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남 기자]풍자소설로 민족자주성 등을 고취시키고 확산시킨 해학문학가 남정현 선생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1933년 12월 13일 충남 당진에서 출생, 올해 만 87세인 고인은 폐렴 등 증상으로 약 15일 동안 도봉구 한일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평소 지병이 악화되어 21일(월) 오전 10시 경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의 빈소는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예식장 6호실에 마련되었으며. 장례는 손해일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장, 이광복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김호운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이상국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이 되어 문인장으로 치룰 예정이다. 

이들 4개 문인단체에 따르면 22일(화) 오후 6시 빈소 부속 객실에서 추모식 겸 영결식을 개최한다.

대전 사범고등학교를 졸업한 고인은. 학교장 추천으로 서울대 사범대에 입학을 허가받았으나 강의를 듣고 실망하여 학업을 포기했다. 그리고 이후 1958년 자유문학에 〈경고구역 警告區域>과 1959년 '굴뚝 밑의 유산'이 잇달아 게재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그 뒤 〈모의시체 模擬屍體〉(자유문학, 1959. 7), 〈누락인종 漏落人種〉(자유문학, 1960. 3), 〈너는 뭐냐〉(자유문학, 1961. 3), 〈혁명이후〉(한양, 1963. 10), 〈분지 糞地〉(현대문학, 1965. 3), 〈허허(許虛) 선생〉(문학사상, 1973. 2) 등을 발표하면서 풍자소설의 문을 열었다. 

이후 고인은 현실의 부조리와 병폐를 풍자적으로 다루는 작품세계를 인정받아 196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나 대표작 <분지>는 고인에게 또 고초를 안기기도 했다.

강대한 외세에 의해 식민지적 삶을 살고 있는 민족의 현실을 풍자한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문단 내에서 잠시 정치현실과 사회적 모순 등을 과장법, 반어법, 우의와 은유, 환상기법 등을 활용하여 서사로 고발하는 독특한 문체와 현실풍자가 화제가 되었을 뿐 이로 인해 옥고를 겪게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해 이 작품이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조국통일〉 5월 8일자에 실려 중앙정보부에서 수사하기 시작하면서 크게 문제가 되었다.

결국 고인은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긴급 체포되어 며칠 후 검찰로 송치되었다가 보름 만에 법원의 구속적부심사에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1년 후인 1966년 7월 23일 서울 지방검찰청 김태현 부장검사에 의해 반공법 위반혐의로 정식 기소되면서 고인은 재판정에 섰다.

이에 한승헌·이항녕·김두현 변호사 등이 무료변론에 나섰고, 특히 안수길의 특별변호와 함께 이어령 등 동료문인들이 피고를 위한 증인으로 나와 변호함으로써 관심을 받았다.

이후 재판에서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은 기소내용과 작품이 갖고 있는 문학적 가치를 중심으로 공방을 벌였으나 검찰은 고인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그리고 1심 재판부는 유죄로 인정했으나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었으나, 집행유예도 더불어 선고, 옥에 갇히지는 않았다. 

문학계로 보면 이 사건은 1965년 한일협정이 이루어진 때의 문학적 의미와 함께 1960년대 문단의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이었다. 특히 고인은 이후 한국문화인쇄㈜ 편집주간으로 재직하던 중 학생들을 상대로 정권퇴진운동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1974년 4월 10일 다시 남산 중앙정보부에 강제로 끌려갔고, 직장에서도 해직되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고인을 민청학련 사건 및 문인간첩단 사건 등에 연루시키고자 지하취조실에서 모진 고문을 가했고, 이로 인해 구속되어 서대문 구치소에 약 5개월 정도 구금되었지만, 그해 8월 23일 긴급조치 4호가 해제됨에 따라 구속취소로 석방되었다.

이 때문에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는 2001년 3월 20일 제15차 회의에서 당시 불법구속 및 해직 등에 근거, 고인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아직까지도 당시 불법구속과 고문 및 해직 등에 정당한 보상과 배상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이후에도 고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한국작가회의 전신) 주요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미국 대통령 방한 반대, 이라크 파병 반대 등 여러 사회 현안에도 목소리를 내왔다. 

집필활동도 지속, 1973년부터 1992년까지 20년간 집필해온 ‘허허선생’ 8부작을 완성하여 1993년 연작소설 <허허선생 옷 벗을라>를 출간했다. 이 연작은 일제 순사 출신으로 해방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며 반민족 행위를 일삼는 주인공 ‘허허’를 통해 시대 현실을 고발한 풍자소설이다.

이처럼 고인은 풍자와 반어의 기법으로 정치 현실과 사회 모순을 고발하는 소설을 다수 발표했다. 한마디로 민족자주성을 일관하게 추구해 온 작가로서 ‘분단의 최전선에 선 초병’, ‘문학적 비전향 장기수’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이에 민족문화작가회의 고문을 지냈고, 2002년 민족문화작가회의가 수여하는 제12회 민족예술상을 수상했다.

2011년 마지막으로 발표한 단편 소설 <편지 한 통-미 제국주의 전상서>는 국가보안법이 화자가 등장하여 상전인 ‘미 제국주의’에 쓰는 편지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2017년 도서출판 ‘말’에서 동명의 소설집으로 출간했다. 2018년 첫번째 산문집인 <엄마, 아 우리 엄마>도 출간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건강 문제로 칩거해 왔다. 

고인은 평소 “글을 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을 사랑하기 위한 작업"이라며 "작가란 그 누구보다도 인간에게 고통을 가하는 갖가지 형태의 기반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되기를 염원하는 자들”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살았다. 또, 이를 위해 국가보안법 철폐와 민족화해 등을 이루고자 한평생 노력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남돈희(60,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 장학부장), 딸 남진희(51, 주부), 며느리 나명주(53세, 참교육학부모회 전국회장), 사위 우승훈(54세, 마취과 의사) 등이 있다.

소설집으로는 <너는 뭐냐>(1965)·<굴뚝 밑의 유산>(1967)·<서울을 사는 고독과 희열>(1969)·<준이와의 3개월>(1977)과 장편<사랑하는 소리>(1978)·<분지>(198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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