장의 마이크를 빌려 뜻을 전하는데, 힘있는 집단이나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광장에 몰려나와서 상대방을 제압하려 든다면 광장의 참뜻에 어긋난다. 국회의원들이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를 팽개치고 광장으로 나오는 것은 광장 오해의 끝판왕이다.

대한민국 광장 정치의 수준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삼일절은 온 국민이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국경일인데, 이날에 하나가 되지 못하고 광장에서 분열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삼일절의 기본 정신에도 맞지 않고 광장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행위이다. 오염된 불순물을 걷어내고 광장의 외침에 귀 기울이자. 그곳에서 자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갈 길을 찾아보자.

정연석 

한나라당 중앙당 부대변인

전, 대한지적공사 감사
한국성서대학교. 경주대학교, 여주대학교 한국어학당 한국어 강사
도서출판 석향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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