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이 왠말이냐.
명품이 왠말이냐.
  • 송이든
  • 승인 2019.06.11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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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혼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을 위해 겨울방학한 아이들과 함께 서울로 이동했다.한 달 가량을 서울에서 겨울나기를 하는데 정말 매섭고 사나운 겨울바람에 까무러칠 것 같았다.
내가 사는 부산이 얼마나 따뜻한 곳이었는지 온 몸으로 체험한 시기였다.
한 번은 뉴스에서 날씨를 말하는 기상캐스터 뒤로 서울사람들이 얼굴을 목도리로 칭칭 붕대처럼 감고 있는 모습에 '저게 뭐야? 옷을 입은거야? 뒤집어 쓴거야? 목도리야? 붕대야?' 하고 조롱한 적이 있다.
패딩모자까지 뒤집어 쓰고 목도리로 얼굴 전면을 감아놓은 모습에서 서울 멋쟁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칼바람을 맞이하고 보니 그 모습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체감하고 나도 똑같이 겨울미이라가 되어갔다.
내가 겪은 겨울바람은 그냥 추워서 얼얼한 수준이 아니라 면도칼로 얼굴을 긋고 가는 듯한 통증이었다.
이게 그 칼바람인가보다 생각했다.
처음으로 귀까지 덮히는 빵모자를 사고 긴 목도리까지 장만했다.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던 우리는 서울 겨울바람의 위력 앞에 완전히 겁을 먹고 밖에 나가려 하지를 않았다. 추위에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부산에서는 목도리를 해 본 적이 없다. 좀 많이 추워도 목 폴라티 정도로 커버되는 날씨였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출장을 많이 다니는 남편은 서울에서 정착하기를 바랬다. 그런 남편에게 난 절대 서울에서 못사니까 우리보고 서울 와서 살자고 하지마라고 강하게 거부권을 행사했다. 서울의 겨울을 견디고 살 자신이 없었다.
그 겨울 남편은 추위에 맥을 못피는 나에게 정말 큰 맘 먹고 최고급 무스탕을 사 주느라 무리를 했다.
말렸어야 했는데, 추위에 정신이 혼미해진 것인지, 나도 이런 거 하나 있음 폼나지 않을까 하는 허영의 여신이 강림한 건지, 무스탕 하나 있으면 서울사람들은 거뜬하다는 점원의 말이 너무 달콤했는지 허락하고 말았다.
'그래 눈 딱 감자'하고 저질렀는데 글쎄, 이게 날 쥐박을 줄이야.
비 오는 날 우산 없으면 가방이라도 들고 막아야하는데 명품백 비 맞을까 옷 안에 품고 가는 여자들을 보고 욕했는데, 그런 내가 명품 옷을 품에 품더니 그걸 장식품처럼 모셔놓고 입고 다닐 수가 없는 것이다. 혹시 불순한 것들이 묻을까 염려되어 ᆢ 참 상전이 따로 없었다.
그 해 겨울을 서울에서 맞이하고 부산에 내려온 나는 부산에서 그 무스탕을 입고 친구들 앞에서 좀 자랑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거렸다.
그런데 날씨가 받쳐주지 않는 것이다.
이런 날씨에 무스탕을 입고 나가면 '와 좋은 옷이네~' 하기보다 '쟤~왜저래?' 하는 소리만 듣을 판이다. 서울 칼바람 앞에서만 먹히는 옷이었다.
여기는 내가 싼 긴 목도리도, 빵모자도 쓸 일이 없는 날씨였다. 눈 오고 바람 불고 강추위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ᆢ 참 한심했다.
여기는 겨울에 눈 한 번 오지 않는 곳으로 유명한 부산이 아니던가.
하물며 부산에서는 목도리장사도 겨울에 입에 풀칠하기 어려울 정도가 아닌가
여러 해동안 무스탕을 입을 만큼 매서운 겨울을 맞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나 비싼 무스탕 입었다.' 폼 한번 못 잡아보지 못하고 과거의 구닥다리 옷으로 전락했다.
해마다 옷장 정리할 때마다 부피만 차지하고 제 값도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이런 옷 요즘 누가 입겠는가?
미쳤지!
이 옷 한 벌 값이면 정장 몇 벌을 살 돈이건만
중고시장에 내놔도 똥값이라는 말에 정말 한숨이 절로 났다.
혼자만 조용히 집안에서 입어보고 송별식을 치른 후 재활용 수거함에 밀어넣었다.
서울의 칼바람이 마음을 슥슥 긋고 지나갔다.
그걸 재활용 수거함 구명에 밀어 넣는데 얼마나 마음이 쓰라리던지...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를 한 죗값치고는 가격이 후덜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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