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석 칼럼] (8)동행
[정연석 칼럼] (8)동행
  • 정연석
    정연석
  • 승인 2024.02.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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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상생과 협력의 가치를 이야기하면서, 아프리카 속담이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종종 인용하곤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효율성과 다른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는 뜻이다.

‘빨리 빨리’를 좋아하는 대한민국 국민들도 빠름만이 능사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 허리에 실을 묶어 사용할 순 없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투표와 개표를 포함한 선거관리에 관심이 많아졌다.

본투표에 앞서 사전투표가 왜 필요한가라는 기초적인 질문부터, 개표를 완전 수개표로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었다.

유권자에게 편리하게 투표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사전투표가 실시되는데, 정작 서비스의 수혜자인 유권자들이 부정선거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을 더 원한다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전산 개표도 마찬가지이다.

빠르게 결과를 알려준다는 신속함과 효율성이 전산 개표의 장점인 한편, 그 장점을 포기하고 개표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개표를 통해 정확한 결과를 알고 싶다는 유권자가 많다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것이다.

사전투표관리관의 도장이 인쇄된 투표지를 프린터로 뽑아서 교부하지 말고, 관리관이 투표 현장에서 직접 관리관 자신의 도장을 날인해서 투표지를 교부하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빠름보다 더 중요한 다른 가치를 원하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모두에게 좋은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무인 판매기인 키오스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불편을 겪는 노인을 위해 인권위가 나섰다는 소식이다.

기차표나 영화 입장권을 구할 때, 특히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키오스크에 익숙지 못한 어른들이 많은 불편함을 경험하곤 했다.

불편함이 귀찮아서 점점 멀리하기까지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식당을 가도 사람이 주문을 받는 식당을 찾아가고, 기계 주문을 하는 식당은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불편을 겪는 노인들이 고립감과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디지털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인권위는 보도자료를 내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디지털 교육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그냥 방치하면 자칫 세대간 갈등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는 사안인데, 인권위에서 적절한 의견을 낸 것이다.

과학 기술의 혜택을 충분히 받지못하는 노인을 위한 배려가 더 튼튼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그 혜택은 청년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약자와의 동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은행에서 펀드에 가입하는 투자상품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노인을 가입시켰고, 그 결과 퇴직금과 노후자금을 날리고 낭패를 봤다는 사람들의 절규와 하소연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투자 상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고위험 상품의 리스크를 알지 못하는 고객에게, 은행 창구 직원들이 동행하는 마음으로 상담해 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개인의 선한 마음을 기대하기에 앞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만약 은행 임원들이나 금융 감독 기관에서 평가의 기준을 다르게 정했다면, 예를 들어 고위험 상품 유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고 예금주와 투자자의 수익성을 중요하게 평가하면, 창구의 직원도 노인들에게 고위험 상품 가입을 무리하게 권유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공기관의 일처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성과와 효율을 측정해서 기관과 기관장을 평가할 때, 단순한 효과를 측정하지 않고 약자를 보살피고 돕는 일에 평가의 높은 점수를 준다면, 오지 마을 외로운 사람을 찾아가는 수고를 조금 더 자주 할 수 있을 것이다.

방문 횟수나 일 처리 건수만 평가 지표로 강조한다면, 시간이 걸리고 힘든 일을 일부러 찾아서 할 공무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장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시대는 지났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은 이제 더불어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불행한 이웃을 곁에 두고 나 혼자서 행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불편해도, 더 높은 가치를 위해 기꺼이 감수하는 선택이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소개

정연석

한나라당 중앙당 부대변인

전, 대한지적공사 감사
한국성서대학교. 경주대학교, 여주대학교 한국어학당 한국어 강사
도서출판 석향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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