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 마디의 위력 그리고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위력 그리고
  • 박다빈
  • 승인 2019.03.15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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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생기는 것에 관하여 (2)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은 아니 함 만 못하다."

"말 속에 뼈가 있다."

"지껄이는 혀가 아무리 깊어도 마음속까지 닿지 못한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 

"입이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

"벽에도 귀가 있다."

"한 번 거짓말쟁이가 되면, 아무리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한들, 아무도 그를 믿지 않는다."

"오늘 생각하고 내일 말하라."

   이 모든 것은 '말'에 관한 격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격언도 있고 외국에서 통용되는 격언도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는 말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자, 다양한 교육을 하고 끝없는 배움을 얻었습니다. 말에는 형체가 없지만,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은 유형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말은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발화자의 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니어도, 세상에 나온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으로 침투하여 그 마음을 여러 방향으로 흔듭니다. 그 마음 끝에 있는 기억의 세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킵니다. 그 세계의 대기를 바꿉니다.

   때때로 말은 그 무엇보다 큰 힘을 행사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삽시간에 허물기도 하고, 한 사람의 폐허를 정원으로 돌변시키기도 하는 것이 말입니다. 말이 소통의 전부는 아니지만, 말은 소통을 시작하게도 하고 잇게도 하고 끝내게도 합니다. 말이 관계의 전부는 아니지만, 말은 관계를 풍요롭게도 하고 빈곤하게도 합니다.

   말은 그릇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세상을 담을 수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 실제로 존재했던 것만을 담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도 담을 수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가짜 사실이 말로 변하면, 말은 무기가 됩니다. 둔기가 됩니다. 포크레인이나 굴삭기가 됩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만 굳이 들춰 내고 싶지 않은 사실들이 세상에는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은 그런 것들 또한 갈고리에 끼워 세상의 표면 위로 들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도 말은 사람을 상처 입히는 도구가 됩니다.   

   물체에 쓸리거나 부딪쳐서 나는 몸의 상처보다, 날카로운 말에 깔리거나 베여서 나는 마음의 상처가 훨씬 오래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말로 입은 내면의 상처가 몸까지 상하게 하는 경험을 한 적은요. 누군가의 한 마디가 나에 대한 그 사람 마음의 전부가 아님을 알면서도, 그 사람에게서 아픈 말을 듣고 나면, 그대로 그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나에 대한 그 사람 마음의 일부로 만든 말이 내 일상 전부를 할퀴어 버리니까. 부수어 버리니까. 나중에 그 사람에게서 사과를 받아도 조금 찜찜할 때가 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 진심이 아니었다는 말을 듣는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가 단숨에 낫는 건 아니니까요. 화해와 치유가 너무 따로라서 가끔은 당황스럽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뜻밖의 다정한 인사, 따뜻한 위로, 유쾌한 격려, 진솔한 공감을 받는 일은 우리의 하루를 얼마나 순식간에 밝히는지. 데우는지. 가볍게 해 주는지. 기쁘게 하는지. 

   눈물이 마른 자리에서 꽃이 피게 하고, 빙하의 산맥에 봄을 깃들게 하는 말들. 

   내 기억의 세계는 대화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진첩 같은 기억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동영상 앨범 같은 기억의 세계를 가지고 있죠.

   한때는 내가 말들을 '고스란히' 수집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누가 나에게 어떤 말을 했다면, 내가 그 말만 똑 떼어다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살아 보니 그게 아니데요. 나는 그 말에 내 감상을 엮어 마음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떤 말에 대한 내 느낌에 따라 그 말을 밀치거나 안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알아차렸습니다. 어떤 말이 나를 상처 입혔다고 생각하는 모든 순간, 나는 그 말이 나를 상처 입히는 걸 허락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나를 조금도 나타내지 않는 말이 나에 대한 말이라고 생각해 분노하는 일은, 나에게 상처 입히는 사람하고 공모하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나는 서서히 배웠습니다.

   나에게 온 말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말일 수 있음을 조금씩 알아 가면서, 내 귀는 차츰 가벼워졌습니다. 귀에 담는 것이 적어지자 마음도 차츰 가벼워졌습니다. 기억 세계의 치안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누군가에게 감동하는 일도 그와 같았습니다. 나에 대해 좋은 말을 해 주는 사람의 말을 내가 진심으로 동의할 때에만 내가 그 말에 감동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동의하지 않는 찬사가 어째서 비웃음이나 조롱이나 그냥 하는 말처럼 들리는지 조금 알 것도 같았습니다. 똑같은 말을 들어도 어느 날은 그 말이 칭찬 같고 어느 날은 그 말이 비난 같은 이유는 내 안에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 일은 그저 당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듣기로 선택하는 일이었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결국 내가 나에 대해 좋게 느낄 때, 나에게로 온 좋은 말이 내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나에 대해 좋게 느끼지 않으면, 나에게로 온 나쁜 말들만 내 안에 자리를 잡는다는 이치가 점점 명확해졌습니다. 나에 대한 나쁜 소리에만 내가 동의하기 때문에.  

   상대에게서 나온 어떤 말에 대한 느낌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결국은 내 안에서 올라오는 자기 소개에 대한 느낌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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