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의 중심 줄기 같은 삶
토마토의 중심 줄기 같은 삶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3.2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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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면서도 충만한 텃밭 생활 (1)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먹을 작물들을 가족들과 직접 기르기 시작한 게 정확히 언제인 줄은 모르겠다. 작년 이전까지는 쉬엄쉬엄 재미 삼아 농사를 지었는데, 작년부터는 농사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고 밭을 드나들었다. 그리하여 작년에 나는 파종이나 육묘까지 직접 하며 부산하고 뜨거운 한 해를 보냈다.

   좋아하는 채소들이 많아지니, 자연히 그것들을 스스로 길러 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서 도피하기 위해 밭에 붙박여 있은 적도 많았지만, 그런 마음이 농사에 마음 붙인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설렁설렁 드나들며 땅에 정이 들기도 했고,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던 차였다.

   내가 처음으로 손수 구입한 모종은 토마토다. 토마토를 유독 좋아해서 토마토를 한 번 길러 보고 싶었다. 품에 안고 온 토마토를 밭에다가 심으며 “올해는 토마토 배 터지게 먹자, 우리!”라고 말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 말끝에서 번지던 웃음소리도.

   내가 너무 애지중지했기 때문인지, 밭에 심어 놓은 토마토 모종들을 농산물 도둑이 훔쳐가는 경우가 생기면서, 나는 농사에 감정적인 관여까지 하기 시작했다. ‘이건 이제 본격적으로 내 몫이다.’ 생각하고 농사를 지으니,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흙 반 줌도 귀했다.

   농사에 마음을 쓰게 되니, 자연이나 환경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생겼다. 나는 작년 초여름부터 농사 방식을 유기농업으로 완전히 바꾸었다.

   첫 토마토 열매가 맺히기까지 토마토 나무를 얼마나 바라보았는지 셀 수가 없다. 오늘은 토마토가 열렸을까, 오늘은 토마토가 열렸을까, 은근히 때로는 벅차게 기대하는 마음으로 밭까지 걸어가는 기분은 이전까지 느껴 본 적 없는 설렘으로 터질 듯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토마토 꽃이 떨어진 자리에 쌀알만 한 토마토 열매가 맺혔다. 그때부터 토마토 나무들은 엄청난 속도로 토마토 열매들을 맺기 시작했다.

   한 번 다 따서 먹으면 그대로 토마토 농사가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토마토 나무는 중심 줄기에서 새로운 줄기를 끝없이 뿜어내며 또 다른 토마토 열매들을 맺었다. 어디에서 오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힘으로 토마토 나무들은 한 계절 내내 나에게 토마토를 제공했다. 더운 바람이 가시고 가을의 이목구비가 보이기 시작할 즈음까지. 엄청난 생산성이었다. 나를 비롯한 몇 식구가 토마토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놀러 온 가족들 손에 토마토를 한 바구니씩 들려 보낼 수 있는 기쁨도 엄청났다. 우리는 스무 종류 가까이 되는 작물들을 길렀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운 농사는 토마토 농사였다. 나는 이듬해에도 토마토를 또 기르고 싶다고 생각하며, 가장 달콤했던 토마토 열매들의 배를 갈라 씨앗을 받았다.

   농번기가 끝나고 직무를 다 마친 토마토 나무가 점차 앙상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마음에 관해 생각했다. 한 순간의 허기만을 잠깐 채워 주는 마음이기보다는, 적어도 한 계절 이상은 상대의 마음을 푸짐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에 관해 생각했다.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와서 허기든 갈증이든 지루함이든 마음껏 채우라고, 항상 빨갛게 열려 있는 열매들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에 관해 생각했다. 토마토의 중심 줄기 같은 삶에 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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