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서 동쪽으로 작은 들판을 지나면 산자락에 여섯 가구가 사는 작은 동네가 있다. 장전리 여루재 마을이다. 그 마을 황옥분할머니 집에 사흘 전 불이 났다. 안채가 모두 탔다. 황할머니는 교회에 가 있어 다치지 않았다. 불행중 다행이다.
오늘 그 마을을 찾았다. 홀로 사시는 황할머니는 바로 옆집에 임시 거주하며 어떻게 집을 복구해야 할지 걱정하고 계셨다. 대전에 사는 큰 아들이 내려와 어머니와 상의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 혼자 사시니까 작고 아담한 집을 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다. 아들도 동의했다. 화재보험에 들지 않았으니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황할머니가 신세를 지는 이웃은 문재항 선생님의 집이다. 그분은 내 큰 형님의 초등학교 친구로 나의 대선배다. 안방에서 그 분 내외 그리고 황할머니 아들과 모여 정담을 나누었다. 문선배님은 내 부모님과 자기 부모님이 너무 친한 사이였다며 여러 일화를 회고했다.
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해는 1979년이다. 그 해 어느날 내 아버지가 자기 집에 찾아와 아들이 합격했다고 자랑하며 두 분이 대취하셨다. 인사불성이 된 내 아버지를 자기가 업고 우리 집으로 모셔다드렸다는 것이다. 너무 무거워 혼이 났다며 파안대소했다.
황할머니 아들도 말했다. 그가 농사일을 하는 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들이 판사인데 왜 이렇게 힘든 농사일을 계속하십니까? 내 아버지가 대답했다. 인제는 판사일을 하며 살고 나는 농사일을 하며 산다네. 그는 그 때를 회상하며 웃었다.
내가 합격했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좋아하는 내색도 보이지 않으셨다. 그렇게 무뚝똑한 아버지가 친구를 찾아 그토록 기뻐하시며 대취하셨다는 말을 들으니 속 깊은 부정(父情)이 사무친다.
갑자기 집을 잃으신 황할머니 모자를 위로하고 여루재마을을 떠났다. 빨리 새 보금자리가 지어지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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