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칼럼]기자가 정치투쟁의 인질로 잡힌 세상
[박한명 칼럼]기자가 정치투쟁의 인질로 잡힌 세상
  • 박한명
    박한명
  • 승인 2020.08.0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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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재 전 채널A 기자 구속기소, 백모 기자 불구속 기소는 엉터리

[박한명 파이낸스투데인 논설주간]검찰이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를 구속 기소하고 백모 후배 기자를 불구속 기소했다.

시작부터 검언유착이라는 프레임을 뒤집어쓰고 진행됐던 이 사건은 정권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 한동훈 검사장과의 공모 증거가 파도 파도 나오지 않자 강요미수 의혹이란 다른 이름의 사건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성윤 중앙지검장이 공소장에 이 기자와 공모관계로 한동훈을 끝까지 우격다짐으로 집어넣으려 고집을 부렸지만 실무 수사팀원들조차 반대하는 바람에 한동훈은 빠졌다고 한다. 다만 언론에 별로 거론되지도 않던 채널A 현직 기자인 백 기자가 기소대상에 추가됐다. ‘상당한 혐의가 있다’며 언론플레이만 줄기차게 해댔던 중앙지검으로선 모양 빠지고 김빠진 결과일 것이다. 한동훈의 휴대폰을 빼앗으려 몸을 날렸다가 ‘뎅진웅’ 별칭만 새로 붙은 정진웅 부장검사의 몸개그가 불러온 후폭풍이 김빠진 공소장을 만드는데 막판 양념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이번 공소장에 한동훈 이름 석자 넣는데 실패한 중앙지검은 앞으로 계속 추가 수사하겠다고 했지만, 그 망신까지 당하면서 뒤지고 수차례 휴대폰 포렌식을 해도 나오지 않는 증거가 새로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각설하고, 필자가 이글에서 얘기하고 싶은 건 이동재 기자와 백모 기자에게 씌운 강요미수 혐의가 과연 구속시키고 기소할 거리가 되느냐의 문제다.

이 기자 등이 받는 강요미수 혐의는 신라젠 대주주 이철 전 VIK 대표에게 다섯 차례 편지를 보내 가족에 대한 수사 가능성이 있으니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리 혐의를 제보하라고 협박했다가 실패했다는 내용이다.

기자가 시중에 비리 혐의가 떠도는, 혹은 연루 의심이 되는 권력자 취재에 나선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기자가 이철에 편지를 보낸 것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하는데 터무니없는 얘기다. 기자가 취재대상에 접촉하려 편지를 보내는 게 왜 잘못인가. 불법도 전혀 아니다. 

한동훈을 낚기 위한 인질로 잡혀 있는 기자들

다만 편지 내용이 이철을 협박하는 내용이고 이철이 그 편지에 두려움을 느꼈다는 점이 핵심으로 그게 과연 강요미수에 해당되느냐가 쟁점이다.

필자가 강요미수 혐의가 터무니없다고 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이 기자가 어떤 표현 방식으로 썼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공신력 있는 매체에서 일하는 기자가 상식 이하의 협박을 대놓고 했다고 믿기 어려운 점이다. 실제 언론 보도에 나온 이 기자 편지에서 심각한 협박으로 느낄만한 표현은 없다. 가족에 대한 수사 가능성을 언급하고 비리 혐의가 의심되는 권력 실세 취재에 협조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편지내용도 못할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다.

기자가 취재하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기사로 공론화가 되기 전 취재 과정에서 명백한 불법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전제로 기자가 한 말과 행동을 가지고 법의 영역으로 가져가 일일이 재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렇게 하기 시작한다면 어떤 기자가 취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나. 궁극적으로 언론자유를 심각히 해치는 짓이다. 

강요미수죄가 성립되려면 단순히 협박조의 말을 한 것으로는 범죄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건 필자가 이전 칼럼에서 지적했다. (7월 16일 ‘태산명동 서일필’로 끝날 검언유착 의혹)

이 기자가 이철 측에 “(협조)안 하면 그냥 죽는다. 지금보다 더 죽는다” “검찰 수사에 협조할 경우 이 전 대표 가족에 대한 수사를 막을 수 있다” 이런 정도의 말을 했다고 해서 곧장 범죄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 기자 혐의란 게 강요죄도 아닌 강요미수 아닌가. 적나라한 표현을 쓰자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코미디 같은 경우라는 얘기다.

아무리 멍청한 검찰이라도 이 정도 혐의로 기자를 구속하고 기소하는 건 무리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채널A 전현직 기자들을 이렇게 옭아맨 것은 언제라도 한동훈을 엮어 넣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기자와 백 기자는 검찰을 틀어쥐고 있는 여권이 한동훈과 윤석열을 쳐내기 위한 정치적 싸움을 위해 인질로 잡고 있다는 얘기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렇게 기자와 언론이 정치의 인질이 됐는데도 자칭 언론민주화 투사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들이 다시는 언론민주화와 언론독립을 입에 올리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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