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는 뜨거워야 한다. 에스프레소는 쓴맛을 제대로 품어야 한다.
에스프레소는 뜨거워야 한다. 에스프레소는 쓴맛을 제대로 품어야 한다.
  • 송이든
  • 승인 2019.09.17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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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근처에 아주 작은 커피숍이 생겼는데 가볼래?"
회사 언니와 이른 저녁을 먹고 디저트를 마시기 위해 어느 커피숍을 갈까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언니 집 아파트 입구 쪽에 새로 생긴 커피숍이라고 했다.
요즘은 동네마다 유명 프랜차이즈점 말고 개인이 하는 커피숍이 제법 들어서 있다.
나는 잘하는 음식점은 추천을 잘 하는 편이지만 커피숍은 크게 추천하지 않는다. 커피에 대한 입맛들이 너무 달라 '여기가 좋아'라고 적극 추천하기가 좀 그렇다.
무난하게 이디야를 선택하는 편이다. 정말 무난하게.
내가 커피를 심하게 좋아하는 걸 내 주위 사람이라면 다 안다. 밥과 커피를 선택하라고 하면 난 고민 없이 커피를 선택하는 편이다.
그런 나도 마시지 않는 커피가 있다. 냉커피와 캔커피는 공짜로 준다고 해도 안 마신다.
난 커피는 뜨거워야 한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커피는 향으로 한 번, 맛으로 한 번 음미하는 편이다. 그러기 위해서 커피는 뜨거워야 한다.
나는 또 커피의 쓴맛을 좋아한다. 커피의 신맛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난 커피의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쓴맛에 모두 인상을 쓰지만 난 그 인상 쓰게 하는 그 쓴맛이 좋다. 에스프레소의 쓴맛이 목을 통과하면 스트레스가 그 쓴맛에 쓸려가는 듯한 개운함을 느낀다.
커피는 내게 피로회복제 같은 역할을 한다. 내가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이유다.
에스프레소는 양이 정말 적다.
커피숍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시켰는데 종이컵에 나오면 김이 샌다. 아메리카노도 아니고 그것도 아주 작은 종이컵도 아닌 아메리카노랑 똑같은 컵에 내주는 프랜차이즈점이 있다. 헐~
커피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런 곳이 커피 전문점이란 간판을 걸고 한다고, 어이 상실이다.
또 어떤 곳은 에스프레소가 아주 작은 잔에 담겨 나오지만 이미 식었다. 얼마 되지 않은 양이니 당연 식는 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
쓴맛은 나지만 뜨거울 때의 쓴맛과는 맛의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그러다 보니 김이 샌다. 그래서 커피숍에 가도 에스프레소를 시키기가 솔직히 탐탁치 않다. 제대로 된 맛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대형 프랜차이즈점도 에스프레소를 이렇게 다루는데 동네 작은 커피숍에 뭘 기대한다는 자체가 망상일 것이다.
언니가 추전하는 곳을 별 기대 없이 그냥 오케이 하고 따라 들어갔다. 외관상으로는 커피숍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프랜차이즈점에서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곳이라 좋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단팥죽이라고 적힌 손글씨를 발견했다. 커피숍에서 단팥죽을 판다고? 왠지 복불복같은 느낌이었다. 메뉴가 많은 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자신없는 주인장의 다른 선택같아서, 살기 위한 몸부림같아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커피 향이 모든 의심을 무장해제시켰다.
왠지 이런 따스함이면 에스프레소를 시켜볼까 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에스프레소 한 잔과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조금 기다리자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는 주인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문한 커피를 가지러 가자 아메리카노만 나오고 내 에스프레소만 보이지 않았다. 보통 다른 커피숍에서는 주문한 커피들이 한꺼번에 내준다. 항상 그래왔다. 주인장은 에스프레소는 조금 있다 직접 갖다 준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메리카노만 들고 와 언니 앞에 내려놓았다.
조금 있다 주인장이 가져온 에스프레소는 아주 작은 컵에 담겨 탁자 위에 놓였다. 그리고 물이 반잔 정도 담긴 물컵도 같이 나왔다. 나는 눈치챘다. 물컵의 의미를.
물로 입안을 헹구고 오로지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을 제대로 느끼라는 주인장의 배려라는걸.
그리고 다른 커피와 같이 나오면 이미 에스프레소는 식어버리기 때문에 에스프레소의 온도를 지키기 위해 내 커피만 따로 나온 것임을.
주인장은 커피잔이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당부와 함께 퇴장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커피잔을 코 가까이 갖다 댔다. 잔이 뜨거웠다. 그리고 커피도 뜨거웠다. 커피향이 코 안을 자극했다. 한 모금 먹어보고 정말 반했다.
커피잔을 뜨겁게 달궈 커피가 식을 것을 차단시켜주었다. 에스프레소의 맛을 제대로 살려주는 주인장의 센스에 반했다.
에스프레소를 뜨겁게 먹어본 기억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잔을 데우고 그 맛을 온전히 느끼게 물까지 갖다 주는 센스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건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자의 바램이고 주인장 역시 에스프레소를 사랑하는 자가 분명하다.
그저 주문한 음료를 한꺼번에 내놓으려는 다른 곳과는 다르게 에스프레소를 식지 않게 하려고 애쓴 노력이 그대로 전해졌다.
에스프레소의 뜨거운 쓴맛을 제대로 느껴보았다.
난 그곳에 매료되었다. 에스프레소의 맛과 배려와 센스를 잊을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맛과 향이 작은 배려에서 온다. 작은 센스에서 감동은 만들어진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이런 걸 배웠으면 한다. 맛이 거기서 거기더라도 잔을 데우고 안 데우고의 차이는 작지 않다. 뜨거운 것을 마시는 것과 식은 커피를 마시는 느낌은 다르다. 음식에 따라 커피에 따라 담기는 그릇이 달라짐으로써 음식의 맛도 질도 달라 보이는 이유는 정성이고 배려 때문이다. 된장 뚝배기가 뚝배기 그릇이 아닌 양은 냄비에 담겨있으면 어떨 것 같은가? 그 작은 에스프레소가 폭이 넓고 속 깊은 큰 종이컵에 따라 나오면 그걸 마시는 손님은 어떨 것 같은가? 돈 버는 데에만 급급하지 말고 작은 배려로 손님을 감동시켜줌이 어떠한가?
내 주위에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자가 있다면 내가 추천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하지만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괜찮은 곳은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들이 많으면 서비스면에서 떨어질까 걱정되고, 커피숍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장소이지 않았으면 하는 곳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빵집이 한 곳 있는데 유명세를 치르고 실망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너무 변했다. 양도 작아지고 가격도 올랐다. '처음처럼'이 어렵게 되었다. 너무 실망스럽다. 그래서일까? 자기만 아는 곳으로 숨겨두고 싶은 이유가 그러한 것인가? 뼈저리게 느꼈다. 난 이곳이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즐겨갈 수 있는 안락한 장소로 남아있기를 바라본다. 이 마음 또한 나의 이기심에서 나온 것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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