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서적] 이성민의 장편소설 ‘착호갑사 이필신'
[신간서적] 이성민의 장편소설 ‘착호갑사 이필신'
  • 신성대 기자
    신성대 기자
  • 승인 2020.04.14 0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착오갑사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별도로 설치한 직종이다

 

착호갑사 이필신 ㅣ 이성민 지음 ㅣ 나무와열매
착호갑사 이필신 ㅣ 이성민 지음 ㅣ 나무와열매

 

[신성대기자] 선사시대 생활 풍습이 담겨 있는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함정에 빠진 호랑이, 새끼를 밴 호랑이 등 총 14마리의 호랑이가 등장한다. 호랑이는 단군신화에도, 전래동화에도 등장한다. 그뿐인가. 한반도 땅 모양을 호랑이에 빗대는가 하면 1988년에는 올림픽 마스코트로도 ‘호돌이’를 사용했다. 한반도는 예부터 ‘호랑이의 나라’였다. 그런 호랑이는 지금 멸종되어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그 안타까운 호랑이 이야기가 주인공 이필신을 통해 되살려 보는 소설이 나와 화제다.  

방송인이자 작가인 이성민이 최근 펴낸 소설 ‘착호갑사 이필신(나무와열매)’은 호랑이를 주제로 한 이색적인 작품이다. 조선 시대에 호환(虎患)을 막기 위한 직책인 착호갑사(捉虎甲士)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되, 한국호랑이 멸절 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 있다.

착오갑사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별도로 설치한 직종이다. 호랑이로 인한 인명 피해는 조선 건국초에 1년 동안 경상도에서만 수백 명에 이를 정도로 컸다. 따라서 호환(虎患)에 대비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는 일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이 일만을 위한 전문적 군대인 착호갑사는 조선시대인 1421년(세종 3)에 당번(當番)·하번(下番) 각 20명씩으로 처음 제도화되었다. 그후 갑사의 정원이 증가함에 따라 착호갑사도 증액되어 〈경국대전〉 병전에 의하면 갑사 1,800명 중 착호갑사가 440명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5교대로 88명이 6개월씩 복무하면서 체아록을 받았다. 착호갑사의 입속요건은 〈경국대전〉에 의하면 "목전(木箭:무예시험용으로 화살촉을 나무로 만든 화살)을 180보에서 1개 이상 맞추는 것, 기사(騎射:말타고 쏘는 것)는 2번 이상, 기창(騎槍:말타고 창던지기)은 1번 이상, 주(走:일정 시간 멀리 달리는 능력시험에서 250보 이상 가는 것)·힘(양손에 각각 50근씩 들고 100보 이상 가는 시험) 가운데 1가지에 합격한 자를 취했다. 한편 선전창(先箭槍)·차전창(次箭槍:첫번째와 2번째의 창과 화살로 맞추는 것)으로 호(虎) 2구를 잡는 자는 취재시험을 면제하고 배속을 허락한다"고 되어 있다.

이 소설은 임진왜란 직전, 선조 어명을 받들어 전주 사고를 점검하던 이주찬은 충남 금산에서 전북 무주로 넘어가는 성치산 고개에서 호랑이를 만난다. 호랑이에 대한 어설픈 공격으로 인해 일행 5면 중 2명은 현장에서 급사를 했고, 이주찬은 어깨를 호랑이에게 물리는 심한 상처를 입고 3개월의 투병 끝에 결국 타계한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과거를 포기한 이필신은 녹봉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무반 관료 갑사를 자원한다. 착호갑사가 된 이필신은 백호 추적에 나선다.

호랑이는 우리 상고사의 고조선 건국신화에서부터 등장한다.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범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하고, 산신령(山神靈), 산군(山君), 노야(老爺), 대부(大父)로 높이기도 했다.

이주찬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많았다. 먹이사슬이 튼튼한 산악지대가 국토의 7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호랑이 멸종은 일본이 자행했다. 임진왜란(1592~1597), 일제 강점기(1910~1935)에 일본은 의도적으로 한국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일본은 한국 호랑이가 조선 정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 멸절에 나선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이 소설은 이렇게 적고 있다.

부친이 입은 호난(虎難)으로 충격을 받은 이필신 할아버지는 과거 준비를 포기하고, 3년 상을 마친 후에 곧바로 충보갑사취재(充補甲士取才: 新甲士取才)를 거쳐 무반 관료 갑사(甲士)가 되셨다. 조선 전기 취재(取才)로 뽑혀 오위(五衛)의 중위(中衛: 義興衛)에 속했던 갑사는, 이필신 할아버지 시절에는 정원조차 채우지 못해 거의 유명무실한 단계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사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호랑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호환(虎患)을 방지하기 위한 착호갑사(捉虎甲士)를 설치했다. P. 56

‘맑았다가 오후 늦게부터 비가 내렸다. 평안도 안주에서 임금의 호위무사들을 만났다. 명나라 총병관 장홍유가 병사 100명을 이끌고 진도 벽파정에 이르렀다고 했다. 호위무사들은 명나라가 가세하면, 곧 전세가 역전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소문 하나를 더 전해주었다. 왜적 장수 중 가등(加藤)이라는 자가 조선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는 소문이었다. 조선의 정기를 꺾기 위해서, 산악 수호신 호랑이를 포획한다는 말이었다. 전쟁에 나선 왜적들을 이끌고, 벌써 몇 마리나 사냥을 했다는 것이었다. 호랑이를 죽여서 조선 정기를 끊겠다는 말은 놀라웠다. -갑오(甲午, 1593년) 6월 20일’ P. 148

35년의 일제 강점 이후, 수천 마리의 야생동물이 희생당했고, 한국 호랑이를 비롯한 몇몇 종은 절멸 단계에 이르렀다. 그 이전엔 한반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야생동물들이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이다. 일제 강점이 가져온 비극이다.

백수의 제왕 한국 호랑이는 호돌이와 수호랑으로 그려질 만큼 한국인이 사랑하는 동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한반도 자연환경에 서식하는 순수 한국 호랑이 개체를 볼 수 없다. 이 책은 이러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글에 녹여 많은 사료를 토대로 쓴 소설이다. 착호갑사 이필신은 호랑이를 소재로 한 새롭고 흥미로운 이색적인 소설이다.

저자 이성민은 1988년 장편소설 ‘다시 찾은 나’(도서출판 오늘)를 출간한 이후 신문과 잡지에 작품을 발표했다. KBS 공채 21기로 입사해서, 1TV 6시 내 고향과 정오뉴스 등을 진행했다. 현재 25년차 방송인으로 시사와 교양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가 동기부여와 자기계발, 미래전략전문가이다. 고려대학교에서 『윌리엄 포크너의 미국주의 연구』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겐로쿠아코 사건의 문화사적 전개 연구』로 일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려대학교, 성균관대학교, 경희대학교 등에서 자기계발을,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체와 교육기관 등에서 미래전략을, 단체장, CEO, 고위 공무원을 대상으로 설득력을 코칭하고 있다. 2014년 사단법인 한국강사협회에서 대한민국 명강사로 선정되었고, 2015년 대한민국 성공대상의 저술·강연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종합 경제 주간지 『이코노믹 리뷰』에서 「이성민의 미래전망」을 연재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대통령의 설득법』,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7가지 설득력』, 『100세 시대 다시 청춘』, 『도널드 트럼프의 빅뱅』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