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과 입술 사이의 거리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밥그릇과 입술 사이의 거리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 등산박물관
    등산박물관
  • 승인 2019.09.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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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과 입술 사이의 거리를 놓고 한국인들 사이에 벌어진 천년의 투쟁사라는 관점으로 심심파적삼아 한번 볼까 합니다.

밥그릇을 입에 대고 먹으면 그 사이는 '0'이 될터고, 떼어놓고 먹는다면 최대치는 팔길이가 되겠다. 한국인들은 지난 세월동안 이 둘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리갔다리 해 온게 확실하다.

이런 황당한 의문이 든 건 바로 이 사진때문이다. (더 읽으시려면) 일제때 보성전문학교 그러니까 지금의 고려대생들이 사각 도시락과 국물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입에 바짝 대고 먹고 있다. 젓가락을 썼을테니 도시락에 물에 말아 먹어서는 아닐 것이다. 뭔가 자세가 불편하고 낯설다.

나도 한때 도시락을 먹어본 놈 아니오.

지금 책을 도시락인양 들고 추억을 시뮬레이션을 해보아도 저렇게는 안된다. 희안하게 조국 걱정은 별로 안드는데, 이런 사소한 건 마음에서 떠나지않는다.

양정고 1973년 졸업앨범을 컬렉팅했다. 소풍에서 도시락을 먹는 사진이 3장이나 있고, 눈길이 간건 그래서이다. 일제 때 조선인 학생들하고 확연하게 구분이된다.

다들 포즈를 잡고 찍었는데, 역시 거리가 책과 눈사이 적정거리라고 하는 30cm는 넘는다. 밥그릇 따로, 입따로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이나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 서민들이나 모두 이렇게 입술과 밥그릇을 멀찌감치 내외하면서 먹었다.

책을 찾아보니 일본인들의 식습관 중에 관련 항목은 이렇다.

1) 밥을 먹을 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따라서 밥그릇을 들고 먹는다.
2) 기본적으로 숫가락을 이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그릇도 들고서 입을 대고 마신다.

우측은 조선에 온 프랑스 선교사들이 젓가락을 들고 한국식(또는 조선양반식)으로 먹는 모습이다.

좌측은 옛날 일본인이 밥그릇을 바짝 당겨서 먹는 모습이다. 고려대생들이 먹는 건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보여진다.

고려대생들이 이렇게 먹는 건 민족의식이 없어서이도 아니고, 친일파라서도 아니라고 본다. 다만 새로운 음식이 들어오고, 새로운 음식문화에 접해서일 것이다.

 

해방이되자 양반의식을 보자면 점잔치 못하게 밥그릇을 들고 먹는 문화가 사라졌을 것이다. 시골에 있을 때 밥그릇 들고 먹을 때, 꾸지람을 받기도 한 기억을 갖고 있는 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193,40년대 엘리트계층을 중심으로 조금 들락말락했을 왜색문화, 즉 밥그릇을 입에 바짝 댕겨서 먹던 문화가 있음(또는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또 그게 단순한게 아니다. 현재 사찰에서 하는 발우공양은 먹을 때 그릇으로 입을 가려 먹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스님들의 이 의식은 근대에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고 불교국가였던 고려때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조선시대 유교적 사회에 핍박받던 스님들이지만 불교의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까 500년 고려시대는 입에 붙이고, 500년 조선시대는 떨어지고 일제 때 살짝 고려식으로 붙이려 했다가 해방후 다시 조선식으로 되돌아갔다.

이게 밥그릇과 입술사이의 거리를 놓고 벌어진 1000년 투쟁사라는 제목으로 이제까지 한국에 없었던 '낭설^^"이었습니다.

덧붙여)물론 술과 입술사이는 언제나 0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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