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칼럼] 설날 풍경
[전정희 칼럼] 설날 풍경
  • 전정희 소설가
    전정희 소설가
  • 승인 2021.02.1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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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한 해의 첫날 전후에 치르는 의례와 놀이 등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기록에 의하면 설이라는 말의 유래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이에 관한 여러 의견이 있는데 삼간다는 뜻으로서, 새해 첫날에 일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내게 해 달라는 바람과 17세기 문헌에 ‘나이, 해’를 뜻하는 말로 쓰여진 것으로 보아 ‘나이를 하나 더 먹는 날’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우리나라의 설에 관련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백제는 261년에 설맞이 행사를 하였으며, 신라는 651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에 나와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았는데 이때부터 왕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의례가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다.

설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는다. 그래서 떡국 한 그릇을 더 먹었다는 말은 설을 쇠고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차례와 성묘가 끝나면, 이웃 어른들과 친척 집을 찾아가 세배를 한다. 이때 서로 나누는 말들을 덕담(德談)이라고 하며 어린이들에게는 세뱃돈을 주는 풍속이 전해온다.

어릴 적 설날 풍경을 떠올려본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장을 여러 번 다녀오셨다. 그리고 전날이면 집집마다 설날 음식을 준비하느라 굴뚝에서 종일 연기가 피어오르고, 온 동네에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솔솔 풍겼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고 필자는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음식을 오가며 집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채반 가득하게 만들어 놓은 각종 전과 튀김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특히 막 해놓은 뜨거운 명태전, 동그랑땡, 오징어 튀김은 아무리 먹어도 배부른 줄 모르게 맛있었다.

저녁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 만두를 잘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에 예쁘게 만들고 싶었으나 언제나 필자가 만든 만두는 못난이 만두 그 자체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나무라지 않으시고 우리 형제들이 만든 못난이 만두를 한쪽에 넣고 쪄서 ‘이건 네가 만들었으니 네가 먹어야 한다’하며 웃으셨다.

다른 명절보다 유독 설날이 기다려졌던 이유는 세뱃돈 때문이었다. 많은 돈은 아니었으나 천 원, 이천 원, 세뱃돈을 받았고 간혹 부잣집 친척이 오시면 귀하디귀한 만 원짜리 빳빳한 세뱃돈을 받기도 했다. 우리 형제들은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온 동네를 돌며 어른들께 세배를 드렸다. 그런데 천 원이라도 받으면 좋겠는데 덕담을 하시면서 음식만 한상 푸짐하게 차려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안 그래도 가는 곳마다 맛있는 음식만 차려주시니 배가 불러 먹지도 못하고 다음 집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온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서는 누가 가장 많은 세뱃돈을 받았는지 겨루기도 했었다.

그렇게 받은 세뱃돈은 일부를 제외하고 어머니에게 강제로 압수(?) 당했다. 어머니는 모았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주신다고 우리 형제의 세뱃돈을 가져가셨지만, 그 돈을 돌려받은 기억은 없다. 물론 그 큰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돈을 쓰는 방법조차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아마도 쓸데없는 걸 덜컥 사느라 며칠 지나지 않아 소진해 버렸을 것이다. 결국 그 세뱃돈은 신학기 우리들의 학용품과 가방, 신발 등을 사는 데 보태졌을 것이고, 어머니는 한꺼번에 목돈이 들어가는 신학기를 잘 이겨내셨을 것이니 생각해보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가난했지만 소박했던 그 풍경이 바로 엊그제 일만 같은데 이제는 세뱃돈을 주는 쪽으로 처지가 바뀐 지 오래다. 그래도 그 어릴 적 세뱃돈 받던 기억이 좋았다는 생각에 설날 며칠 전부터 은행에 들러 세뱃돈을 신권으로 준비해 두고, 아들과 조카들의 세배를 받고 나면 넉넉하게 세뱃돈을 쥐여주었다. 물론 코로나19로 작년부터 친척들이 함께 모인 것도 옛이야기가 되었고 올해도 신권을 미리 바꾸어두기는 했으나 쓸 일이 없을 듯해 씁쓸하기 그지없다.

아무튼, 이번 설에도 만두를 넣은 떡국을 한 그릇 먹을 것이고 그와 관계없이 또 한 살 나이를 보탤 것이다. 어릴 때는 떡국을 많이 먹으면 한꺼번에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에 몇 그릇씩 비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새해가 밝은지 이미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진정한 새해를 맞는 것은 구정이 지나야 하는 걸 보면 우리네 풍속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가 보다. 올해는 5인 가족이 모이는 것도 금지되어 명절이라도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마음껏 볼 수조차 없다. 그러나 나라의 정책을 잘 따라서 부디 내년 설에는, 아니 올가을 추석에라도 일가친척들의 얼굴을 마음껏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신정 때 세웠던 한 해의 다짐들, 이미 작심삼일이 된 결심들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기고 한해를 잘 살아가야겠다. 어머니가 사주셨던 고운 설빔이 너무 좋아 끌어안고 잠을 잤던 그 풍경이 오늘따라 너무 그립다. 가난하지만 소박했던 그 풍경이 불과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자가용으로 고향을 찾고 어떤 가족들은 콘도나 펜션을 빌려 타지에서 명절을 쇤다고 한다. 편리하고 가족 간의 불화도 줄일 수 있어 그 수가 점차 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애들 사이에는 명절을 쇠고 나면 한동안 세뱃돈 얘기가 무용담처럼 퍼진다. 급속한 삶의 변화가 가져다준 세태의 일면이다.

설은 음력으로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을 의미하는 말인데 몸을 사리고 삼간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한 해의 시작을 조심스럽게 추스르며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소설가 전정희 / 저서 '묵호댁', '하얀 민들레', '두메꽃' 등
소설가 전정희 / 저서 '묵호댁', '하얀 민들레', '두메꽃'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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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2021-02-12 18:30:42
좋은 정보 감사함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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