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윤해 "산조 탄생은 남도 땅에서 탄생...올곧은 산조 이어나갈 것"
[인터뷰]정윤해 "산조 탄생은 남도 땅에서 탄생...올곧은 산조 이어나갈 것"
  • 정성남 기자
    정성남 기자
  • 승인 2020.04.0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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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남 기자]가야금은 우리나라 고유의 현악기다. 오동나무로 만든 좁고 긴 직사각형의 공명통 위에 명주실로 꼰 12개의 줄을 걸고, 각 줄마다 기러기발을 받쳐 놓았다.

가야금은 우리 민족성을 잘 나타내는 악기로서, 국악기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다. 가야의 우륵이 만들었다고도 하나, 삼한 시대부터 있던 민족 고유의 현악기가 가야 가실왕 때 중국의 현악기 쟁의 영향을 받아 더욱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진흥왕 이후 가야금은 신라에 널리 퍼져 곡 수가 185곡에 이르렀다고 한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대표적인 향악기로 궁정과 민간에서 크게 사랑받았다. 19세기 말 김창조가 가야금 산조를 만들면서, 전통적인 가야금보다 빠르고 다양한 기교를 낼 수 있는 산조 가야금이 만들어져 널리 보급되었다.

이같은 가야금은 '최옥삼류' 가야금산조,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로 나뉘어 있는데 정윤해 전남대학교 겸임교수는 "최옥삼류는 농현은 무겁고 절제됨을 요하며, 전체적으로 힘이 있고 남성적이라 할 수 있다.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는 전무 후무할  정도로 웅심하고 줄속에 알이 가득찰 정도록의 농현기법은 어느류의 산조보다 독특하다. 끊임없이 엇붙인 가락과 자유자제로 장단을 이끌어가는 농현과 가락의 흐름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할 정도로 매끄럽고 선율이 분명하며 변화무쌍하게 전게된다. 또, 가락의 흐름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할 정도로 선율이 분명하다.

특히 강태홍류 산조의 연주기법은 수만독의 숙련된 우조 가락에서 산조를 느낄 수 있게끔 깊은 농현 기법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전남도립국악단 상임단원인 정윤회가 속해있는 전남도립국악단은 남도의 전통 가·무·악(歌·舞·樂)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1986년 8월 9일 창단되었다. 어린이국악단을 포함하여 창악·무용·기악·사물 등 140여명의 단원들이 우리 음악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으며, 특히 전남도립국악단은 예능보유자, 전수조교, 이수자 등을 다수 보유한 국내 최고의 기량을 갖춘 국악단으로 손꼽힌다.

또한 국내 주요 도시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 순회공연 등 2,900여회 이상의 공연을 통해 우리나라의 훌륭한 전통 예술을 널리 알리는 문화사절단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현재 가야금 연주자와 전남대학교 겸임교수로써 왕성한 활동과 함께 우리나라 국악발전에 매진하고 있는 가야금의 명인인 정윤해 씨를 만나보았다.

정 교수는 먼저 전남도립국악단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5시에 선보이는 ‘토요공연’은 지역민은 물론, 우리 지역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2012년 <판페라 이순신>, 2013년 <가족창극 홍길동>, 2015년 신판창극 <놀보가 기가막혀>, 2016년 시대창극 <흐엉의 희망일기>, 창극 <나비야 청산도 가자>, 2017년 시대창극 <당신의 의미>, 2018년 창극 <목민심서 – 백성이 근본이다> 등을 기획·공연하여 전라남도 전통공연예술의 대표 브랜드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단체라고 소개했다. 

정 교수는 (사)최옥삼류가야금산조보존회 이사, (사)한국가야금연주가협회 회원, (사)변욱지휘자협회 회원, 광주예술고등학교 강사와 전남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정 교수는 가야금 인생은 화려했다. 그는 여수 중앙여자고등하교와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Italy Trillo korea music school 지휘과를 졸업했다.

그는 많은 가야금 정기연주회에서 독주를 비롯하여 국내외 공연에 참여했으며 (사)한국국악협회가 주최한 논문 발표에서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 다스름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는 등 학문과 실기를 겸비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 교수는 제27회 전국국악경연대회(신라문화제) 대통령상 수상을 비롯하여 각종의 대회에 수상 한 경력이 있으며 연주자로서 또한 지휘자로서의 활동은 물론 전주예술고등학교 강사와 전남대학교 겸임교수로서 후학양성과 전국의 국악경연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 교수와의 어려운 만남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가야금을 처음하게된 이유와 언제 하였는지요
정윤해 교수는 집안에 여러 가지 악기를 구비해 놓을 정도로 무척 음악을 즐기시고 국악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권유로 10살 되던 때부터 가야금, 판소리, 가야금병창, 무용 등을 사사 받았다고 말한다.

▲현악기 중 가야금만의 장점과 특이점이 있는지요 있다면 어떤 것들인지요.
가야금은 가장 먼저 산조음악으로 개발된 악기로 다양한 주법이 연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빗소리, 새소리, 말발굽소리 등 다양한 사물을 표현할 수 있고 한정된 줄을 이용하여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 때 더 없이 매력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 가야금을 하면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이며 왜 그런가요
정 교수는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연주기교를 정확히 표현하다보면 어깨나 손목 그리고 손가락 관절까지 무리가 많이 가서 신체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연주하고자 하는 곡이 제대로 연주되었을 때 느끼는 희열감으로 상쇄하고는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 가족관계와 가족들 중 가야금을 하시는 분은 있는지요
아버지께서 국악애호가로 타악을 하셨고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는 남편, 그리고 첫째 아들은 토목공학을 전공하여 직장생활 중이고 둘째 아들은 중앙대학에서 전통음악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 가야금 이외의 취미생활이나 여가생활이 있는지요 
특별한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은 없는데 매주 지휘아카데미에서 지휘수업을 받고 있으며 여가로 양금이나 철현금 등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 가야금이란 어떤 것인지요? 특히 다른 국악기와 비교를 한다면
피아노처럼 음이 끊어지는 악기이지만 다른 도구를 쓰지 않아도 여운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합주에서 때로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주선율 악기를 빛내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 가야금을 떠난 일반생활은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요.
지인들과 만나 음악이야기도 자주 나누고 주부로써 가사일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열리는 경연대회에 심사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정 교수의 이같은 모습에서 프로의 모습보다는 일반 주부로서의 모습이 더 강하게 비춰졌다.

▲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든 것이 멈춰있다, 개인과 전남도립의 현재 실정에 맞는 코로나19대처는 어떻게 하시고 계시는지
걱정은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전국 각 시도에 비해 이곳 광주지역은 아직 코로나19에 대한 감염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회적거리두리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물론 언제 어느곳에서 닥칠 감염의 위험성 때문에 전남도립국악단 단원은 물론 모든 관계기관 및 저 개인도 재택근무와 순환근무를 하고 있으며 지역민들에게 온라인을 통한 공연을 제공하고 있는 중입니다, 

▲ 침체된 국악을 발전하기 위해서 본인의 고견은
정 교수는 이에 대해 “영유아부터 국악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국악과 관련된 미디어, 방송 등 관련시장을 확대하여 단순한 음악이 아닌 생활 속의 문화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는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윤해 교수와의 만남속에는 외길인생을 엿볼 수가 있었다.

10세에 시작한 가야금인생이 지금은 후학을 양성하는 등 한국 국악발전을 위한 한 자리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다, 

정윤해 교수가 인터뷰의 끝자락에 밝힌 “가야금과 평생을 함께 하면서 체득한 남도의 산조어법을 지키기 위해 주법과 성음표현에 관해 체계적으로 정리 중이라면서 산조를 탄생시킨 남도의 땅에서 왜곡되지 않고 올곧은 산조를 이어나가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할 것”이라는 진솔된 말의 여운을 떠올리며 우리 모두가 동참하여 한국전통문화예술의 보존과 전수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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