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한다는 것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3.1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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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오후 단상

   여기에 비행기 제작자 두 사람이 있다. 첫 번째 비행기 제작자는 최대한 멀리 나는 비행기를 제작하려고 한다. 조종사 1-2명만 태우고 최대한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비행기. 두 번째 비행기 제작자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는 비행기를 제작하고자 한다. 여객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재료와 시공 방식을 사용해 비행기를 만들 것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엔진 종류가 다를 수도 있고, 이들이 만드는 날개의 크기나 길이가 다를 수도 있다. 

   이 두 비행기 제작자는 서로에게 아무런 충고도 남기지 않는다. 자연히 비난도 하지 않는다. '상대와 나는 애초에 다른 목적으로 비행기를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저 사람은 저 엔진을 쓰지? 이걸 쓰는 게 더 좋을 텐데.', '왜 저 사람은 저 자재로 날개를 만들지? 이걸 쓰는 게 더 좋을 텐데.' 같은 관념이 그들에게는 없다. 자신의 충고가 상대의 목적 달성에 오히려 방해가 될 뿐임을 그들은 알고 있다. 본인 목적 달성에 관한 전문가는 언제나 그 사람 자신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그들은 숙지하고 있다. 

   실전 인생에서 상대의 선택에 대고 왈가왈부하지 않는 일은 대개 여러 차례의 연습과 시행착오를 요구한다. 상대의 선택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는 대개 그 선택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본다. 그러면서 '나에게 별로 안 좋은 선택은 상대에게도 안 좋을 거야.'라고 섣불리 판단해 버리게 된다. 거기서 잔소리가 시작된다. 무의미한.

   상대방과 나 사이의 다름을 존중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고려하는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를 보다 원활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단순히 '우리가 다르니까 이 다름을 인정해야지.'라고 마음먹는 것보다는 '내가 내 인생에서 이루려고 하는 것과 저 사람이 저 사람 인생에서 이루려고 하는 건 다르니까, 저 사람이 자기 목표를 위해 선택하는 모든 방식에는 그 나름의 일리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나를 편안하고 너그럽게 만든다. 괜한 친절을 베풀었다가 원망을 사는 일도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거절('아니, 이렇게 하면 훨씬 좋을 텐데, 왜 안 그러겠단 거야?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네!')을 당한 후에 혼자 속앓이 할 일도 없다. 

   작년에 나는 여러 작물 농사를 지었고, 그 중 몇 가지 작물은 수확하지 못했다. 아예 싹이 안 트거나, 작물이 금세 죽어 버려서. 특정 작물에 맞는 토양 조건을 내가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 밭 땅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작물이 있고, 그렇지 못한 작물이 있었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아무 땅에서나 모든 작물이 다 잘 자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거기에 대해 알고 나서, 나는 누군가에게 충고하는 일이 많은 순간 우스갯소리 같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그 사람 밭에서 키우고 있는 작물에 도움 하나도 안 되는 흙을 그 사람 밭에 막 퍼 주는 꼴 아니었을까, 하고.

   누군가가 기르고 있는 작물에 내 밭 흙이 전혀, 전혀, 도움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기 위해 나는 '작물마다 다른 토양 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유념하고 있어야 한다. 그 점을 유념하고 있으면, 굳이 억지스럽게 스스로를 쪼아대지 않아도 남의 밭에 내 밭 흙을 함부로 퍼 주려 하지 않게 된다. 나와 상대 사이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일의 출발선을 나는 여기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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