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담기
막걸리 담기
  • 억수로빠른 거북이
  • 승인 2019.08.1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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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담기

어릴 때 어머니는 명절이나 농번기가 다가오면 준비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술(막걸리)을 빚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묵은 쌀이나 벌레 먹은 쌀을 맑은 물이 나올 때 까지 깨끗이 씻어 준 다음 가마솥에 흰 천을 깔고 씻은 쌀을 올려 고두밥을 만듭니다. 쌀이 익으면 들어내어 한 김을 뺀 다음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이리저리 늘어서 잘 식혀줍니다. 옆에서 구경하다가 주워 먹는 고두밥이 구수하니 참 맛있습니다. 밥만으로도 계속 당기는 맛이라 간식거리 귀한 시골에서는 간만에 먹어 볼 수 있는 먹을거리 이었습니다. 고두밥이 어느 정도 식으면 빻아놓은 누룩과 함께 잘 섞어 줍니다. 다음 이렇게 섞은 것을 짚을 태워 소독한 옹기에다가 담고 적당량의 이스트를 넣어 준 다음 물을 부어 줍니다. 물의 양은 고두밥위로 손을 세워서 넣었을 때 손가락과 손바닥의 경계 정도(?)까지 오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너무 뜨겁지 않게 잘 보관하면 빠르면 이틀 정도 지나면 막걸리로 먹을 수 있습니다. 맑은 술을 원하면 술이 발효가 되어 끓어올랐다가 다시 가라앉게 되는데 까지는 한 오 일 정도 걸리는데 삭은 고두밥과 누룩이 밑으로 가라앉고 위에는 밥 알갱이들이 살짝 뜨는 동동주 형태의 술이 됩니다. 술이 익으면 어머니께서는 맛을 보라시며 막걸리 잔에다가 조금 떠서 주셨는데 어릴 때라 술 맛을 몰랐지만 부드럽게 넘어가는 뒷맛에 감칠 맛(이렇게 밖에는 설명할 말이 생각이 안 나네요)은은한 누룩향의 잔상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기억에 의존해서 쓰다보니 사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는 명절에 차례를 지내고 다 같이 식사를 할 때면 집집마다 담은 술을 비교하고 품평을 하기도 했습니다.(시골이다 보니 친척들끼리 다 모여서 순서대로 차례를 지내고 있습니다) 다 같은 재료에 다 같은 물인데도 술을 빚는 사람에 따라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술도 술을 빚는 주인 따라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 담으면 술도 빨리 발효되면서 빨리 익고 조금 느긋한 성격이면 술도 천천히 익는다고...그래서 술을 담으시는 날이면 장을 담그실 때만큼이나 조심하신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서 막걸리로 걸러내어서 마셨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맑은 술로만 마시게 됐는데 이거 상당히 독합니다. 달지 않고 부드러운 감칠맛에 은근히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 한 잔 두잔 홀짝이다 보면 어느 순간 취하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웬만한 소주 보다 더 독하지 않을 까 하는... 시중에 파는 막걸리처럼 마신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요즘은 예전처럼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고, 또 마실 사람들도 줄어들어 어머니께서도 그렇고 친척 아주머님들도 술을 사서 차례를 지내는 탓에 그 맛을 보기가 힘이 듭니다. 차례 지낼 술과 음복하면서 마실 술을 몇 병만 사서 사용하다 보니 명절을 준비하는 어머니나 친척 아주머님들의 노고와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이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예전에 마셨던 그 술맛을 생각하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전 생각이 나서 가끔은 시중에 파는 막걸리를 마셔보기도 했는데 집에서 직접 담은 술에 비해서 좀 가볍다는 생각과 함께 단맛이 많이 남아 쉽게 질리고 다음 날 숙취로 인해 잘 안마시게 됩니다.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살짝 누르스름하면서도 맑은 빛에다가 은근한 감칠 맛 뒤에 따라오는 은은한 누룩향의 잔상이...

그리워지는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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