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일상에 대하여 서운했던 이야기
나의 생일상에 대하여 서운했던 이야기
  • 송이든
    송이든
  • 승인 2019.09.0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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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해보고자 합니다. 뭐 어른이 다 된 나이에 그러나 하겠지만 생일날에 대한 서운한 감정들에는 이미 곰팡이가 피어 있습니다.
서운함이 제법 서러움으로 작동된 날도 많았습니다.
뭐, 지금은 그저 운명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추석명절이 다가올텐데 제 생일은 추석 다음날이지요. 예전에는 추석명절때 일가친척들이나 이웃사촌들이 많이 오기에 음식을 제법 많이 장만했습니다.
맏며느리답게 일더미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친정 엄마는 추석명절 음식장만으로 하루 전부터 분주하시고, 추석 당일에는 손님 치루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뭐 다 그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추석 다음 날, 내 생일상을 차려주는 것까지 바랄 수는 없었습니다. 아침에 미역국을 못 먹는 날이 많았습니다.
명절 음식으로 냉장고는 꽉 채워져 있고, 부엌 솥단지에도 국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뭐 생일이 별건가 하는 마음을 가진 엄마의 사고도 한몫했습니다.
그런데도 서운했습니다. 그 음식들이 다 제사를 지낸 음식이 아니겠습니까?
죽은 사람을 위해 제를 지낸 음식이라는 생각 때문에 저는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추석 명절 다음 날은 피곤한 탓인지 틈만 나면 낮잠을 주무셨습니다. 고단함이 쌓여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내 생일인데 그냥 아무런 준비도 안 해주는 것이 서운했던 겁니다.
뽀로퉁하게 낮잠 주무시는 엄마 옆에서 대놓고 말하지도 못하고 소심하게 " 내 생일인데~" 하고 궁시렁 거리듯 속삭입니다.
그러면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냉장고에 먹을 것 가득 있는데 뭐가 문제냐. 챙겨 먹으라는 말 뿐이었다.
먹을 게 지천에 깔려 있는 내 생일이 축복이라고 말하시고 싶은 것입니다.
"저거는 제사 음식이잖아!"
"그럼 제사상에 안 올라간 음식만 골라먹어"
무심한 듯 돌아오는 말에 생채기가 나고 마음이 서럽게 흔들거립니다.
더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압니다. 음식이 풍성한 추석명절에 생일인 내가 복에 겨워 하는 소리로만 들리시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생일날 케이크에 촛불 켜주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가족들이 명절에 내 생일을 묻어버린 것 같아 서운했습니다.
미역국이라도 끓여 아침에 가족들이 내 존재감을 부각시켜 주었으면 했습니다. 남동생 생일처럼요.
난 태어난 날인데 죽은 사람을 위해 차린 음식을 아침 밥상으로 받게 되면 수저를 들고 싶지 않습니다. 별나다 하셨지만 제 마음이 그랬습니다. 가족들에게 대접받고 있지 못하다는 서운함이 사무치게 스며들었습니다.
그런데 운명이었을까요? 결혼하고 난 후 내 생일날이 시댁 할머니의 제삿날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제사음식을 먹는 것도 모잘라 이제는 생일날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신세가 될 줄이야.
이쯤되면 생일밥 먹을 팔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석날은 며느리로서 추석차례상 차리고, 그 다음 생일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큰집에 내려가서 제사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저주인지.
제사를 마치고 돌아올 무렵이면 생일도 지나버리고 새벽에나 집에 도착합니다. 참 서럽기 그지 없습니다. 남편마저 상황에 밀려 그냥 스쳐보내 버립니다. 어쩔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도 아무리 시댁 제사가 중요하지만 자신의 아내 생일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 남편에게 제가 제대로 속상해서 폭탄을 던졌습니다. 맘만 있으면 수단방법을 가리고 챙겨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그 다음 해인가 제사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안에서 촛불을 끄라고 하더군요. 생일축하송을 불러주면서 말입니다. 이미 생일은 지났고, 제사를 지내고 몸은 녹초이고, 시간은 자정을 넘어선 시간에, 솔직히 하나도 즐겁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기분을 맞추어 주었을뿐.
생일날 쉬지는 못할망정 제사음식을 하러 가는 신세가 짜증이 난겁니다.
왜 하필이면 생일날과 제사날이 같은 날이냐고 원망이 되더라구요. 엉뚱하게도 친정엄마에게 엄마가 내 생일날 제사음식을 먹으라고 해서 이렇게 됐다고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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